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됭케르크의 역사적 건축물과 종교 예술, 특히 프랑스 해군 영웅 장 바르의 흔적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나 일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고딕 및 네오고딕 양식의 조화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모습이 특징이다.
웅장한 고딕 양식의 내부를 둘러보고 피에르 고댕과 앙리 로텔리에 등이 제작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할 수 있으며, 프랑스 해군 영웅 장 바르의 무덤을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총탄 자국 등 역사의 상흔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점심시간(보통 12:30-13:30) 동안 교회가 문을 닫아 관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과 건물 외관 일부가 보수가 필요해 보인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 됭케르크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접근이 용이하다.
- 됭케르크 기차역(Gare de Dunkerque)에서 도보 또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다.
자세한 버스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 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 교회 주변에 공영 주차장이 있으나, 주차 공간이 제한적일 수 있다.
주요 특징
교회 내부는 5개의 신도석과 높은 천장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보여주며, 전쟁 후 복원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피에르 고댕과 앙리 로텔리에의 작품이 유명하다.
됭케르크 출신의 전설적인 코르세르(사략선장) 장 바르(Jean Bart)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그의 무덤은 교회 내부에 있으며, 됭케르크와 프랑스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복원 과정에서도 일부 **전쟁의 흔적(총탄 자국 등)**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역사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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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서쪽 외벽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어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독특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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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부 중앙 제단과 스테인드글라스
웅장한 내부 공간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경건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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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바르의 무덤
프랑스의 역사적인 인물인 장 바르의 묘를 담은 사진은 기념적인 의미를 더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점심시간(보통 12:30-13:30)에는 교회가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방문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교회 바로 맞은편에 있는 베프루아(종탑)를 함께 방문하면 좋다. 종탑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정상까지 올라가 교회와 됭케르크 시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교회 외벽, 특히 서쪽 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총탄 자국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아픔을 되새기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내부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장 바르의 무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역사적 배경
최초 건립 추정
성 엘루아 교회의 기원은 15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간트의 건축가들이 성 요한 호스피스 부지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군대에 의한 파괴
테름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됭케르크를 침공하여 교회를 불태웠다. 이때 교회의 탑(현재의 베프루아)만 살아남았다.
재건 시작
건축가 장 드 렌빌(Jean de Renneville)의 지휘 아래 교회 재건이 시작되었다. 성소는 동쪽으로 확장되었고, 주 신도석은 더 높아졌으며, 측면 복도와 경당들이 재건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 중단
자금 부족으로 인해 재건 공사가 중단되었고, 최초 설계는 완성되지 못했다.
빅토르 루이에 의한 증축
인구 증가에 따라 건축가 빅토르 루이(Victor Louis)가 증축 공사를 맡았다. 외부 벽을 확장하고 측면 경당들을 연결하여 두 개의 추가 신도석을 형성했다. 고전주의 양식의 새로운 파사드가 1785년에 완공되었다.
네오고딕 양식 파사드 재건
기존 파사드의 석재가 부식되어 철거된 후, 건축가 아돌프 반 모에(Adolphe Van Moë)의 네오고딕 양식 설계안이 채택되어 새로운 파사드가 건설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피해
제1차 세계대전 중 교회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
프랑스 공방전(됭케르크 철수작전) 중 소이탄 공격을 받아 교회의 벽만 남고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복원 및 예배 재개
긴 복원 작업 끝에 1977년 예배가 재개되었으며, 복원 공사는 1985년에 최종 완료되었다.
여담
이 교회는 '모래의 대성당(la cathédrale des sables)'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원래 교회와 연결되었던 종탑(베프루아)은 1558년 화재 이후 분리되어 현재는 독립된 건물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벨기에와 프랑스의 종탑군)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다.
됭케르크 출신의 유명한 프랑스 코르세르(사략선장) **장 바르(Jean Bart, 1650-1702)**의 유해가 이곳에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 이전의 교회 가구 대부분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소실되어, 인근 생장바티스트 교회의 18-19세기 가구들이 이전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교회의 오르간은 1970년에 제작된 곤잘레스(Gonzalez) 오르간으로, 최근 복원 및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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