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독일 문학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생애 초창기 발자취와 18세기 프랑크푸르트 부르주아 계층의 생활상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문학 애호가나 역사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초고 등 그의 대표작 일부를 집필했던 공간을 둘러볼 수 있으며, 당시의 가구, 그림, 서적 등을 통해 그의 성장 환경과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또한, 통합 입장권으로 관람 가능한 인접한 독일 낭만주의 박물관에서 시대적 배경지식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폐관 시간보다 이르게 퇴장을 안내받거나, 직원의 응대가 다소 아쉬웠다는 경험을 언급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U-Bahn)
- U1, U2, U3, U6, U7, U8호선: 하우프트바헤(Hauptwache)역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 U4, U5호선: 돔/뢰머(Dom/Römer)역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 트램 (Straßenbahn)
- 11, 12, 14번: 카르멜리터클로스터(Karmeliterkloster) 정류장 하차
- 11, 12번: 뢰머/파울교회(Römer/Paulskirche) 정류장 하차 후 도보
주요 특징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초고 등 그의 초기 주요 작품들을 집필했던 역사적인 공간이다.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과 개인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작가의 창작 환경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괴테 가족이 생활했던 각 방에는 18세기 당시의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정교하게 복원 및 전시되어 있다. 특히 천문 시계, 나무 세탁기, 다양한 문양의 벽지 등은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괴테 생가와 통합 입장권으로 관람 가능한 현대적인 박물관으로, 2021년에 개관했다. 괴테 시대와 독일 낭만주의를 주제로 한 다양한 원본 자료, 회화, 인터랙티브 전시를 통해 문학적, 예술적 맥락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괴테 생가 외관
18세기 중반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조화된 독특한 파사드와 이중 돌출 구조가 특징인 건물 정면은 방문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인기가 높다.
중앙 계단
바로크 양식의 꽃과 다양한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단철 난간이 인상적인 내부 계단은 괴테 생가의 건축미를 잘 보여주는 장소이다. 일부는 폭격에서 살아남은 원본 부재를 포함하고 있다.
괴테의 서재 (Dichterzimmer)
괴테가 젊은 시절 실제 작품 활동을 했던 방으로, 당시의 책상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문학적 감성이 담긴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권은 인접한 독일 낭만주의 박물관(Deutsches Romantik-Museum) 입장료를 포함하므로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다.
각 방에 대한 설명이 담긴 안내지(다국어 지원) 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하면 더욱 깊이 있는 관람이 가능하다.
입구에 무료 물품 보관함이 마련되어 있어 가방 등 소지품을 보관하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카드 소지 시 입장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내부 관람 시 오래된 목조 건물이므로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역사적 배경
최초 건물 건축
플랑드르 출신 금세공사 마티스 반 힌스베르크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다.
괴테 조모의 주택 매입
괴테의 할머니인 코르넬리아 괴테가 인접한 두 채의 집을 매입하여 내부 벽을 허물고 하나의 집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출생
이 집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태어났다.
대대적인 개조
괴테의 아버지 요한 카스파 괴테가 기존 건물을 확장하고 개조하여 현재와 유사한 모습의 큰 저택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건축가 역할도 수행했다.
괴테, 바이마르로 이주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바이마르로 거처를 옮겼다.
괴테 어머니, 주택 매각
괴테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괴테가 이 집을 매각하고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자유독일고지재단(Freies Deutsches Hochstift) 인수 및 박물관화
오토 폴거가 설립한 자유독일고지재단이 이 집을 매입하여 괴테 기념관으로 만들고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는 최초의 괴테 공공 기념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
연합군의 프랑크푸르트 폭격으로 인해 구시가지 대부분과 함께 괴테 생가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복원 공사
파괴 이후 재건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프랑크푸르트시의 결정으로 건축가 테오 켈너의 주도 하에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많은 설계도와 사진 자료가 남아있어 복원에 도움이 되었다.
재개관
복원된 괴테 생가가 당시 서독 대통령 테오도어 호이스가 참석한 가운데 대중에게 다시 문을 열었다.
독일 낭만주의 박물관 개관
괴테 생가 바로 옆에 독일 낭만주의 박물관(Deutsches Romantik-Museum)이 개관하였으며, 괴테 생가와 통합 입장권으로 함께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여담
괴테의 아버지 요한 카스파 괴테는 집을 개조할 당시, 1719년과 1749년 건축법규상 화재 위험으로 신축 건물에는 허용되지 않던 이중 돌출 외관을 보존하기 위해, 신축이 아닌 기존 건물 '수정'이라는 명목으로 허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건물이 파괴되었을 때, 다행히 많은 설계도와 사진 자료가 남아있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었다. 특히 계단의 단철 난간은 폭격 잔해 속에서 수습되어 복원 후 실제로 재사용되었다고 한다.
괴테 생가에는 넓은 정원 대신 작은 안뜰만 있는데, 괴테 자신도 그의 자서전 『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에서 이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현관문 위쪽에는 괴테 아버지의 이니셜(JCG)과 함께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 문장에는 예술과 음악의 신 아폴론을 상징하는 세 개의 리라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예술을 중시했던 괴테 가문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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