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포르투갈의 역사와 아름다운 알렌테주 지역의 풍경을 함께 경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탁 트인 전망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고고학적 유적과 다양한 시대의 건축 양식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방문지가 될 수 있다.
방문객들은 성벽과 탑을 탐험하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거나, 발굴된 고대 마을 유적을 통해 역사의 흔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성 정상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평원의 경치는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일부 방문객들은 성의 전반적인 관리 상태가 미흡하고 일부 구역이 방치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으며, 내부에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의견도 간혹 보인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내비게이션에 'Castelo de Moura' 또는 제공된 주소 입력 후 이동한다.
성 주변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언급이 있다.
주요 특징
성의 다양한 탑과 성벽을 따라 걸으며 중세 요새의 구조를 살펴보고, 알렌테주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주탑과 시계탑에서의 조망이 뛰어나다.
성 내부에서는 고대 마을 유적과 이슬람 점령기부터 중세에 이르는 다양한 고고학적 층위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로마 시대 무덤도 발견되어 역사적 중요성을 더한다.
모우라 공주 살루키아의 슬픈 전설이 깃든 살루키아 탑을 방문하여 그 이야기를 되새겨볼 수 있다. 이 전설은 모우라라는 지명과 도시의 문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추천 포토 스팟
주탑 (Keep Tower / Torre de Menagem) 정상
모우라 시내와 광활한 알렌테주 평원을 가장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이다.
살루키아 탑 (Salúquia Tower) 주변
성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탑과 함께 주변 경관을 담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다.
성벽 위 산책로 (Chemin de ronde)
성벽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성의 모습과 주변 풍경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크리스마스 시즌 장식
매년 12월경 (정확한 기간은 변동 가능)
성 내부 공간 전역에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장식이 설치되어 연말 분위기를 더하며,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사진 촬영 기회를 제공한다.
방문 팁
입장료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성 내부에 관광 안내소와 공중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알렌테주 지역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로, 특히 탑 위에서의 경치가 뛰어나다.
주탑(토르 드 메나젬) 내부 박물관 등 일부 시설은 점심시간(보통 12:00-14:00 사이)에 운영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역 특산품이나 성과 관련된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다.
햇볕이 강한 날에는 그늘이 많지 않으므로 식수를 준비하거나 모자, 선크림 등을 챙기는 것이 좋다.
고고학적 발굴 현장과 다양한 시대의 건축 양식을 함께 볼 수 있어 역사에 관심 있는 방문객에게 유익하다.
역사적 배경
무어인 성벽 건설
철기 시대의 카스트로 유적 위에 무어인들이 성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지어진 흙벽돌(타이파) 탑이 살루키아 탑으로 알려져 있다.
살루키아 공주 전설 및 기독교 세력의 점령
전설에 따르면, 모우라 공주 살루키아가 약혼자를 기다리다 기독교 군대의 기습으로 성이 함락되고 공주는 탑에서 몸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모우라'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아폰수 1세가 포랄(헌장)을 수여했다.
포르투갈 왕국의 확고한 영토 편입
아폰수 2세가 포랄을 재확인하고, 디니스 왕 통치 하에 모우라는 포르투갈 왕국의 영토로 확고히 편입되었다. 무어인 공동체에도 별도의 포랄이 발급되었다.
성곽 재건 및 강화
기존 무어인 요새를 통합하여 성곽이 재건되었으며, 1320년 아비스 기사단이 성의 재건 및 유지보수를 지원했다. 페르난두 왕의 지시로 마을 확장과 함께 두 번째 성벽 라인이 건설되었다.
추가 건축 및 변경
프란시스쿠 드 아루다의 지휘 하에 주탑과 살루키아 탑, 시계탑을 분리하는 벽 등이 건설되었다. 1512년 마누엘 1세가 새로운 포랄을 발급했다.
성 내 수도원 건설
도미니카 수도회 수녀들이 성벽 내부에 이슬람 사원의 기초를 활용하여 수도원을 건설했다.
복원 전쟁 중 요새 강화
주앙 4세의 지시로 니콜라우 드 랑그르가 성벽과 보루를 건설하여 요새를 강화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파괴
오수나 공작 군대가 철수하면서 성벽 일부를 폭파하여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리스본 대지진 피해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성이 추가적인 손상을 입었다. 이후 성벽의 흙벽돌 등이 다른 건축에 재사용되면서 쇠퇴기를 맞았다.
시계탑 건설 및 일부 철거
현재의 시계탑이 건설되었으나, 1850년에는 주탑의 서쪽 벽이 개인에 의해 철거되기도 했다. 수녀원은 1875년에 완전히 버려졌다.
복원 및 발굴 작업
1959년부터 탑과 성벽의 보수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복원 및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2011년에는 로마 시대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여담
모우라 성의 이름은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성에서 몸을 던진 무어인 공주 살루키아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전설은 모우라 시의 문장에도 반영되어, 죽은 무어인 여성과 탑이 그려져 있다.
성 내부에 있는 ‘살루키아 탑’은 이 전설 속 공주와 관련된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인근의 한 올리브 밭은 공주의 약혼자였던 브라파마가 기독교 군에게 매복 공격을 당한 곳으로 불린다고 한다.
11세기 중반에서 12세기에 걸쳐 건설된 무어인들의 성벽은 철기 시대의 카스트로(언덕 요새) 유적 위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성벽 안에는 도미니카 수도회 수녀들이 1562년에 세운 상 도밍구스 수도원이 있었는데, 이 수도원은 과거 이슬람 사원(모스크)의 기초를 활용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1707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오수나 공작이 이끄는 군대가 철수하면서 성의 여러 부분을 폭파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후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성은 추가적인 손상을 입었다.
19세기에 현재의 시계탑이 건설되었으며, 이는 성의 비교적 후대 건축물에 해당한다.
2011년, 성 내부에 관광객 안내 센터를 건설하던 중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로마 시대의 무덤과 건물 유적이 발굴되어, 이곳의 오랜 역사적 층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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