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기독교 수도원의 광대한 유적을 탐험하고, 해발 479m 언덕 정상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풍경 사진가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십자형 수도원 터에 남아있는 세 개의 교회 유적과 성 시메온이 머물렀던 기둥의 기초 부분을 직접 살펴볼 수 있으며, 사만다으 해변과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안내 부족과 유적 관리 상태에 아쉬움을 표하며, 2023년 지진 이후 방문이 중단된 상태로 알려져 있고, 최근에도 예고 없이 닫혀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안타키아에서 남서쪽으로 약 29km, 사만다으에서는 동쪽으로 약 6km 떨어져 있다.
- D420 도로에서 진입하며, 포장된 도로를 따라 언덕 정상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하다.
- 일부 구간은 도로 폭이 좁거나 경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운전에 유의해야 한다.
구글맵 길안내가 간혹 부정확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으므로, 다른 내비게이션 앱을 함께 사용하거나 현지 표지판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 택시 이용
- 안타키아 또는 사만다으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다.
🚌 대중교통 이용
- 수도원까지 직접 연결되는 대중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확인되지 않아, 이용이 어려울 수 있다.
주요 특징
수도원 중심부 팔각형 공간에 남아있는 성 시메온이 머물렀던 기둥의 기초 부분과, 모자이크 및 장식 흔적이 남아있는 세 개의 교회 유적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초기 기독교 수도원의 규모와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해발 479m 언덕 정상에 위치하여 사만다으 지역과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특히 맑은 날에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주변 산세를 감상할 수 있으며, 일몰 풍경도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수도원 유적 주변 능선에 다수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고대 유적과 현대 기술의 대비가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며, 사진 촬영 소재로도 활용된다.
추천 포토 스팟
전망 테라스 (수도원 유적과 바다 배경)
수도원의 석조 유적 너머로 펼쳐지는 사만다으 해변과 지중해의 푸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성 시메온 기둥 유적 (팔각형 공간)
수도원의 중심이었던 성 시메온의 기둥 기초와 이를 둘러싼 팔각형 구조물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수도원 전경 (풍력 발전기와 함께)
언덕 위에 자리한 수도원 유적 전체와 현대적인 풍력 발전기가 어우러진 독특하고 광활한 풍경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2023년 지진 이후 방문이 중단된 상태이며, 최근에도 예고 없이 문이 닫혀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방문 가능 여부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다.
포장도로가 잘 되어 있으나, 일부 구간은 좁고 경사가 있으므로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정상 부근은 바람이 강하고 기온이 낮을 수 있으므로, 따뜻한 옷이나 바람막이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에 대한 안내판이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무료입장 및 무료 주차가 가능했다.
화장실 시설이 있으나, 운영 시간에만 개방되거나 현재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
구글 지도 내비게이션이 간혹 부정확한 길을 안내할 수 있으므로, 다른 지도 앱을 함께 사용하거나 현지 표지판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건립
기둥 성자로 알려진 젊은 성 시메온(St. Simeon Stylites the Younger, 521-597)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가 마지막 생애 45년을 보낸 기둥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번성기
이븐 부틀란(Ibn Butlan)은 당시 수도원 건물의 규모가 바그다드의 절반에 달한다고 기록할 정도로 번성했으며, 중요한 순례지였다.
셀주크 왕조의 약탈
술레이만 이븐 쿠탈미쉬(Suleiman ibn Qutalmish)의 안티오키아 정복 과정에서 약탈당하여 많은 수도사들이 흩어졌다.
재건 및 재번성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안티오키아가 재정복되면서 수도원이 재건되었고, 다시 번성기를 맞이했다.
맘루크 왕조에 의한 파괴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Sultan Baybars)가 안티오키아를 공격하면서 수도원을 파괴했고, 이후 회복되지 못하고 폐허로 남게 되었다.
여담
젊은 성 시메온은 기둥 위에서 생활하며 설교하고 기적적인 치유를 행했다고 전해지며, 생전에도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이 수도원은 13세기까지 중요한 기독교 순례지 중 하나였다.
과거 니콘(Nikon of the Black Mountain)과 같은 저명한 기독교 저술가이자 수도사가 이곳에 거주하며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의 이름은 인근 항구도시였던 셀레우키아 피에리아(현재의 사만다으)의 지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일부 방문객들은 수도원 유적 주변에 설치된 현대적인 풍력 발전기들이 역사적인 장소의 고요함과 고유한 경관을 다소 해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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