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나치 독일 시대 도르트문트 지역의 역사, 특히 저항 운동과 박해의 실상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 연구자, 학생, 그리고 어두운 과거를 되새기려는 성찰적 여행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과거 게슈타포 감옥으로 실제 사용되었던 건물 내부를 둘러보며 '도르트문트의 저항과 박해 1933-1945'라는 주제의 상설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당시의 사진, 문서, 각종 사료와 생존자 증언들을 통해 나치 정권의 폭력성과 그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며, 재구성된 감방과 고문실 등을 통해 역사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전시 설명이 대부분 독일어로 되어 있어 외국인 관람객에게는 언어적 장벽이 있으며, 영어 안내 책자가 제공되기는 하나 모든 세부 내용을 포함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기본 정보
상설 전시: '도르트문트의 저항과 박해 1933–1945'
슈타인바헤 추모 및 기념관의 핵심은 도르트문트 시립자료관이 기획한 상설 전시 '도르트문트의 저항과 박해 1933–1945 (Widerstand und Verfolgung in Dortmund 1933–1945)'이다. 이 전시는 다양한 사진, 짧은 텍스트, 역사적 유물, 그리고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나치 시대 도르트문트와 그 지역, 나아가 독일 전체의 박해와 저항의 역사를 조명한다.
- 지상층: 건물 역사, 나치 정권의 등장 배경, 재구성된 수감 초기 접수실
- 1층: 나치 정권 초기 지역 상황, 언론 통제, 개인 박해, 정치 및 문화 분야 숙청, 노동 운동 탄압, 동성애자 박해, 재현된 격리 감방
- 2층: 나치 테러 초기 희생자 소개 (사회주의 노동자 계층), 재구성된 감방, 다양한 형태의 저항 운동, 강제 노동 및 인종차별적 박해
- 3층(최상층): 종교 단체 관련 (기독교 교회의 순응과 저항, 여호와의 증인 박해), 유대인 박해 및 학살, 신티와 로마 집시 박해, 부적응 청소년('에델바이스 해적단') 박해, 수감자들의 벽면 낙서가 보존된 '비문 감방'
- 지하층: 직접적인 게슈타포 테러 (옛 고문실), 강제수용소, 나치 시대 사법체계, 안락사 프로그램, 롬베르크파르크 및 비터마르크에서의 대량 학살
건물 역사와 변천
슈타인바헤 건물은 여러 역사적 단계를 거쳐 현재의 추모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1906년: 도르트문트 북부 도심 5번 경찰서로 건립 (초기 아르누보 양식)
- 1926-27년: 신즉물주의 양식으로 확장 (5층 행정 건물 및 4층 감옥 건물 추가)
- 1928년: 감옥 건물 완공, 당시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교도소 중 하나로 평가
- 1933-1945년: 게슈타포 감옥으로 사용, 정치범 수감 및 고문 자행 ('서부 독일의 지옥')
- 전후: 경찰서로 계속 사용 (행정 건물은 1976년까지), 교도소는 1958년 이전
- 1961-1986년: 옛 교도소 건물은 노숙자 임시 숙소로 활용
- 1980년대: 철거 위협 속에서 시립자료관 등의 노력으로 보존 및 기념관 전환 추진
- 1992년: 추모 및 기념관으로 개관, 전시 '저항과 박해' 영구 설치
확장 및 현대화 계획
도르트문트 시의회는 2023년에 슈타인바헤 추모 및 기념관의 건물 확장과 상설 전시 현대화를 결정했다. 총 1,730만 유로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며, 건축 공사는 2025년 6월에 시작하여 가을에 증축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접근 방법
📍 위치 및 입구 정보
- 슈타인바헤 추모 및 기념관은 도르트문트 중앙역(Hauptbahnhof) 북쪽, 슈타인슈트라세(Steinstraße) 50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 기념관의 정식 입구는 슈타인슈트라세 도로변이 아닌, 건물 뒤편 안뜰로 들어가 흰색 담장 문 바로 안쪽에 위치한다. 처음 방문 시 입구를 찾기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경험담이 있다.
도르트문트 중앙 버스 터미널(ZOB)과도 매우 가깝다.
🚇 대중교통 이용 시
- 도르트문트 중앙역(Dortmund Hauptbahnhof)에서 하차 후, 북쪽 출구(Nordausgang)를 이용하면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인근에 다양한 시내버스 및 슈타트반(Stadtbahn, 경전철) 노선이 경유하여 대중교통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주요 특징
나치 정권 시기 도르트문트 지역의 저항 운동과 박해의 역사를 사진, 문서, 역사적 유물, 생존자 증언 등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경제 위기부터 나치 집권 과정, 언론 통제, 노동 운동 탄압, 소수자 박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과거 게슈타포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재구성된 수감 초기 접수실, 독방, 일반 감방, 수감자들의 낙서가 남겨진 '비문 감방'(Inschriftenzelle), 고문실 등을 통해 당시 수감자들의 고통과 공포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정치범, 유대인, 강제노동자, 여호와의 증인, 신티와 로마, 동성애자, '에델바이스 해적단' 등 나치 정권에 의해 박해받은 다양한 그룹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를 통해 나치즘의 폭력성과 인종차별 정책의 광범위한 영향을 이해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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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건물 외관
과거 경찰서 및 게슈타포 감옥으로 사용된 역사적 건물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건물의 건축 양식과 세월의 흔적을 통해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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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된 감방 내부
재현된 수감 시설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열악한 환경을 기록할 수 있다. 다만, 엄숙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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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감방' (Inschriftenzelle)
수감자들이 벽에 남긴 글귀와 그림들을 촬영하여 당시의 절박함과 저항 의지를 기록할 수 있다. 플래시 사용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모든 전시 설명이 독일어로 되어 있으나, 입구에서 무료 영어 안내 책자를 받을 수 있다. 책자에 모든 내용이 담겨있지 않으므로, 필요시 구글 번역 앱을 함께 활용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기념관 유지 및 운영을 위해 기부금 함에 소정의 금액을 기부할 수 있다.
모든 전시를 자세히 관람하기 위해서는 최소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기념관 입구는 슈타인슈트라세(Steinstraße) 도로변이 아닌, 건물 뒤편 안뜰로 들어가 흰색 문 안쪽에 위치하므로 방문 시 유의해야 한다.
전시 내용이 방대하고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므로, 독일어에 능통하다면 독일어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
특정 공휴일이나 학교 방학 기간 중에는 예고 없이 휴관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나 연락처를 통해 운영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경찰서 건물 건립
도르트문트 북부 도심을 관할하는 제5경찰서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 처음 세워졌다. 당시 도르트문트 북부 지역은 산업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고 노동자 계층이 밀집하여 '불안 지역'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건물 확장
기존 건물에 신즉물주의 양식으로 5층 규모의 행정동과 4층 규모의 감옥동이 증축되었다. 이 건물들은 연결 통로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감옥 마당을 형성했다.
감옥 완공 및 운영 시작
새로 지어진 감옥동은 당시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교도소 시설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운영을 시작했다.
게슈타포 감옥으로 전환
나치 정권이 수립되면서 비밀 국가경찰(게슈타포)이 이 시설을 접수하여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잔혹한 심문과 고문이 자행되어 '서부 독일의 지옥(Hölle von Westdeutschland)'이라는 악명을 얻었다.
나치 시대 운영
주로 공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등 나치 반대 세력과 유대인, 강제노동자, 여호와의 증인, 신티와 로마 등 다양한 박해 대상자들이 수감되었다. 총 66,000명 이상이 이곳에 투옥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거나 전쟁 말기 학살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1944년 11월에는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가 이곳에 근무하기도 했다.
전후 활용
제2차 세계대전 중 도르트문트 시내가 크게 파괴되었음에도 슈타인바헤 건물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전후에는 다시 경찰서로 사용되었고(행정동은 1976년까지), 1961년부터 1986년까지 옛 감옥 건물은 노숙자들을 위한 임시 숙소로 기능했다.
철거 위기와 보존 운동
건물 전체가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도르트문트 시립자료관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노력으로 건물을 보존하고 추모 및 기념 공간으로 전환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추모 및 기념관 개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옛 교도소 건물에 '슈타인바헤 추모 및 기념관'이 공식 개관하고, 상설 전시 '도르트문트의 저항과 박해 1933–1945'가 설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확장 및 현대화 결정
도르트문트 시의회는 기념관의 확장 및 현대화를 위한 예산을 승인했으며, 2025년 6월부터 관련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여담
슈타인바헤는 1928년 완공 당시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교도소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치 집권 이후 게슈타포의 고문 장소로 악명이 높아지면서 '서부 독일의 지옥(Hölle von Westdeutschland)'으로 불렸다는 얘기가 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도르트문트 게슈타포 관할 지역(아른스베르크 행정구역 전체)에서 총 6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수감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옹의 도살자'로 악명 높은 나치 전범 클라우스 바르비가 1944년 11월 프랑스에서 이곳 도르트문트 SD(보안대) 지부로 발령받아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직책을 맡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르트문트 시내 중심부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슈타인바헤 건물은 기적적으로 거의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전쟁 후 한동안 경찰서 건물로 사용되다가, 1961년부터 1986년까지는 옛 교도소 건물이 노숙자들을 위한 임시 잠자리 제공 시설로 운영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건물 전체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으나, 도르트문트 시립자료관과 여러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기념관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슈타인바헤의 핵심 상설 전신인 '도르트문트의 저항과 박해 1933-1945'는 1992년 현재의 장소에 영구 설치되기 이전, 1983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저항 박물관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빈, 덴마크 오덴세, 이스라엘 네타냐 등 여러 국제 도시에서 순회 전시를 통해 먼저 알려진 바 있다.
슈타인바헤 건물 자체는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현재 도르트문트 시의 건축 기념물로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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