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르네상스 시대의 정교한 조각 예술을 감상하거나 '수치의 분수'라는 독특한 별명에 얽힌 역사적 배경에 관심이 많은 예술 애호가 및 역사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신화 속 인물들을 형상화한 다수의 나체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분수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기거나 야간에는 조명과 어우러진 특별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다만, 일부 방문객들은 분수 주변의 청결 상태나 관리 미흡을 지적하며, 방문 시점에 따라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분수가 가동되지 않아 관람에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팔레르모 역사 지구 중심부에 위치하며, 콰트로 칸티, 팔레르모 대성당 등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대중교통
- 팔레르모 중앙역(Palermo Centrale)에서 도보 약 15-20분 거리에 있으며, 다양한 시내버스 노선이 광장 인근을 통과한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 하차 후 도보 이동이 필요하다.
주요 특징
분수 중앙에는 신화 속 인물들을 형상화한 16개의 정교한 나체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수치의 분수(Fontana della Vergogna)'라는 별칭을 얻었다. 16세기 당시 보수적인 팔레르모 사회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피렌체의 건축가 프란체스코 카밀리아니가 1554년에 설계한 이 분수는 3개의 동심원 형태의 수반으로 이루어진 다층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전형적인 르네상스 후기 조각 양식을 보여준다. 원래 피렌체 귀족의 정원을 위해 설계되었으나 팔레르모로 이전되었다.
해가 진 후에는 분수에 조명이 켜져 낮과는 또 다른 신비롭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많은 방문객들이 야간에 이곳을 찾아 조명과 어우러진 분수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운영시간: 일몰 후
추천 포토 스팟
광장 정면
분수 전체의 웅장함과 주변 건물과의 조화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촬영 지점이다.
산타 카테리나 교회 측면 또는 상층부
분수를 약간 높은 각도에서 내려다보며 독특한 구도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교회 입장 가능 여부 및 촬영 조건 확인 필요)
개별 조각상 근접 촬영
르네상스 조각의 정교한 디테일과 인물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다. (분수 접근 가능 범위 내)
방문 팁
분수 주변 건물(산타 카테리나 교회 등) 위에서 분수를 내려다보면 전체적인 모습을 감상하기 좋다.
야간에 방문하면 조명으로 더욱 아름다운 분수를 볼 수 있다.
분수 근처에 유명한 카놀리 가게가 있다는 방문객의 언급이 있다.
방문 시점에 따라 분수가 가동되지 않거나 보수 공사로 인해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분수대 자체에는 앉을 수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설계
피렌체의 조각가 프란체스코 카밀리아니(Francesco Camilliani)가 피렌체 귀족 돈 루이지 데 톨레도(Don Luigi de Toledo)의 개인 정원(산 클레멘테 궁전)을 위해 분수를 설계했다.
팔레르모 시의회 구입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돈 루이지 데 톨레도로부터 팔레르모 시의회가 분수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전 및 재조립 시작
분수는 644개의 조각으로 분해되어 피렌체에서 팔레르모로 운송되었으며, 프레토리아 광장에 재조립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각이 손상되거나 유실되기도 했다.
설치 완료
프란체스코 카밀리아니의 아들 카밀로 카밀리아니(Camillo Camilliani) 등이 참여하여 분수 설치를 완료했다. 분수 설치를 위해 광장 주변의 여러 주택이 철거되었다.
'수치의 분수' 별명
분수에 있는 다수의 나체 조각상으로 인해 보수적인 팔레르모 시민들 사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수치의 분수(Fontana della Vergogna)'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때 부패한 시정을 풍자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여담
프레토리아 분수는 원래 피렌체의 개인 정원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소유주의 재정 문제로 팔레르모 시에 판매되어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분수를 현재의 광장에 설치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가옥을 철거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당시 일부 주민들의 반발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분수에 조각된 16개의 인물상이 모두 나체인 탓에 18세기부터 '수치의 분수'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보수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한때 이 분수는 팔레르모의 부패한 지방 자치단체를 상징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 인근 수도원의 수녀들이 밤마다 조각상에 옷을 입혔고, 다음 날 아침이면 시 관리들이 다시 그 옷을 벗겼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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