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도시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고 중세 템플 기사단의 역사적 흔적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풍경 감상 목적의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1인 여행객이나 커플 단위 방문객에게 조용히 산책하며 경치를 즐기기 좋은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남아있는 성벽과 탑을 따라 걸으며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고, 특히 성곽 가장 높은 곳에서는 카스텔루 브랑쿠 시내와 주변 자연경관을 파노라마처럼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멀리 에스트렐라 산맥과 스페인 국경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성곽 자체의 규모가 크지 않고 현재 남아있는 유적이 많지 않아, 웅장하고 완벽한 형태의 성을 기대하는 방문객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성곽 입구까지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 주차는 성곽 입구 또는 인근 산타 마리아 두 카스텔루 교회 주변에 마련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성곽으로 향하는 일부 도로는 매우 좁고 가파르므로 운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 도보 이용
- 카스텔루 브랑쿠 시내 중심부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으나,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주요 특징
성벽 위나 탑 부근에서는 카스텔루 브랑쿠 시가지 전체와 주변 평야, 멀리 보이는 산맥까지 환상적인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일몰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운영시간: 24시간
13세기에 템플 기사단에 의해 건설된 이 성은 비록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남아있는 성벽, 탑, 그리고 성벽 내부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두 카스텔루 교회 등을 통해 중세 기사단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과거 요새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운영시간: 24시간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잘 관리된 주변 환경과 함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잠시 앉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운영시간: 24시간
추천 포토 스팟
성벽 위 (도시 전경 배경)
가장 높은 곳에서 카스텔루 브랑쿠 시내 전체와 주변 풍경을 와이드하게 담을 수 있다.
주탑 또는 남아있는 탑 근처 (일몰 배경)
해 질 녘, 붉게 물드는 하늘과 함께 성의 실루엣을 촬영하여 드라마틱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설치된 셀피 포스트
마련된 거치대를 이용하여 안정적으로 본인 또는 일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방문 팁
성곽까지 차량으로 직접 올라갈 수 있으나, 일부 구간의 도로 폭이 매우 좁으므로 운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입장료가 없는 무료 개방 시설이므로 부담 없이 방문하여 즐길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에 방문하면 아름다운 일몰과 함께 도시의 야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성벽 내부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두 카스텔루 교회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성곽 주변이나 인근 교회 근처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무어인으로부터 정복 및 템플 기사단 기증
훗날 카스텔루 브랑쿠가 될 영토가 무어인으로부터 정복되어 템플 기사단에게 기증되었다.
헌장(Foral) 발급
아빌라/에보라 모델에 따라 지역 헌장이 발급되었다.
카스텔루 브랑쿠 명칭 첫 등장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교서에서 처음으로 '카스텔루 브랑쿠'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
템플 기사단의 성곽 건설
아폰수 2세 국왕의 명령으로 템플 기사단이 첫 번째 방어 성벽을 건설하여 토마르, 몬산투 등과 이어지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4개의 성문 건설
디니스 왕 통치 기간 동안 성에는 황금문, 산티아고문, 배신자문, 펠라메문의 4개 성문이 있었다.
두 번째 성벽 건설
두 번째 성벽이 건설되어 총 7개의 성문이 생겼다.
외보(Barbican) 건설
성곽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외보가 건설되었다.
지휘관 궁전 건설
성 내부에 지휘관들을 위한 궁전이 건설되었으나, 현재는 탑의 일부만 남아있다. 두아르테 다르마스의 '요새의 서(Livro das Fortalezas)'에 당시 성의 모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스페인 연합군 침공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의 침공으로 성벽 일부가 파괴되었다.
7년 전쟁 중 약탈
7년 전쟁 기간 동안 성이 약탈당했다.
쇠퇴와 파괴
반도 전쟁 중 성은 폐허가 되었고, 이후 성벽의 돌과 궁전의 자재들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집을 짓거나 공공사업(폰테 다 그란자 다리 건설 등)에 사용되며 심하게 훼손되었다.
폭풍으로 인한 추가 파괴
격렬한 폭풍으로 인해 성채 벽과 다른 요새 시설들이 파괴되었고, 이 자리에 공동묘지를 조성하려던 계획이 세워졌다.
방치와 일부 복원 시도
성은 역사 문화적 중요성을 거의 상실했으며, 공중 화장실이나 저수조 등이 설치되기도 했다. 간헐적인 복원 시도가 있었으나 대부분 자금 부족 등으로 중단되었다.
문화재 등재 시도
성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공식적인 등재 절차가 시작되었으나, 2013년에 최종적으로 보류되었다.
여담
카스텔루 브랑쿠라는 지명은 포르투갈어로 '하얀 성'을 의미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성의 모습은 주로 어두운 색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 성벽을 구성했던 돌 중 일부는 지역 주민들의 집을 짓는 데 사용되거나, 심지어 폰테 다 그란자(Ponte da Granja)라는 다리를 건설하는 데 재활용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세기 중반, 성터를 공동묘지로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땅이 너무 바위투성이어서 결국 포기되었다고 한다.
도시의 오래된 구시가지 골목을 걷다 보면 현대 건물들 사이에 숨겨진 옛 성벽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한때 성벽을 따라 공중 화장실이 설치되기도 했으며, 성 내부에 식수 공급을 위한 3개의 저수조가 건설된 적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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