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웅장함과 유대교의 깊은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종교 건축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크라쿠프 카지미에슈 지구에 위치하며, 한때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대교 회당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이곳에서는 실제 운영되는 정통 유대교 회당으로서 기도에 참여하거나(사전 시간 확인 필요), 내부 벽을 장식하는 히브리어 기도문 프레스코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천장 장식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건물 내에 마련된 작은 코셔 식료품점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최근 방문객들의 경험에 따르면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내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접근 방법
🚶 도보
- 크라쿠프 카지미에슈 유대인 지구 내에 위치하여, 지구 내 다른 명소들과 함께 도보로 둘러보기 용이하다.
🚋 대중교통 (트램/버스)
- 크라쿠프 중앙역이나 구시가지에서 카지미에슈 방면 트램 또는 버스를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 구체적인 노선 및 정류장은 출발 위치에 따라 달라지므로, 현지 교통 앱이나 안내도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1644년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내부와 복원된 히브리어 기도문 프레스코가 인상적이다. 특히 아치형 천장의 정교한 바로크 석고 장식은 중요한 볼거리로 꼽힌다.
크라쿠프에서 현재도 정기적으로 예배가 열리는 정통 유대교 회당 중 하나로, 방문객들은 실제 유대교 예배(테필롯) 분위기를 느끼거나, 조건이 맞는다면 참여할 수도 있다. (예배 시간은 사전 확인 필요)
운영시간: 예배 시간에 따라 다름
회당 내부에 작은 코셔 식료품점이 있어, 유대교 율법에 따라 인증된 다양한 식료품 및 기본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여행 중 코셔 음식이 필요한 방문객에게 유용하다.
추천 포토 스팟
시나고그 내부 아치형 천장
정교한 바로크 양식의 석고 장식과 전체적인 구조미를 담을 수 있다.
히브리어 기도문 프레스코 벽면
복원된 고풍스러운 히브리어 기도문과 벽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촬영할 수 있다.
여성 갤러리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
후대에 증축된 독특한 형태의 외부 계단과 시나고그 외관을 함께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현재 대규모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일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개방 여부와 관람 가능 범위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정통 유대교 회당이므로 방문 시 정숙을 유지하고 복장에 유의해야 하며, 남성은 내부에서 키파(유대인 남성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구에 비치된 경우 있음)
내부에 코셔 식료품점이 있어 간단한 코셔 인증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내부 사진 촬영 가능 여부는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예배 중에는 촬영이 금지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건축 시작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이자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4세의 금융가였던 이작 야쿠보비치(아이직 예켈레스)의 기금으로 시나고그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건축가 프란체스코 올리비에리가 설계를 맡았다.
완공
바로크 양식의 이작 시나고그가 완공되었다. 당시 크라쿠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시나고그 중 하나로 여겨졌다.
제2차 세계대전 및 나치 점령기
나치 독일에 의해 시나고그 내부가 약탈당하고 심하게 파괴되었다. 비마(설교대)와 아론 코데쉬(토라 보관함)를 포함한 대부분의 집기들이 소실되었다.
다른 용도로 사용 및 방치
전쟁 후 시나고그 건물은 조각 및 보존 작업실, 극단 소품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화재 발생
화재로 인해 시나고그 내부가 추가로 손상되었다.
복원 시작
시나고그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유대인 공동체 반환 및 재개관
폴란드의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후, 시나고그는 유대인 공동체에 반환되었다.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정통 유대교 회당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여담
이작 야쿠보비치 시나고그의 건립 자금을 마련한 이작(아이직) 야쿠보비치에 관한 유명한 전설이 전해진다. 가난했던 그가 프라하의 다리 밑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꿈을 꾸고 프라하까지 갔으나, 그곳의 경비병으로부터 오히려 자신의 집 부엌 밑에 보물이 있다는 꿈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시나고그 건축 당시, 일부 교구 관계자들은 유대인을 위한 건물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여겨 건축 허가를 지연시키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39년 12월 5일, 게슈타포가 크라쿠프 유대인 자치기구(Judenrat) 건물에서 토라 두루마리를 불태우라고 명령했으나, 이를 거부한 유대인 관리 막시밀리안 레드ליך(Maximilian Redlich)가 그 자리에서 총살당한 비극적인 사건이 이곳과 관련하여 기록되어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여성용 갤러리와 그곳으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은 초기 건축 이후에 증축된 부분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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