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중세 요새 유적과 고대 동굴 도시에 매료된 역사 애호가 및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 하이킹을 즐기려는 활동적인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고대 카라이트인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동굴 주거지와 종교 시설 유적을 탐험하고, 요새 성벽과 망루에 올라 주변 계곡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잘 보존된 자니케 카님 영묘와 같은 역사적 건축물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
일부 등반로는 돌이 미끄러워 주의가 필요하며, 입장료는 현금으로만 결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또한, 일부 구역에는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고 화장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언급도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및 하이킹
- 바흐치사라이 시내에서 성 우스펜스키 수도원(Свято-Успенский монастырь)까지 이동 후, 수도원부터 추푸트칼레까지 이어지는 하이킹 코스를 이용한다.
- 두 가지 주요 등산로가 있으며, 왼쪽의 짧고 비교적 가파른 길(약 30-40분 소요) 또는 오른쪽의 길고 완만한 길이 있다.
등산로 입구나 바흐치사라이 시내에서 유료 지프 투어를 이용해 정상 근처까지 이동할 수도 있다.
🚌 대중교통 이용
- 바흐치사라이 버스 터미널에서 2번 버스를 타고 종점(구시가지, Старый город)에서 하차 후, 성 우스펜스키 수도원 방향으로 도보 이동하여 하이킹 코스를 이용한다.
🚗 자가용 이용
- 바흐치사라이 시내를 지나 한스키 궁전을 우측에 두고 직진하여 성 우스펜스키 수도원 방면으로 이동한다.
- 수도원 근처에 주차 후 도보로 이동하거나, 일부 현지인들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동문 근처까지 차량으로 접근하기도 하나 일반 차량에게는 권장되지 않는다.
수도원 인근 주차 공간이 협소할 수 있으므로 이른 시간 방문이 유리하다.
주요 특징
중세 시대 카라이트인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수많은 동굴 주거지와 방어 시설, 고대 거리 유적을 직접 탐험하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일부 동굴은 내부 구조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요새 동쪽 문 너머 전망대에서는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마리암-데레(Марьям-Дере) 계곡의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하이킹 중 만나는 여러 조망 지점에서도 멋진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다.
15세기에 지어진 토크타미시 칸의 딸, 자니케 카님의 영묘는 추푸트칼레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 중 하나로, 독특한 건축 양식과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추천 포토 스팟
동문 밖 전망대 (마리암-데레 계곡 조망)
요새 동문 너머에 위치하며, 마리암-데레 계곡의 웅장한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고대 동굴 주거지 입구
독특한 형태의 동굴 입구와 내부를 배경으로 고대 도시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요새 성벽 및 망루
잘 보존된 성벽과 망루에 올라 주변 경관과 함께 요새의 역사적인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등반과 장시간 도보 이동에 대비해 편안한 운동화 착용은 필수이며, 햇볕이 강하므로 모자와 선크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정상 부근에서는 식수나 간식을 구매하기 어려우므로 미리 충분한 양의 물과 간식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현금(성인 약 300루블)으로만 결제가 가능하며, 카드 결제는 지원되지 않는다.
학생증을 제시하면 입장료 할인(약 100루블)을 받을 수 있으며, 16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보다 깊이 있는 역사적 배경 이해와 관람을 원한다면 현지 가이드가 진행하는 유료 투어 참여를 고려할 수 있다.
인파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전 일찍(9-10시경) 방문하는 것이 비교적 쾌적한 관람에 도움이 된다.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성 우스펜스키 수도원 근처의 성스러운 샘(святой источник)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등산로 주변 상점에서 크림 차, 꿀, 기념품 등을 판매하므로 하산길에 둘러볼 만하다.
역사적 배경
요새화된 정착지 건설
비잔틴 제국의 변방 지역에 알란인들에 의해 요새화된 정착지가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키르크-오르(Kyrk-Or)로 기록
문헌에 '40개의 요새'라는 의미의 키르크-오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된다.
킵차크 칸국(금장 한국)의 침공
노가이 칸이 이끄는 킵차크 칸국 군대가 크림반도를 침공하여 키르크-오르를 점령하고 타타르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카라이트 장인 정착
타타르인들이 카라이트 장인들을 동쪽 방어선 앞에 정착시키고 새로운 방어벽을 건설하여 도시의 새로운 구역이 형성되었다.
크림 칸국의 수도
초대 크림 칸 하지 1세 기라이가 요새의 이점을 인식하고 이곳을 자신의 요새화된 거주지로 삼았다.
수도 이전 및 요새 역할 유지
크림 칸국이 강화되면서 멘글리 1세 기라이가 수도를 바흐치사라이로 옮겼으나, 키르크-오르는 바흐치사라이의 성채이자 귀족 포로 수감 장소로 남았다.
카라이트인 중심 거주 및 명칭 변경
타타르인들이 키르크-오르를 떠나고, 크림 칸국의 다른 도시 거주 제한으로 인해 카라이트인들과 소수의 크림차크 유대인들만이 남게 되었다. 점차 '유대인의 요새'라는 의미의 추푸트칼레로 불리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 합병 및 황폐화 시작
크림 칸국이 러시아 제국에 합병된 후, 요새 주민들의 거주 제한이 풀리면서 추푸트칼레는 점차 버려지기 시작했다.
도시 소멸
마지막 주민들이 떠나면서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여담
추푸트칼레라는 이름은 크림 타타르어와 터키어로 '유대인 요새'를 의미하며, 이곳에 주로 거주했던 카라이트인들은 스스로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겼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반면, 카라이트인들은 이곳을 단순히 '요새(칼라)'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과거에는 '키르크 예르(마흔 개의 장소)' 또는 '키르크 오르(마흔 개의 요새)'로 불렸는데, 이는 칸이 40가구의 카라이트인을 데려와 정착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전설이 있다.
1299년 킵차크 칸국의 노가이 칸 군대가 침공했을 때, 3일 밤낮으로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여 성 안의 수비군을 지치게 한 후 함락시켰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세기 카라이트 학자 아브라함 피르코비치가 이곳 묘지에서 고대 비석들을 발굴했다고 주장했으나, 후대에 위조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대중매체에서
아다 혹은 아도르 (Ada or Ardor: A Family Chronicle)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에서 '츄-풋-칼레(Chew-Foot-Calais)'라는 이름으로 언급되며, 작중 가상의 제2차 크림 전쟁 중 한 등장인물의 사망 장소로 묘사된다.
친절한 자들 (Les Bienveillantes / The Kindly Ones)
조너선 리텔의 소설에서 언급되며, 지역의 복잡한 역사를 강조하는 배경으로 사용된다.
추푸트칼레의 심연 위 길 (Droga nad przepaścią w Czufut-Kale)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가 발표한 '크림 소네트' 연작 중 하나로, 추푸트칼레의 풍경과 분위기를 묘사했다.
삶의 이야기 (Повесть о жизни / Story of a Life)
콘스탄틴 파우스톱스키의 자서전 제2권 '불안한 청춘'의 한 장(제65장 '어느 날')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중 추푸트칼레를 방문했던 경험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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