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독특한 현대 미술과 고딕 건축의 조화에 매료되는 예술 및 건축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르네 뒤르바흐의 추상적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을 경험하고자 하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1000㎡에 달하는 대규모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작품에 대한 해설 자료를 통해 예술가의 의도를 파악해 볼 수도 있다. 검은 성모상 앞에서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갖거나, 때때로 열리는 오르간 연주를 통해 공간의 음향적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도 있다.
외부 유지 관리가 미흡하여 내부의 아름다움과 대조를 이룬다는 지적이 있으며, 일부 방문객은 이로 인해 첫인상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샤를빌-메지에르 시내 TAC 버스 노선(6, 8, 9, 12, 13, 16번 제외)을 이용하여 'Hôtel de Ville'(시청)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 하차 후 Monge 거리를 따라 도보로 이동하면 바실리카에 도착할 수 있다.
🚗 자가용 이용
- 바실리카 맞은편에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주변에 학교가 있어 특정 시간대에는 주차 공간이 혼잡할 수 있다.
주요 특징
20세기 중반 화가이자 조각가인 르네 뒤르바흐가 25년에 걸쳐 완성한 1,000㎡ 규모의 현대 추상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덕을 주제로 한다. 햇빛이 투과될 때 내부를 물들이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이 매우 인상적이다.
1499년부터 약 2세기에 걸쳐 건축된 후기 고딕 플랑부아양 양식의 바실리카로, 섬세한 석조 장식과 하늘로 높이 솟은 아치형 천장이 특징이다. 오랜 역사만큼 여러 차례의 전쟁 피해와 복원을 거듭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세기 초 인근 예배당에서 옮겨온 검은 성모상은 '희망의 성모'라는 바실리카의 이름과도 관련이 깊다. 많은 신자와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소망을 기원한다.
추천 포토 스팟
스테인드글라스와 내부 전경
르네 뒤르바흐의 현대적인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햇빛이 투과되며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감과 함께 성당 내부의 고딕 양식 공간을 함께 담을 수 있다.
중앙 제단과 아치형 천장
고딕 양식의 웅장하고 높은 아치형 천장과 제단 주변의 경건한 분위기를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있다.
남쪽 출입구 (Portail Sud)
플랑부아양 양식의 정교하고 화려한 석조 장식이 돋보이는 외부 남쪽 출입구의 건축미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햇빛이 잘 드는 맑은 날, 특히 늦은 오후에 방문하면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의 향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내부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 대한 설명 자료가 비치되어 있어 감상에 도움이 된다.
검은 성모상 앞에서 초를 봉헌하며 개인적인 소망을 기원할 수 있다.
외관은 다소 허름해 보일 수 있으나 내부는 매우 인상적이므로 실망하지 말고 꼭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최초 예배당 언급
성곽 부속 예배당으로 처음 언급되었다.
첫 본당 교회 건립
기존 예배당을 대체하여 첫 번째 본당 교회가 세워졌다.
재건축 준비
교회 재건축 기금 마련을 위한 면죄부가 발행되었다.
현 바실리카 건축 시작
현재 바실리카의 첫 번째 돌을 놓으며 건축이 시작되었다.
주요 구조물 건축
성가대, 익랑(수랑), 네이브(본당 회중석) 등 주요 구조물이 이 시기에 건축되었다.
왕실 결혼식 및 임시 대성당 지정
프랑스 왕 샤를 9세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으며, 이를 위해 단 하루 동안 대성당(Cathédrale)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서쪽 파사드 탑 건설
바실리카의 서쪽 정면 탑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낙뢰 피해 및 일부 재건
종탑과 첨탑이 낙뢰로 파괴되었으며, 네이브의 첫 두 구간 아치가 재건축되었다.
'희망의 성모' 명칭 부여
인근 예배당에서 검은 성모상을 이전해오면서 '희망의 성모(Notre-Dame d'Espéranc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첨탑 재건
1682년 파괴되었던 첨탑이 재건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피해
프로이센 군의 포격으로 지붕의 3/4이 파괴되었으나 이후 복원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정부에 의해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공식 지정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피해
1918년 11월 10일, 휴전 협정 하루 전의 폭격으로 기존 스테인드글라스가 모두 파괴되었으며, 종과 오르간도 손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피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연합군의 폭격 등으로 추가적인 피해를 입었다.
바실리카 승격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바실리카 미노르(Basilique mineure)로 승격되었다.
전면 재건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부분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르네 뒤르바흐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화가이자 조각가인 르네 뒤르바흐가 25년에 걸쳐 총 62개의 스테인드글라스와 6개의 오큘러스(원형창)를 포함한 1,000㎡ 면적의 새로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여 설치했다.
여담
바실리카의 현재 이름인 '희망의 성모'는 19세기 초, 인근 다른 예배당에서 특별히 숭배되던 검은 성모상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570년 프랑스 국왕 샤를 9세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공주가 이곳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는데, 왕실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해당 장소가 '대성당(Cathédrale)'이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결혼식이 열린 단 하루 동안 특별히 대성당의 지위를 부여받았던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바실리카를 대표하는 화려한 현대 스테인드글라스는 르네 뒤르바흐의 작품이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의 친구였으며, 원래 이 작업은 피카소에게 제안되었으나 그가 거절하면서 뒤르바흐에게 기회가 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1838년에 이곳을 방문하여 당시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극찬을 남겼으나, 그가 보았던 창들은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모두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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