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딕 및 로마네스크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장엄한 건축물과 내부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하고, 게랑드 중세 도시의 역사적 분위기를 체험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건축물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성당 내부의 정교한 조각과 예술 작품을 살펴볼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듣거나 15세기에 만들어진 희귀한 외부 설교단과 같은 독특한 건축 요소를 관찰할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특정 직원의 응대 방식에 아쉬움을 표현하거나, 장애인 및 반려동물 동반 시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성당 내부가 다소 어둡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접근 방법
🚄 기차
-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TGV를 이용하여 낭트(Nantes)까지 약 3시간 소요.
- 낭트에서 게랑드(Guérande)까지는 차량 또는 버스로 추가 이동 필요 (차량 약 1시간, 80km).
🚌 버스
- 루아르 아틀란티크(Loire Atlantique) 지역 내에서는 버스 이용이 가능하며, 편도 약 2유로의 저렴한 요금으로 이동할 수 있다 (티켓 유효시간 2시간, 낭트 및 생나제르 버스망 연동 가능).
🚗 자동차
- A11 고속도로 이용 시: 파리, 르망, 앙제, 낭트 방면에서 접근.
- N171 국도 이용 시: 생나제르 방면에서 접근.
게랑드 중세 도시 내부는 차량 통행이 제한적이거나 주차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성벽 외부에 주차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성당 내부에 있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주요 볼거리이다. 빛이 투과되면서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색채의 향연은 성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내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되어 이후 고딕 양식으로 재건 및 증축된 이 성당은 두 가지 건축 양식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특히 15세기에 만들어진 외부 설교단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희귀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내
성당 내부에 자리한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미사나 특별한 행사 시에는 오르간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을 수 있으며, 1955년부터 루이 유엘(Louis Yhuel)과 같은 저명한 오르가니스트가 연주를 맡기도 했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내 (연주 시간은 별도 확인)
추천 포토 스팟
스테인드글라스 배경
성당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빛과 색의 조화를 담아보세요. 특히 햇빛이 잘 드는 시간에 방문하면 더욱 아름다운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당 정면 외관
게랑드 중세 도시의 중심에 우뚝 솟은 성당의 웅장한 정면 전체를 프레임에 담아보세요. 고딕 양식의 섬세한 디테일과 함께 역사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15세기 외부 설교단
성당 외벽에 설치된 독특한 형태의 15세기 외부 설교단은 이곳만의 특별한 사진 포인트입니다. 설교단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함께 담아낼 수 있습니다.
축제 및 이벤트
게랑드 중세 축제 (Fête Médiévale de Guérande)
매년 5월
게랑드 시 전체에서 열리는 중세 축제로, 도시가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양한 공연, 시장, 거리 행진 등이 펼쳐지며, 생토뱅 수도원 성당 주변도 축제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된다.
방문 팁
여름철 특정 시간(오전 10-12시, 오후 2시 이후)에는 무료 해설 투어가 운영되는 경우가 있어 성당과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게랑드 중세 도시 내부는 주차 공간이 부족하거나 유료일 수 있으므로, 성벽 바깥쪽에 주차하는 것이 권장된다.
야간에는 성당 외부에 조명이 켜져 낮과는 다른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방문 시간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최초의 종교 건물
전승에 따르면 브르타뉴 족장 와로크(Waroch)의 후원으로 현재 위치에 최초의 종교 건물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생토뱅 2기 (살로몽의 바실리카)
생토뱅 주교의 유물 이전 후, 더 큰 규모의 두 번째 건물이 건설되었다. 이 시기부터 주변에 묘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생토뱅 3기 (로마네스크 양식 콜레지알)
노르만족의 침입 또는 도시의 성장으로 인해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성당이 확장 또는 재건되었다. 현재 네이브에 남아있는 8개의 기둥과 주두가 이 시기의 것이다.
게랑드 약탈
브르타뉴 계승 전쟁 중 루이 드 라 세르다(Louis de La Cerda)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게랑드가 약탈당하고 성당도 큰 피해를 입었다.
생토뱅 4기 (고딕 양식 콜레지알)
파괴된 성당은 1380년부터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기 시작했다. 남쪽 트랜셉트와 '지하 제실(crypte)'이 14세기에, 북쪽 트랜셉트와 성가대석, 후진 등이 15세기에 걸쳐 건설되었다.
내부 장식 및 증축
생토뱅과 생쥘리앙 스테인드글라스(16세기), 성모 대관식 대형 스테인드글라스(17세기) 등이 설치되었고, 성가대석 의자, 제단, 성구실 등이 마련되었다.
자연재해로 인한 파괴
허리케인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종탑이 파괴(1705년)되고, 새로 지은 첨탑도 폭풍으로 파괴(1785년)되었다.
프랑스 혁명기
성당이 황폐해지고 오르간 파이프와 종이 녹여졌다. 한때 '최고 존재(Être Suprême)' 숭배 의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시계탑 붕괴
미사 도중 정면의 시계탑이 붕괴하여 성당 정면과 네이브 일부가 파손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너무 무거운 신 고딕 양식 첨탑과 오래된 기초가 원인이었다.
복원 완료 및 종 설치
붕괴된 부분의 복원이 완료되었고, 아메데 볼레가 제작한 5개의 새로운 종이 설치되었다.
중앙 종탑 건설
1580년에 지어진 작은 종탑을 대체하여 현재의 중앙 종탑이 건설되었다.
여담
생토뱅 주교와 관련된 유명한 전설이 있는데, 919년 바이킹이 게랑드를 침공했을 때 생토뱅 주교가 백마를 탄 기사로 나타나 시민들을 이끌고 바이킹을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이 기적 덕분에 게랑드가 파괴를 면했다고 한다.
성당의 명칭에 사용된 '콜레지알(Collégiale)'은 단순한 교회가 아니라 참사회(chanoines), 즉 여러 명의 성직자로 구성된 사제단이 소속된 중요한 성당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 게랑드가 이 지역의 중요한 종교 중심지였음을 시사한다.
1876년 11월 28일, 미사가 진행 중이던 성당 정면의 시계탑이 갑자기 붕괴하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성당 정면과 네이브 일부가 파손되었다. 이 사고는 4년 전 새로 지은 신고딕 양식 첨탑이 너무 무거웠던 반면, 건물의 기초는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 외부 정면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외부 설교단이 있는데, 이는 건축학적으로 매우 희귀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부분적으로 해체되었다가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현재 성당의 종탑에는 5개의 종이 있으며, 이 종들은 1885년 르망의 유명한 종 제작자인 아메데 볼레(Amédée Bollée)에 의해 주조되었다. 가장 큰 종의 이름은 '복스 데이(Vox Dei)', 즉 '신의 목소리'이며 그 무게는 약 2,750kg에 달한다고 한다.
%2Fbanner_1747508597308.jpg&w=3840&q=75)
/feature_0_1747767195645.jpg)
/feature_0_174780630458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