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군사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있거나 티볼리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일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교황청과 관련된 역사나 15세기 건축 양식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문지가 될 수 있다.
방문객들은 잘 보존된 15세기 요새의 내부와 외부를 둘러보며 건축적 특징을 관찰할 수 있고, 성벽 위에서는 티볼리 시내와 주변 평원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내부에 마련된 정보 패널을 통해 요새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탑이나 성벽의 일부 구간은 안전 문제로 접근이 제한될 수 있으며, 내부가 현대적으로 복원되어 고유의 분위기가 다소 희석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로마 티부르티나(Roma Tiburtina) 역에서 티볼리(Tivoli)행 기차 탑승 (약 1시간 소요).
- 티볼리 역에서 하차 후 도보 약 10-15분 이동.
🚌 버스 이용
- 로마 지하철 B선 폰테 맘몰로(Ponte Mammolo) 역 앞에서 코트랄(Cotral) 버스 탑승.
- 티볼리 시내(가리발디 광장 인근)에서 하차.
버스 소요 시간은 교통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
🚗 자동차 이용
- 로마에서 A24 고속도로(Autostrada A24) 이용, 티볼리 출구로 진출.
티볼리 시내 주차 공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잘 보존된 중세 성곽 내부를 자유롭게 둘러보며 15세기 군사 건축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내부에는 요새의 역사와 관련된 설명 패널들이 설치되어 있어 교육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요새의 상층부나 성벽 위로 올라가면 티볼리 시내와 주변의 아름다운 평원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더욱 선명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로카 피아 북쪽으로는 고대 로마 시대의 블레소 원형극장(Anfiteatro di Bleso) 유적이 인접해 있어, 요새 위에서 그 형태를 내려다볼 수 있다. 두 역사적 건축물을 함께 관찰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요새 최상층 또는 성벽 위
티볼리 시내와 주변 언덕, 평원까지 아우르는 파노라마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로카 피아 정면 및 외관
견고하고 웅장한 중세 성채의 전체적인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을 수 있다. 특히 네 개의 원형 탑이 잘 드러나는 구도가 인기 있다.
내부 안뜰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안뜰에서 요새의 내부 구조와 함께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방문 팁
입장료는 일반적으로 무료이며, 특히 주말(토요일, 일요일)에 개방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관람에는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티볼리 시내 도보 여행 중 잠시 들르기에 적당하다.
내부에 요새의 역사와 관련된 정보 패널이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경우가 있다.
안전 문제나 보수 작업으로 인해 탑이나 성벽 일부 구간의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간혹 내부 공간에서 소규모 미술 전시회나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역사적 배경
건설 시작
교황 비오 2세(Pius II Piccolomini)가 티볼리 내 구엘프와 기벨린 당파 간의 분쟁 및 유력 가문 간의 갈등을 종식시키고 교황청의 통제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건설을 명했다. 건축가로는 필라레테의 제자인 니콜로와 바로네가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완공
교황 식스토 4세 또는 알렉산데르 6세 재임 기간에 나머지 두 개의 작은 원형 탑이 추가되면서 요새가 완공되었다. 초기에는 도시 외부 방어보다 내부 통제 목적이 강했다.
전략적 역할 및 변화
이폴리토 데스테 추기경이 티볼리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빌라 데스테 건설과 연계되어 요새 주변부가 정비되기도 했다. 점차 화약무기 발달로 군사적 중요성은 감소했다.
병영 및 감옥으로 사용
18세기에는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점령되어 병영으로 사용되었으며, 나폴레옹 시대부터 1960년까지는 감옥으로 전용되었다. 이로 인해 내부 구조가 일부 변경되었다.
방치 및 복원
감옥 폐쇄 이후 수십 년간 특별한 용도 없이 방치되었으나, 복원 작업을 거쳐 2018년 12월 15일 티볼리 시 당국의 관리 하에 대중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여담
요새의 이름 '로카 피아'는 건설을 지시한 교황 비오 2세(Pius II Piccolomini)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로카 피아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할 목적도 있었지만, 주된 목적은 당시 극심했던 구엘프 당과 기벨린 당 사이의 대립 및 콜론나 가문과 오르시니 가문 간의 세력 다툼 등 도시 내부의 끊임없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새 정문에는 라틴어로 "Grata bonis, invisa malis, inimica superbis sum Tibure: enim sic Pius instituit"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선한 자에게는 은혜롭고, 악한 자에게는 증오스러우며, 오만한 자에게는 적대적인 나, 티볼리를 위해 존재하노라. 이는 비오께서 명하신 바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건설 당시, 요새 부지 동쪽에 있던 고대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인 '블레소 원형극장(Anfiteatro di Bleso)'의 일부를 허물어 그 석재를 건축 자재로 사용했으며, 이는 적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지 않기 위함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는 1465년에서 1474년 사이에 제작된 만토바 산 조르조 성의 '신혼부부의 방(Camera degli Sposi)' 프레스코화에 당시 건설 중이던 로카 피아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교황 바오로 3세가 이곳에서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제출한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회칙을 구두로 승인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인근 빌라 데스테를 건설한 이폴리토 데스테 추기경이 요새 주변의 '바르케토(Barchetto)'라 불리던 녹지 공간을 자신의 개인 사냥터로 이용했다는 설도 있다.
대중매체에서
신혼부부의 방 (Camera degli Sposi)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만토바의 산 조르조 성 내부에 그린 프레스코 연작 중 일부에 건설 중인 로카 피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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