갤러리
개요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점령 시기 크라쿠프의 비극적인 역사를 생생하게 접하고, 특히 게슈타포 본부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지하 감방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깊이 있는 학습을 원하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폴란드의 고난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당시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록과 증언을 통해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보존된 게슈타포 감방에 남겨진 수감자들의 글귀를 직접 보며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1939년부터 1956년까지 크라쿠프 사람들의 삶을 다룬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의 규모가 예상보다 작고 입구가 주차장 안쪽에 있어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으며, 일부 전시물은 텍스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반복적인 배경 소리가 관람을 방해한다는 평가도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및 차량
- 박물관 입구는 포모르스카 거리(ul. Pomorska 2)에 위치한 건물의 안뜰로 들어가야 한다.
- 일부 방문객의 후기에 따르면, 차량 진입로처럼 보이는 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박물관 입구이다.
입구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대중교통
- 크라쿠프 시내 대중교통(Miejskie Przedsiębiorstwo Komunikacyjne w Krakowie)을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정류장 및 노선 정보는 현지 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게슈타포가 실제 사용했던 고문 및 심문 장소이자 수감 시설이다. 벽에 새겨진 수감자들의 마지막 메시지와 낙서들은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방문객에게 깊은 슬픔과 충격을 준다. 처형이 이루어졌던 공간도 보존되어 있다.
운영시간: 박물관 운영 시간 내 (메인 전시 관람 후 직원에게 문의하여 입장)
나치 독일 점령기부터 스탈린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크라쿠프 시민들이 겪었던 억압과 공포의 역사를 다룬다. 다양한 사료, 사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과 저항 운동, 그리고 희생자들의 삶을 조명한다.
운영시간: 박물관 운영 시간 내
박물관이 위치한 건물 자체의 역사도 중요하다. 1930년대 후반 실레지아 지역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로 지어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게슈타포 본부로 징발되어 비극의 장소로 변모했다. 전쟁 후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 박물관으로 일부 공간이 활용되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게슈타포 감방 내부
수감자들이 남긴 글씨와 흔적들을 통해 비극적인 역사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 엄숙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입구 외부 기념 조형물
박물관 입구 밖에 설치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 조형물 앞에서 추모의 의미를 담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방문 팁
매주 수요일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메인 전시를 관람한 후, 직원에게 요청해야 게슈타포 감방 구역으로 안내받을 수 있다. 감방은 별도의 입구를 통해 접근한다.
박물관 입구는 건물 정면이 아닌, 안뜰로 들어가서 찾아야 한다. 주차장처럼 보이는 공간을 지나 오른쪽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된다.
전시 내용에 영어 번역이 제공되어 있어 외국인 방문객도 이해하기 용이하다.
텍스트 기반의 전시물이 많으므로, 내용을 충분히 읽고 이해하려면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
전시 내용과 감방의 분위기가 매우 무겁고 충격적일 수 있으므로, 어린이 동반 시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오스카 쉰들러 공장, 독수리 약국과 함께 '메모리 트레일(Memory Trail)' 티켓에 포함되어 있어 함께 둘러볼 계획이라면 통합 티켓 구매를 고려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실레지아 하우스 건축
서부 영토 방어 협회의 주도로 실레지아 지역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및 방문객 숙소(Dom Śląski)로 지어졌다.
게슈타포 본부 설치
나치 독일이 크라쿠프를 점령한 후, 이 건물은 크라쿠프 지역 보안경찰(Sicherheitspolizei, Sipo) 및 보안정보국(Sicherheitsdienst, SD) 본부, 즉 게슈타포 본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문과 학살의 장소
수많은 폴란드인과 유대인, 저항 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심문, 고문, 살해당했다. 지하 감방은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폴란드 장군 스타니스와프 로스트보로프스키도 1944년 8월 11일 이곳에서 살해되었다.
나치 독일 철수
소련군에 의해 크라쿠프가 해방되면서 게슈타포의 점유는 끝났다.
NKVD 사용 추정
전후 소련의 비밀경찰인 NKVD가 이 건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물관 개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고문 장소였던 게슈타포 감방을 보존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크라쿠프 역사 박물관의 분관으로 개관했다. 폴란드 내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유일한 박물관 지위의 국립 추모 장소이다.
방공호 개방
박물관은 리틀 폴란드 역사 팬 협회 '라벨린'과 협력하여 방공호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여담
1940년대 크라쿠프 세대에게 '포모르스카(Pomorska)'라는 거리 이름은 게슈타포 본부와 그 악행을 떠올리게 하는 공포의 대명사와도 같았다고 전해진다.
박물관이 들어선 건물은 원래 '실레지아 하우스(Dom Śląski)'라는 이름으로, 크라쿠프를 방문하거나 이곳에서 공부하는 실레지아 지역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였다고 한다.
현재 박물관은 건물의 지하 부분에만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의 다른 층들은 호스텔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게슈타포 감방 중 처형실로 사용된 곳의 벽에는 라틴어 문구인 "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 mori!"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달콤하고 영광스럽다!)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한 오스카 쉰들러도 한때 이곳 게슈타포 본부에 수감된 적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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