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였던 대도시의 흔적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직접 탐방하고자 하는 역사 및 고고학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국경 지대의 독특한 분위기와 함께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유적을 경험하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방문객들은 광활한 유적지를 걸으며 아니 대성당, 다양한 교회 유적, 초기 이슬람 사원, 견고한 성벽 등 여러 문명이 남긴 건축물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아후리안 강 너머로 아르메니아를 조망하며 과거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었던 이곳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느껴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유적지 내 편의시설(화장실, 안내판 등)이 부족하고, 일부 유적의 보존 상태가 미흡하며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입장료 및 내부 시설 이용 시 차등 요금을 적용하거나 결제 수단이 제한적인 점, 일부 구역의 청결 및 안전 문제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카르스(Kars) 시내 중심부(예: Simit Sarayı 앞 또는 Faikbey Caddesi)에서 아니 유적지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 또는 미니버스가 있다.
- 일반적으로 오전 9시경 출발하며, 아니 유적지에서 오후 12시 45분 또는 1시 30분경 카르스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운영된다.
- 왕복 요금은 약 60TL 수준이다 (변동 가능).
버스 출발 장소나 시간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현지에서 재확인하는 것이 좋다.
🚕 택시 이용
- 카르스 시내에서 아니 유적지까지 택시를 대절하여 이동할 수 있다.
- 왕복 요금은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약 1500 TL에서 2800 TL 사이로 형성될 수 있으며, 탑승 전 기사와 요금을 협상하는 것이 좋다.
여러 명이 함께 이용할 경우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일부 택시 기사는 유적지에서 2~4시간 정도 대기해준다.
🚗 자가용 이용
- 카르스 시내에서 아니 유적지까지는 약 45km 거리이며, 포장된 도로를 따라 약 45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유적지 입구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국경 지역이므로 검문이 있을 수 있다. 겨울철에는 도로 상태에 유의해야 한다.
주요 특징
아니 유적지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걸쳐 아르메니아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양식으로 지어졌다. 웅장한 규모와 섬세한 석조 장식이 인상적이며, 셀주크 정복 이후 모스크로도 사용되어 '페티예 자미'라고도 불린다. 현재 일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일 수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교회로, 내부에 다채로운 프레스코화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그림 있는 교회(Resimli Kilise)'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아후리안 강 협곡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교회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주변의 뛰어난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11세기 후반 셀주크 왕조 시기에 지어진 모스크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셀주크 시대 모스크 중 하나로 여겨진다. 독특한 팔각형 형태의 미나렛이 특징적이며, 내부에서 기도도 가능하다. 모스크 인근에서는 과거 실크로드 다리의 잔해와 협곡의 멋진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아니 대성당과 주변 평원
유적지의 상징인 대성당을 중심으로 광활한 평원과 함께 담아내면 역사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노을과 함께 촬영하면 더욱 극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티гран 호넨츠의 성 그레고리우스 교회와 아후리안 강 협곡
교회 건물과 함께 그 배경으로 펼쳐지는 깊은 아후리안 강 협곡, 그리고 강 건너 아르메니아 땅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 중 하나이다.

실크로드 다리 유적과 협곡 (미누체흐르 모스크 인근)
과거 동서양을 잇던 실크로드 다리의 쓸쓸한 잔해와 웅장한 협곡의 모습을 함께 촬영할 수 있다. 미누체흐르 모스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유적지가 매우 넓으므로 최소 3-4시간의 관람 시간을 계획하고, 많이 걸어야 하므로 편안한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착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겨울에는 영하의 혹한과 많은 눈에 대비해 방한복, 방수 신발, 모자, 장갑 등을 철저히 준비해야 하며, 여름에는 강한 햇볕을 피할 모자, 선크림, 선글라스와 충분한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8유로 또는 현지 통화(TL)로 지불해야 하며, 카드 결제가 불가능할 수 있으니 현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2024년 기준 약 290TL)
유적지 내부에 매점이나 식수 시설이 부족하거나 없을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간식과 마실 물을 충분히 챙겨가는 것이 좋다.
단체 투어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 있으므로, 유적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방문하거나 택시를 대절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전동 카트(유료)를 이용하면 넓은 유적지를 조금 더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카르스 시내에서 오전 9시경 출발하는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하면 비교적 저렴하게 방문할 수 있다. 왕복 요금은 약 60TL이다.
각 유적지에 터키어와 영어로 된 안내판이 있지만, 일부 훼손되거나 정보가 부족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정보를 미리 학습하거나 가이드북을 참고하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국경 지역이므로 아르메니아 방향으로 사진 촬영 시 주의가 필요할 수 있으며, 군사 시설 근처 접근은 삼가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초기 정착
아니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 있으며, 우라르투 왕국 시기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바그라티드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
아니는 아르메니아 바그라투니 왕조의 수도로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당시 인구 10만에서 20만에 달하는 대도시로 성장했으며, '1001개 교회의 도시', '40개 성문의 도시'로 불릴 만큼 번영했다. 아니 대성당 등 수많은 종교 및 공공 건축물이 이 시기에 세워졌다.
셀주크 제국의 정복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에 의해 정복되었다. 이후에도 도시는 한동안 중요성을 유지했으며, 미누체흐르 모스크와 같이 이슬람 건축물도 들어서게 되었다.
몽골 제국의 침입
몽골군의 침입으로 도시는 큰 타격을 입고 약탈당했으며, 이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지진과 도시의 몰락
파괴적인 지진으로 인해 도시의 많은 부분이 무너졌고, 이후 계속된 외침과 교역로 변화 등으로 인해 도시는 점차 버려지게 되었다. 한때 번성했던 대도시는 초라한 유적이 흩어진 작은 마을로 전락했다.
러시아 제국 하의 발굴 및 연구
1878년 베를린 회의 결과 러시아 영토가 되면서, 러시아 고고학자 니콜라이 마르(Nikolai Marr)의 주도로 본격적인 발굴 및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기록되었으며, 일부 복원 시도도 있었다.
터키 공화국 영토 편입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터키-아르메니아 전쟁을 거쳐 터키 공화국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이후 국경지대로서 군사적 통제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유적 관리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
아니 고고학 유적지(Ani Arkeolojik Alanı)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 이를 계기로 보존 및 관광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여담
아니 유적지 바로 옆을 흐르는 아후리안 강(Arpaçay)은 현재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이 강을 가로지르던 실크로드 다리의 잔해가 남아 있어, 한때 두 지역을 잇던 중요한 교역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전성기 시절 아니는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카이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거대한 도시였으며, 인구가 10만에서 20만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유령 도시', '세계의 도시'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고고학자 니콜라이 마르의 조수로 발굴에 참여했던 아르메니아인 칼란타르 아쉬하크르벡은 아니 유적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6,000점이 넘는 유물을 발굴했으나, 안타깝게도 스탈린 시대에 민족주의자로 몰려 숙청당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아니 유적의 보존 상태와 관리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란이 있어왔다. 특히 아르메니아계 유적에 대한 터키 정부의 관리 소홀 문제나, 인근 지역의 댐 건설 계획이 유적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국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과거 국경지대의 군사적 긴장감으로 인해 1990년대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었으며, 2004년까지도 방문 시 터키군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
2010년 터키 극우 이슬람 단체들이 아니 대성당 터에서 이슬람 예배를 강행하여 아르메니아와 그리스 등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으며, 이는 당시 터키 문화부 장관의 승인 하에 아제르바이잔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