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지는 역사적, 종교적 의미가 깊은 장소로, 비잔틴 시대의 웅장한 건축 양식의 흔적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기독교 성지 순례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광대한 대성당 유적을 탐험하며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고, 전승에 따라 사도 요한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곳과 세례 터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아야술룩 언덕 위에 위치하여 셀축 시내와 주변의 아르테미스 신전 터, 이사 베이 모스크 등을 조망하는 경험도 가능하다.
상당 부분 폐허로 남아 있어 사전 정보나 가이드 없이는 유적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으며, 일부 방문객은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셀축 시내에서 St. Jean Cd.를 따라 이동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입구 근처에 유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도보
- 셀축 시내 중심부에서 아야술룩 언덕 방향으로 약 15~20분 정도 소요될 수 있다.
- 언덕길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편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 택시 이용
- 셀축 시내 어디서든 택시를 이용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대성당 중앙 제대 아래에 사도 요한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장소이다. 대리석 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많은 순례객들이 찾는 핵심적인 공간이다.
교회 북쪽에 위치했던 큰 팔각형 모양의 세례 터 유적이다. 비교적 형태가 잘 남아있어 당시 세례 의식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대성당 바로 위 언덕에 위치한 아야술룩 성채는 셀축의 주요 방어 시설이었다. 대성당 입장권으로 함께 방문 가능한 경우가 많으며, 성채에서는 셀축 시내와 주변 평야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운영시간: 대성당 운영시간 내, 보통 17:30 마감
추천 포토 스팟
대성당 유적과 남아있는 기둥들
무너진 성당의 웅장했던 과거를 상상하며 기둥과 벽체를 배경으로 촬영한다. 특히 석양 무렵 빛이 아름답다.
아야술룩 성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
성채 위에서 성 요한 대성당 유적 전체와 함께 멀리 보이는 이사 베이 모스크, 아르테미스 신전 터, 셀축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세례 터 내부
팔각형 구조의 세례 터 내부에서 독특한 건축미를 담거나, 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포착한다.
축제 및 이벤트
사도 요한 축일 기념 순례
매년 5월 8일 (전승에 따름, 정확한 날짜 및 행사 유무는 현지 확인 필요)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의 축일인 5월 8일에 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와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현대에도 소규모 순례가 이어질 수 있다.
방문 팁
여름철에는 매우 더우므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으며, 물과 모자, 선글라스를 준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어 안내판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정보를 숙지하거나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더욱 의미 있는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권으로 인접한 아야술룩 성채(Ayasuluk Castle)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단, 성채는 대성당보다 일찍 문을 닫을 수 있다.
유적지 내부는 돌길과 흙길이 많고 경사가 있으며, 일부 대리석 바닥은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편안하고 안전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에페소 유적지, 에페소 박물관 등 주변 관광지와 함께 둘러볼 계획이라면 통합 입장권 구매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입구 근처에 화장실과 음료 자판기가 있으며, 일부 카페에서는 주변 경치를 조망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소규모 예배당 건설
사도 요한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 위에 작은 예배당(또는 영묘)이 처음 세워졌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황제 통치 기간에 바실리카 양식으로 확장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성당 건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기존의 소규모 바실리카를 허물고 훨씬 웅장한 규모의 대성당을 건설하도록 명령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성 사도 교회를 모델로 하여 십자형 평면에 6개의 돔을 얹은 형태로 지어졌다.
주요 순례지로 번성
완공 후 중세 시대에 걸쳐 기독교 세계의 중요한 순례지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다. 사도 요한의 무덤에서 나오는 '만나'라는 성스러운 먼지가 병을 치유한다는 전설이 유명했다.
대지진으로 파괴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이슬람 지배 및 방치
셀주크 투르크 및 아이든 왕조의 지배 하에 들어가면서 복원되지 못하고 점차 폐허가 되었다. 일부 건축 자재는 인근 이사 베이 모스크 건설 등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고학 발굴 및 복원
고고학적 발굴과 일부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여전히 중요한 역사 유적지이자 관광 명소로 관리되고 있다.
여담
사도 요한이 노년에 에페소에 머물며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을 저술했으며, 이곳 아야술룩 언덕에 묻혔다는 전승이 내려온다.
과거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사도 요한의 무덤에서 매년 5월 8일 기적적으로 '만나(manna)'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먼지가 나왔으며, 이 먼지를 모아 담아가면 병을 고치고 폭풍을 잠재우는 등의 효험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순례자들은 이 '만나'를 담아가기 위해 성 요한의 모습이 새겨진 테라코타 또는 금속 재질의 작은 플라스크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성당의 정문은 '박해의 문(Gate of Persecution)'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초기 기독교 박해와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의미로 해석된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대성당 건설과 함께 인근에 수로를 건설하여 당시 척박했던 에페소 지역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해진다.
대성당 건축에 사용된 대리석 기둥 중 일부는 콘스탄티노플이나 프로콘네소스 섬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이며, 일부는 현지 장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야술룩 언덕은 청동기 시대 후기 아르자와 왕국의 수도였던 아파사(Apasa)의 유적지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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