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정교한 마누엘 양식 건축과 포르투갈의 역사적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건축 애호가나 역사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인근의 유명한 바탈랴 수도원을 방문한 후,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종교 건축물을 감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방문객들은 독특한 마누엘 양식으로 조각된 정면 포털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면 바탈랴 수도원에서 옮겨온 역사적인 제단과 세례대, 그리고 아름다운 아줄레주 타일 장식을 감상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건물의 유지보수 상태(습기, 페인트 등)에 아쉬움을 표현하며, 때때로 교회가 닫혀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접근 방법
주요 특징
교회 정면을 장식하는 정교한 마누엘 양식의 포털은 이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식물, 동물, 해양 모티프와 더불어 그리스도 기사단 십자가, 혼천의 등 당시 포르투갈의 번영과 탐험 정신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각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내부가 개방된 경우, 바탈랴 수도원에서 옮겨온 다색 대리석 제단과 세례대를 비롯하여, 알카세르 두 살의 수도원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아름다운 아줄레주 타일 장식을 감상할 수 있다. 원시 구조의 일부인 십자형 아치와 제단의 골조 궁륭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문화유산인 바탈랴 수도원 바로 뒤편에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이상적이다. 웅장한 수도원과는 대조적으로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포르투갈 종교 건축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정면 마누엘 양식 포털 앞
섬세하고 화려한 마누엘 양식의 포털 전체 또는 세부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웅장한 바탈랴 수도원에 가려져 간과하기 쉽지만, 정교한 마누엘 양식 포털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교회 내부는 상시 개방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개방 여부를 확인하거나 운에 맡겨야 할 수 있다.
바탈랴 수도원 방문 일정에 포함하여 함께 둘러보면 동선이 효율적이다.
일부 방문객들에 의해 건물 외부 및 내부의 유지보수 상태에 대한 지적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기대치를 조절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건축 시작
마누엘 1세 국왕의 통치 기간 중, 증가하는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의 요청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1차 완공
교회 정면 포털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주요 골격이 완성되었다.
추가 공사 및 최종 완공
당시 교회의 소유주였던 바탈랴 자비의 형제단(Confraria da Misericórdia da Batalha)이 추가 자금을 투자하여 최종적으로 완공하였다.
바로크 양식 개조
후기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은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지진 피해 및 방치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지붕과 종탑의 일부가 무너졌으며, 이후 수십 년간 방치되어 한때는 묘지로도 사용되었다.
국가 기념물 지정
포르투갈 국가 기념물로 공식 지정되었다.
복원 및 개조
리바이벌리즘 양식의 영향을 받은 개입과 함께, 현재의 종탑이 이때 새로 지어졌다.
여담
이 교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탈랴 수도원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어, 종종 수도원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독립된 교구 본당 교회라고 한다.
과거 1858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심지어 공동묘지로 사용된 적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교회의 종탑은 1930년대에 복원된 것으로, 지진 이전의 원래 종탑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교회 내부의 아름다운 제단과 세례대는 원래 바탈랴 수도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며, 벽면을 장식하는 일부 아줄레주 타일 또한 알카세르 두 살 지역의 다른 수도원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교회 건축의 배경에는, 기존의 산타 마리아 아 벨랴(Santa Maria-a-Velha) 교회가 늘어나는 신자 수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새로 형성된 마을 주민들이 더 큰 교회를 지어달라고 왕에게 청원했다는 사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