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 유적을 직접 탐험하고 당시 생활상을 엿보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덜 알려진 고고학적 명소를 찾는 탐구적인 여행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잘 보존된 로마 도로를 따라 걸으며 원형극장, 포룸, 개선문 등의 유구를 둘러보는 경험을 추구한다.
방문객들은 고대 로마 도로인 비아 플라미니아의 원형을 따라 걸을 수 있으며, 원형극장과 극장 유적에 앉아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포룸과 사원 터를 둘러보며 도시의 중심부 구조를 파악하고, 부지 내 작은 박물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유적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거나 영어 번역의 질이 낮다고 느끼며, 장애인 접근성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 아쉬움을 표한다. 또한, 매표소 운영 시간과 실제 공원 개장 시간의 차이, 일부 시설 관리 미흡 등에 대한 지적이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테르니(Terni)에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하며, 산 제미니(San Gemini) 북쪽으로 약 4km 지점이다.
-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일부 방문객은 주차장 상태 관리가 미흡하다고 언급했다.
내비게이션 이용 시 'Carsulae parking'으로 검색하는 것이 정확한 주차장 입구로 안내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 대중교통 이용
- 산 제미니(San Gemini)에서 카르술라에 인근까지 향하는 버스 노선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
대중교통 접근성은 다소 제한적일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운행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고대 로마의 주요 도로였던 비아 플라미니아의 원형이 유적지를 관통하며 잘 보존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이 고대 도로의 포석 위를 직접 걸으며 당시의 교통과 도시의 중심축을 체험할 수 있다. 도로에는 마차 바퀴 자국이 남아있는 곳도 있다.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원형극장과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건설된 극장 유적을 탐험할 수 있다. 이 구조물들은 당시 카르술라에 주민들의 여가와 오락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로, 현재도 그 웅장함의 일부를 느낄 수 있다.
도시의 중심 광장이었던 포룸 지역과 두 개의 알려지지 않은 로마 신에게 바쳐졌던 '쌍둥이 사원(Twin Temples)'의 기단을 볼 수 있다. 포룸 주변으로는 바실리카, 시장터로 추정되는 아치형 구조물(타베르나이), 공공건물 터 등이 남아 있어 고대 도시의 생활 중심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방문 팁
공식 개장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지만, 매표소는 오전 9시 30분부터 운영을 시작할 수 있어 이른 아침 방문 시 대기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으나, 웹사이트 이용이 원활하지 않다는 후기가 있다.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유적지 안내를 위한 모바일 앱이 제공되지만, 일부 QR코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앱 사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유적지 내에 작은 박물관과 카페 시설이 있어 간단한 휴식과 관람이 가능하다.
지면이 고르지 않고 자갈이나 흙길이 많아 편안한 신발 착용이 필수적이다. 특히 비 온 후에는 미끄러울 수 있다.
유적지 내 설명문의 영어 번역이 미흡하거나 내용이 다소 건조하다는 평가가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는 것도 좋다.
오후 시간에 방문하면 벌새를 닮은 호랑지빠귀(bee-eaters)와 같은 새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5유로이며, 마르모레 폭포 등 인근 관광지와 연계된 통합 입장권 구매 시 할인 혜택이 있을 수 있다.
역사적 배경
도시 건설 시작
로마의 주요 도로인 비아 플라미니아(Via Flaminia) 서쪽 분기점 건설과 함께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움브리아인들의 정착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로마 무니키피움 승격 및 발전
카르술라에는 로마의 무니키피움(지방 자치 도시)으로 승격되었으며, 이 시기에 원형극장, 포룸, 트라야누스 개선문(산 다미아노 개선문) 등 주요 공공 건축물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황금기
주변 농업 활동을 기반으로 번영했으며, 광천수 온천, 극장, 사원 등 편의시설을 갖추어 로마의 부유층 및 중산층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였다.
쇠퇴 및 유기
정확한 유기 시점과 원인은 불분명하나, 지진, 비아 플라미니아 동쪽 분기점의 중요도 증가, 방어 시설 부재, 정치적 불안정, 롬바르드족의 침입으로 인한 교통로 차단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도시가 버려지고 재정착되지 않았다.
소규모 정착 및 자재 채석장화
산 다미아노 교회(Chiesa di San Damiano)가 초기 로마 건물 유적 위에 세워지는 등 소규모 공동체가 유지되었으나, 수 세기 동안 인근 마을(산 제미니, 아쿠아스파르타 등)의 건축 자재 채석장으로 활용되었다.
초기 발굴 시도
16세기 페데리코 체시 공작, 18세기 교황 비오 6세의 지시 하에 산발적 또는 초기 체계적 발굴이 이루어졌다.
현대적 고고학 발굴
움베르토 치오티(Umberto Ciotti)의 주도로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 및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추가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여담
카르술라에가 완전히 버려진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지진, 교통로 변화, 방어의 취약성 등 여러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수 세기 동안 인근 마을의 '채석장'처럼 사용되어 많은 유물이 사라지거나 다른 건축물에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체시(Cesi) 마을의 옛 산 안드레아 교회에서는 카르술라에에서 가져온 로마 시대 묘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른 많은 고대 도시들과 달리 이후 시대의 건축물들이 거의 덮어씌워지지 않아, 고고학자들이 비교적 방해 없이 고대 도시의 원형을 연구하고 복원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방문객 센터에서는 카르술라에의 옛 모습을 재현한 3D 복원 영상을 상영하기도 하며, 관련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개발되어 있다.
한때 로마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였으며, 특히 광물질이 풍부한 온천 시설이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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