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잘 보존된 고대 로마 귀족 빌라의 프레스코화와 건축 양식을 직접 확인하고, 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은 역사 및 예술 애호가들이 주로 방문한다.
광대한 아트리움과 열주로 둘러싸인 페리스타일 정원을 거닐며 휴식을 취하거나, 다채로운 색감의 벽화와 정교한 모자이크 장식을 통해 로마 시대의 예술적 성취를 감상할 수 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다소 불편하고,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여 찾아가는 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유지보수 작업으로 인해 일부 구역의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카스텔람마레 디 스타비아(Castellammare di Stabia) 역 (치르쿰베수비아나 노선) 하차 후 도보 약 25~35분 소요된다.
역에서 빌라까지 가는 길이 명확하지 않거나 언덕길이 포함될 수 있어, 사전에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자동차 이용
- 빌라 인근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많은 방문객이 차량 이용을 추천하며, 내비게이션에 'Villa San Marco, Castellammare di Stabia' 또는 제공된 주소를 입력하면 된다.
🚌 버스 이용
- 인근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언급이 있으나, 구체적인 노선이나 배차 간격 정보는 부족하다.
대중교통 이용 시 사전에 현지 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요 특징
입구의 아트리움부터 시작하여 복도와 각 방을 장식하고 있는 선명한 색채의 프레스코화는 빌라 산 마르코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이다. 잘 보존된 건축 구조와 함께 고대 로마 귀족의 화려했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넓게 펼쳐진 페리스타일 정원에는 과거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으며, 중앙에는 인상적인 크기의 수영장이 자리 잡고 있다. 주변 회랑 역시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어 여유로운 산책과 함께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다.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과 같은 유명 유적지에 비해 방문객이 적어, 붐비지 않는 환경에서 유적을 세심하게 관람할 수 있다. 마치 빌라 전체를 개인적으로 둘러보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추천 포토 스팟
아트리움 프레스코화 앞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프레스코화를 배경으로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페리스타일 정원과 수영장
넓은 정원과 거대한 수영장을 배경으로 빌라의 웅장함을 사진에 담거나, 회랑의 기둥과 프레스코화를 함께 촬영할 수 있다.
빌라 후면 베수비오 산 전망 지점
빌라 뒤편에서는 베수비오 산을 배경으로 한 멋진 풍경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차량 없이 방문 시 카스텔람마레 디 스타비아 기차역에서 도보로 약 25~35분 소요되며, 길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사전에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현재 무료이지만, 입구에서 방문자 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2022년 6월 기준 정보로 변동 가능)
인근의 빌라 아리안나(Villa Arianna)와 스타비아에 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di Stabia Libero D'Orsi)을 함께 방문하면 더욱 풍부한 로마 유적 체험이 가능하다. 특히 박물관에는 빌라 산 마르코에서 발굴된 다수의 프레스코화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량 방문 시 편리하다.
방문객이 적어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며, 특히 오전 일찍 방문하면 더욱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다.
간혹 영어로 열정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직원을 만날 수도 있다.
유적지 내부에 화장실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역사적 배경
스타비아에 정착 시작
스타비아 지역에 최초의 정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술라에 의한 파괴
로마 장군 술라에 의해 스타비아가 파괴되었으나, 이후 부유한 로마인들의 휴양지로 재건되었다.
빌라 산 마르코 건설 및 확장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기 또는 그 이후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빌라가 건설되고 정원과 수영장 등이 추가되며 확장되었다.
대지진 발생
폼페이와 주변 지역에 큰 지진이 발생하여 빌라 산 마르코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화산 폭발 당시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
베수비오 화산의 대규모 폭발로 인해 빌라 산 마르코를 포함한 스타비아에 전체가 두꺼운 화산재와 테프라에 묻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르봉 왕가 시대 첫 발굴
나폴리 국왕 카를로스 3세(샤를 드 부르봉)의 명으로 빌라 산 마르코가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프레스코화와 유물이 수습되었으나, 발굴 후 빌라는 다시 묻혔다.
리베로 도르시에 의한 재발굴 시작
고고학자이자 지역 교장이었던 리베로 도르시(Libero D'Orsi)의 노력으로 빌라 산 마르코의 체계적인 재발굴이 시작되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르피니아 지진 피해
이르피니아 지역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빌라의 상부 페리스타일 열주 일부가 붕괴되는 등 추가적인 손상을 입었다.
여담
빌라 산 마르코라는 이름은 18세기에 이 지역에 있었던 산 마르코 예배당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빌라의 소유주가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빌라에서 발견된 타일의 도장을 근거로 해방노예였던 '나르키수스(Narcissus)' 또는 인근에 무덤이 있던 '비르티(Virtii)' 가문의 소유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발굴 당시 빌라는 79년 화산 폭발 이전에 발생했던 62년 대지진의 피해를 복구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건축 자재 더미나 미완성된 장식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페리스타일 정원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나무뿌리 흔적을 석고로 복원하여 당시 식재되었던 수종과 나무의 수령(75~100년)까지 추정해냈다고 한다.
빌라의 목욕탕 시설에서 발굴된 대형 청동 보일러는 1798년 영국의 해밀턴 경이 런던으로 가져가려 했으나, 운송 중 배가 난파되어 유실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