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웅장한 후기 고딕 양식과 화려한 마누엘 양식의 조화를 직접 감상하고, 포르투갈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되새기고자 하는 역사 및 건축 애호가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독특한 건축미를 탐구하려는 문화 탐방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수도원 내부를 거닐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아비스 왕조의 왕들이 잠든 창설자 예배당과 하늘을 향해 열린 미완성 예배당의 독특한 분위기를 직접 느껴볼 수 있으며, 왕립 회랑의 섬세한 건축미도 감상할 수 있다.
일부 직원의 응대나 마감 시간 임박 시의 대처에 대한 아쉬움이 언급되며, 미완성 예배당 출구 안내가 명확하지 않아 동선에 혼란을 느꼈다는 의견도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수도원 인근에 무료 공영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리스본에서는 약 1시간 30분, 포르투에서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 대중교통 이용
- 레이리아 등 인근 도시에서 바탈랴행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 바탈랴 버스 정류장에서 수도원까지는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주요 대도시에서 직접 연결되는 대중교통편이 제한적일 수 있어, 투어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요 특징
결코 완성되지 못한 채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독특한 팔각형 구조의 예배당이다. 정교하고 화려한 마누엘 양식의 석조 장식이 압권이며, 미완성이기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운영시간: 수도원 운영시간과 동일
포르투갈 최초의 왕실 묘지로, 알주바호타 전투의 승리자 주앙 1세와 그의 부인 랭커스터의 필리파,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항해왕 엔히크 포함)이 잠들어 있다. 별 모양의 아름다운 팔각 천장과 섬세한 조각들이 돋보인다.
운영시간: 수도원 운영시간과 동일
후기 고딕 양식과 초기 마누엘 양식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는 회랑이다. 정교하게 조각된 아케이드 스크린과 기둥들이 인상적이며, 중앙 정원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회랑 북서쪽에는 아름다운 세면대(Lavabo)가 있다.
운영시간: 수도원 운영시간과 동일
추천 포토 스팟
미완성 예배당 내부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하고 정교한 마누엘 양식의 기둥과 장식을 담을 수 있다. 빛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왕립 회랑 (Claustro Real)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된 아치와 기둥, 그리고 중앙 정원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아케이드의 복잡한 트레이서리가 인상적이다.
본당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합창단의 마누엘 양식 창문이 아름답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미완성 예배당 관람 후 출구를 찾기 어려울 수 있으니, 미리 동선을 확인하거나 직원에게 문의하는 것이 좋다.
미완성 예배당은 천장이 없어 비 오는 날에는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입장권은 관람 중 여러 번 확인하므로 퇴장 시까지 잘 보관해야 한다.
인근의 알코바사 수도원, 토마르의 그리스도 수도원과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면 통합 입장권 구매 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 방문객은 입장료 50% 할인 혜택이 있다.
단체 관광객이 많은 시간대를 피해 방문하면 좀 더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수도원 내부가 넓고 볼거리가 많으므로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알주바호타 전투 승리
주앙 1세가 카스티야 왕국과의 알주바호타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해 수도원 건설을 명했다.
건설 시작
건축가 아폰수 도밍게스의 지휘 아래 수도원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는 교회와 회랑의 기본 계획을 설계했다.
위게(Huguet)의 시대
카탈루냐 출신으로 추정되는 건축가 위게가 작업을 이어받아 화려한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을 도입했다. 그는 본당의 높이를 높이고, 창설자 예배당, 미완성 예배당의 기본 구조 등을 설계했다.
건설 지속 및 양식 변화
페르낭 드 에보라, 마테우스 페르난데스 등 여러 건축가들이 참여하며 마누엘 양식이 혼합되었다. 왕립 회랑, 미완성 예배당의 포털 등이 이 시기에 작업되었다.
건설 중단
주앙 3세가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 건설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바탈랴 수도원의 주요 건설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미완성 예배당'이 이름처럼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리스본 대지진
지진으로 인해 수도원 일부가 손상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 군대가 침입하여 수도원을 약탈하고 방화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수도회 해산
포르투갈 내 종교 수도회가 해산되면서 도미니코회 수사들이 추방되었고, 수도원은 방치되어 황폐해졌다.
복원 시작
페르난두 2세 국왕의 지시로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되어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국립 기념물 지정
포르투갈의 국립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박물관으로 전환
수도원이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그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여담
바탈랴(Batalha)라는 지명 자체가 포르투갈어로 '전투'를 의미하는데, 이는 알주바호타 전투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다.
수도원의 정식 명칭은 '승리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Mosteiro de Santa Maria da Vitória)'이지만, '바탈랴 수도원' 또는 '전투의 수도원'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는 언급이 있다.
건설 기간이 100년이 넘게 소요되었으며, 여러 왕의 통치 기간과 다수의 건축가 교체를 거치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포르투갈 최초의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작업장이 이곳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챕터하우스(Chapterhouse)의 별 모양 천장은 중앙 지지 기둥 없이 넓은 공간(약 19m x 19m)을 덮는 매우 대담한 설계였는데, 건설 당시 두 번의 실패 끝에 완성되었으며, 이를 위해 사형수들이 동원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건축가 위게는 완공 후 비평가들을 잠재우기 위해 하룻밤을 그 천장 아래에서 보냈다는 설도 있다.
주앙 1세와 그의 아내 필리파 왕비의 석관에는 각자의 모토인 'Por bem(더 나은 것을 위해)'과 'Yl me plet(나는 기쁘다)'이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미완성 예배당의 화려한 포털에는 마누엘 1세의 모토 'Leauté faray tam yaserei(나는 항상 충성할 것이다)'가 200번 이상 새겨져 있다는 언급이 있다.
수도원 건축가 중 한 명인 마테우스 페르난데스와 그의 아내는 본당 입구 근처의 대리석 묘비 아래에 함께 묻혀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