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종교 건축물과 그 안에 담긴 초기 기독교 유산에 관심이 많은 역사 애호가나 종교 예술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풀라의 다층적인 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방문객들은 5세기에 지어진 대성당의 외관과 여러 차례 증개축된 내부를 관람할 수 있으며, 보존된 고대 모자이크 일부와 바로크 양식의 종탑을 감상할 수 있다. 미사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종교 의식에도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미사 시간 외에는 내부 관람이 어려울 수 있으며, 제단 근처의 주요 모자이크 등 일부 유물은 접근이 제한되어 자세히 보기 어렵다는 점이 언급된다.
접근 방법
🚶 도보
- 풀라 시내 중심부, 풀라 만 남쪽, 17세기 베네치아 요새가 있는 언덕 아래에 위치하여 다른 주요 관광 명소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대중교통
- 풀라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 하차 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주요 특징
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DAMIANUS ET LAVRENTIA' 명문이 새겨진 바닥 모자이크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이는 당시 결혼 서약의 일부로 헌납된 것으로 알려져 초기 기독교 예술과 당시의 신앙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1707년에 대성당 옆에 세워진 독립된 종탑으로, 풀라 원형 경기장의 석재를 가져와 건축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이 종탑은 대성당과 함께 풀라 항구의 특징적인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원래 로마 신전 자리에 세워진 이 대성당은 5세기 초기 기독교 건축을 기반으로 하며, 이후 수세기에 걸쳐 증축과 개축을 반복했다. 이로 인해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등 다양한 시대의 건축 양식이 혼재하는 독특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추천 포토 스팟
%2Fphotospot_0_1747779287473.jpg&w=3840&q=75)
대성당 정면 및 종탑
고전주의 양식의 대성당 파사드와 그 옆에 우뚝 솟은 바로크 양식의 종탑을 한 프레임에 담아보세요. 풀라의 역사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2Fphotospot_1_1747779340224.jpg&w=3840&q=75)
항구를 배경으로 한 대성당
대성당 앞쪽에서 풀라 항구를 배경으로 성당 전체 모습을 촬영하면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특히 해질녘에는 더욱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대성당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내부 관람은 주로 미사 시간에 맞춰 가능하며, 그 외 시간에는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일부 고대 모자이크는 제단 근처에 위치하여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대성당 주변에 있는 파란색 테이블이 놓인 테라스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언급이 있다.
역사적 배경
종교적 숭배 장소
현재 성당 부지는 고대 로마 시절 유피테르 콘세르바토르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로마 목욕탕(테르메) 유적도 발굴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박해 시기에는 지역 기독교인들의 비밀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초기 기독교 교회 건설
최초의 기독교 교회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작은 교회로 시작하여 성 토마스 단일 본당 교회가 추가되었고, 5세기 초에는 확장된 홀 교회로 통합되었다.
3랑식 바실리카로 발전
3랑식 바실리카로 개조되었으며, 이 시기에 세례당과 주교 관저가 건설되었다. 바닥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초대 주교 안토니우스
풀라에 주교좌가 있었던 첫 번째 주교 안토니우스의 이름이 이 시기에 언급된다.
베네치아 습격 및 화재
베네치아의 습격과 그로 인한 화재로 대성당이 심하게 손상되었다.
재건 및 확장
대대적인 재건축을 통해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고 현재의 성구실이 추가되었다.
종탑 건설
바로크 양식의 독립된 종탑이 바실리카 앞, 5세기 세례당 옆에 세워졌다. 종탑 건설에는 풀라 원형 경기장의 석재가 사용되었다.
고전주의 파사드 건설
보타리 주교 시절 현재의 고전주의 양식 파사드가 건설되었으며, 대성당과 종탑의 대대적인 재건축이 시작되어 1924년에 완료되었다.
교구청 이전
교구청 소재지가 포레치로 이전되었다.
세례당 철거
5세기에 지어진 세례당이 철거되었다.
폭격 피해
풀라 폭격으로 대성당이 다시 심하게 손상되었다.
복구 완료
제2차 세계 대전 중 입은 피해가 복구되었다.
여담
대성당의 종탑은 1707년에 지어졌는데, 건축 당시 풀라 원형 경기장에서 가져온 석재가 사용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성당 내부 바닥에는 'DAMIANUS ET LAVRENTIA'라는 명문이 새겨진 5세기 모자이크 일부가 남아있는데, 이는 당시 한 부부가 결혼 서약의 일부로 모자이크 제작 비용을 지불하며 봉헌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과거 이 대성당에는 풀라와 포레치-풀라 교구의 수호성인인 사도 토마스의 유물을 보관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황금 유물함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 이 유물은 5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675년 중앙 제단 아래에서 5개의 석관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성 게오르기우스, 성 테오도르 등 초기 기독교 성인들의 유골과 함께 11세기 헝가리 왕 솔로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대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고대 로마 시절 유피테르 신을 모시던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며, 로마 시대 목욕탕 유적도 발견되어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비밀리에 모임을 가졌던 장소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2Fbanner_1747501426875.jpg&w=3840&q=75)
/feature_0_17477304257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