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로마 시대 온천부터 롬바르드 왕국의 궁정 예배당에 이르기까지, 살레르노의 깊은 역사적 층위를 직접 탐험하고 다양한 시대의 건축 양식과 예술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고고학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지하에 잘 보존된 로마 시대 목욕탕의 구조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묘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상부의 팔라티나 예배당에서는 8세기 롬바르드 시대의 독특한 건축미와 중세 프레스코화, 다색 대리석 모자이크 바닥의 흔적을 관찰할 수 있다. 때때로 운영되는 가이드 투어를 통해 각 유적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별도의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여 이곳이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임을 인지하기 어렵고, 자칫 지나치기 쉽다는 지적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살레르노 구시가지(Centro Storico)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골목길이 많으므로 지도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 대중교통
- 살레르노 중앙역(Stazione di Salerno)에서 하차 후 도보 또는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구체적인 버스 노선은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지하 공간에서는 **1-2세기에 건설된 고대 로마 목욕탕의 일부(냉탕, frigidarium)**와 이후 5-7세기에 조성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묘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벽면에 남아있는 프레스코화의 흔적은 당시의 신앙과 예술을 엿보게 한다.
8세기 롬바르드 공작 아레키 2세가 개인 예배당으로 건립한 공간으로, 유럽에 현존하는 유일한 롬바르드 궁정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로마 시대 구조물 위에 세워졌으며, 내부에서는 중세 시대의 프레스코화와 다색 대리석을 사용한 '오푸스 섹틸레(opus sectile)' 바닥 장식의 일부를 감상할 수 있다.
단지 북쪽에 인접한 작은 예배당으로, 18세기경 건립되었다. 내부에는 성모자와 성인들을 묘사한 16세기 그림과 18세기 필리포 펜니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성모의 생애를 다룬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지하 유적 프레스코화
수백 년 전의 초기 기독교 프레스코화를 배경으로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팔라티나 예배당 천장화 및 건축 디테일
웅장한 천장화와 롬바르드 양식의 아치, 기둥 등 독특한 건축 요소를 프레임에 담아보자.
여러 시대가 중첩된 고고학적 단면
로마 시대 유적 위에 세워진 중세 건축물의 모습을 한눈에 담아 역사의 흐름을 표현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은 무료이며, 입구에 비치된 방명록에 서명 후 둘러볼 수 있다.
일부 시간에 자원봉사자나 전문가의 가이드 투어가 진행될 수 있다. 유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한다면 투어 시간을 확인하고 참여하는 것이 좋다.
살레르노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어 처음 방문 시 찾기 어려울 수 있다. 방문 전 지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두는 것이 좋다.
유적지 내부에 별도의 안내판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미흡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거나 가이드 투어를 활용하는 것이 이해를 돕는다.
역사적 배경
로마 목욕탕 건설
현재 유적의 가장 낮은 층에 해당하는 로마 시대 목욕탕(테르메)이 건설되었다. 특히 냉탕(프리기다리움)의 일부가 남아있다.
목욕탕 폐쇄
홍수 등의 원인으로 로마 목욕탕이 버려지고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초기 기독교 예배 및 묘지 활용
버려진 목욕탕 공간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의해 예배 장소 및 묘지로 재활용되었다. 당시 살레르노에 거주했던 비잔틴 귀족 소크라테스(Socrates) 등의 묘비가 발견되었다.
아레키 2세의 궁전 및 팔라티나 예배당 건설
롬바르드 베네벤토 공국의 공작 아레키 2세가 수도를 살레르노로 옮기면서, 로마 유적 위에 자신의 궁전과 개인 예배당인 팔라티나 예배당(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에게 헌정)을 건설했다. 화려한 금박 장식과 대리석 모자이크 바닥으로 꾸며졌다.
공공 용도 활용 및 프레스코화 추가
노르만 및 슈바벤 왕조 시기에는 궁정 홀이 도시 의회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살레르노 의과대학의 졸업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지하 공간에는 기도실이 마련되었고, 12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새로운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상부 교회 바닥 붕괴 및 복원
상부 교회의 바닥이 붕괴되어 두 예배 공간 모두 사용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18세기에는 산 안나 예배당이 북쪽에 건립되었다.
다용도 활용 및 발굴 시작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군사 창고로 사용되었고, 이후 빵집, 석탄 가게 등으로 이용되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가 시작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여담
산 피에트로 아 코르테는 유럽에서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유일한 롬바르드 시대 궁정 건축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전설에 따르면, 롬바르드 공작 아레키 2세가 이곳에 궁전을 지을 당시 금으로 만들어진 우상을 발견했고, 이를 녹여 궁전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살레르노 연대기(Chronicon Salernitanum)'는 기록하고 있다.
지하 묘지에서 발견된 다양한 이름의 비문들은 로마인, 고트족, 비잔틴인 등 여러 민족이 살았던 당시 살레르노의 국제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진다.
한때 살레르노 의과대학의 졸업식이 거행되던 장소였다는 사실은 이곳이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중세 살레르노의 중요한 공적 공간이었음을 시사한다.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탈리아의 롬바르드 유적지군(Longobards in Italy: Places of Power)' 등재 심사 과정에서, 유적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방문객 서비스, 정보 제공의 체계성, 접근성 등의 문제로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