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 및 이베리아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사랑의 모자이크' 등 주요 고고학적 발견물을 직접 확인하려는 역사 애호가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광대한 유적지를 탐방하며 고대 도시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고, 방문자 센터의 전시를 통해 역사적 배경을 학습할 수 있다. 가이드 투어로 주요 발굴 지점의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유적지 내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고 발굴 유물이 현장이 아닌 리나레스 고고학 박물관에 주로 전시되어 있어 아쉬움을 표하며, 전체 유적지의 극히 일부만 발굴되어 유지 관리가 미흡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리나레스(Linares)에서 토레블라스코페드로(Torreblascopedro) 방면 JA-4102 도로를 따라 약 5km 이동 후, 카스툴로 방면으로 안내된 이정표를 따라 진입한다.
- 유적지 입구에 방문객용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 진입 구간의 도로는 다소 좁을 수 있으니 운전에 유의한다.
🚌 대중교통 이용
- 유적지의 위치상 대중교통 접근성은 제한적일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리나레스 지역 대중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신화적 장면과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가 특징인 로마 시대 모자이크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유적지에서 가장 중요한 발굴품 중 하나로 여겨지며,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다.
이베리아 시대부터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건축물 흔적, 성벽, 저수조, 목욕탕 터 등을 둘러보며 고대 도시의 규모와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광대한 부지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따라 걷는 것 자체가 역사 체험이다.
유적지 입구에 위치한 방문자 센터에서는 카스툴로의 역사와 중요성에 대한 소개 영상 및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본격적인 유적지 탐방 전 배경지식을 쌓기에 좋다.
추천 포토 스팟
사랑의 모자이크 (Mosaico de los Amores)
정교하고 화려한 로마 시대 모자이크 전체 또는 세부 장면을 담을 수 있다. 유적지의 상징적인 유물이다.
로마 목욕탕 유적 (Termas romanas de la Villa del Olivar)
고대 목욕탕의 구조와 남아있는 유적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과달리마르 강 조망 지점
유적지 일부 구역에서는 주변의 과달리마르 강과 넓게 펼쳐진 올리브 밭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유적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으며, 일부 방문객은 특정 가이드(예: 유적지 책임자)의 열정적인 설명을 높이 평가한다.
유적지 규모가 넓고 대부분 야외이며 그늘이 부족하므로, 편안한 신발과 모자, 선크림, 충분한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이베리아 사자상, 그리스도 파테나 등)의 상당수는 리나레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므로 함께 방문하면 관람 경험이 더욱 풍부해진다.
입장료는 무료로 운영된다는 정보가 다수 있다.
방문자 센터 인근에 차량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일부 방문객은 특히 여름철에 모기 기피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한다.
역사적 배경
초기 정착
신석기 시대 말기, 과달리마르 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경 사회(실로스 문화)가 형성되며 초기 마을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청동기 시대 중심지 부상
중기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카스툴로는 시에라 모레나 지역의 풍부한 광물 자원(구리, 납, 은) 채굴과 야금 활동의 중요한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이 시기 아르가르 문화와 교류한 흔적도 발견된다.
타르테소스 문화 영향 및 발전
후기 청동기 시대, 라 무엘라(La Muela) 지역에는 궁전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축물이 등장하는 등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타르테소스 문화권의 외곽 중심지 역할을 하며 그리스 및 페니키아와의 교역 거점으로 기능했다.
이베리아 문화 형성 및 오피둠 건설
철기 기술 도입과 함께 지역 귀족 계층이 등장하며 독자적인 이베리아 문화가 형성되었다. 기존의 라 무엘라 정착지에서 언덕 위로 도시가 옮겨지면서 방어에 유리한 오피둠(oppidum, 요새화된 도시) 형태의 카스툴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과 로마 동맹 전환
카르타고의 중요한 동맹 도시였으며, 한니발 장군이 카스툴로 출신의 공주 이밀세와 결혼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후반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협정을 맺고 로마 공화국의 동맹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자유 도시(civitas libera et immunis) 지위를 획득했다.
로마 도시로서의 번영
본격적인 로마화가 진행되면서 라틴법이 적용되는 자치시(municipium)로 승격되었다. 수도교, 공중목욕탕, 극장 등 대규모 공공 건축물이 건설되었으며, '사랑의 모자이크'와 같은 정교한 예술품도 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기독교 및 유대인 공동체 존재 확인
그리스도 형상이 새겨진 유리 파테나(patena), 메노라(일곱 촛대)가 새겨진 등잔 등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어, 이 시기 카스툴로에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쇠퇴와 이슬람 점령, 그리고 레콩키스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도시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했으며, 이슬람 지배 하에서는 '카스툴루나(Qastuluna)'로 불리며 플라사 데 아르마스 언덕에 산타 에우페미아 성채가 건설되었다. 13세기 페르난도 3세에 의해 카스티야 왕국에 편입되었다.
도시의 최종 폐허화
산타 에우페미아 성채의 방어시설이 철거되고 몇 차례의 재정착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카스툴로는 최종적으로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고고학 발굴 및 연구 재개
1969년부터 1983년까지, 그리고 1991년까지 단속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2011년 '카스툴로 고고학 단지(Conjunto Arqueológico de Cástulo)'로 지정되고 'Forum MMX'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재개되었다. 이를 통해 '사랑의 모자이크'를 비롯한 다수의 중요 유물이 발견되었다.
여담
고대 로마의 역사가 대 플리니우스가 저서 '박물지'에서 히스파니아의 지리적 범위를 설명할 때 카스툴로를 주요 지점으로 언급했다는 얘기가 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베리아의 강력한 도시였던 카스툴로 출신의 공주 이밀세와 정략결혼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카스툴로에서 발견된 4세기 유리 파테나(성찬용 접시)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형상 중 하나가 새겨져 있어 초기 기독교 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는 언급이 있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메노라(일곱 가지 등잔대)가 새겨진 등잔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정착 증거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는 유대인 공동체가 로마 시대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얘기가 있다.
카스툴로는 고대에 은과 납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한 시에라 모레나 산맥의 관문 역할을 하며 경제적으로도 번성했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2Fbanner_1748612297462.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