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종교적 의미가 깊은 장소로, 역사와 예술, 그리고 평온한 분위기를 찾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봉헌물(ex-voto) 컬렉션 중 하나를 직접 보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수도원 내부에서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과 프레스코화, 16세기 목조 성가대석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조용한 회랑을 거닐거나 오래된 책 복원 작업실을 엿볼 수도 있다.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 다소 힘들 수 있으며, 특정 시간대에는 일반인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또한, 기차역에서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외부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수도원 바로 앞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다.
🚶 도보 이용
- 체세나 시내 중심부에서 약 10분 정도 소요되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 비아 델레 스칼레테(Via delle Scalette)를 이용하면 체세나 시내와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오를 수 있다.
언덕길이 다소 가파를 수 있으니 편한 신발 착용을 권장한다.
🚂 대중교통 이용 시
- 기차역에서 수도원까지 직접 연결되는 대중교통편에 대한 안내가 부족할 수 있어, 택시 이용 또는 도보 이동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5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신자들이 봉헌한 수많은 그림과 조각 형태의 봉헌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컬렉션으로, 각 봉헌물에 담긴 이야기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
운영시간: 수도원 개방 시간 내
수도원이 위치한 스파치아노 언덕에서는 체세나 시내 전체와 주변의 푸른 언덕, 멀리 아드리아해와 산마리노 공화국까지 아름다운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풍경이 인상적이다.
브라만테의 원안을 바탕으로 한 바실리카는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프란체스코 마시니와 주세페 밀라니가 장식한 돔의 프레스코화, 1575년에 완성된 정교한 목조 성가대석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운영시간: 수도원 개방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수도원 앞 광장
체세나 시내와 주변 언덕, 멀리 아드리아해까지 이어지는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바실리카 돔 내부
프란체스코 마시니와 주세페 밀라니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돔 천장을 촬영할 수 있다.
비아 델레 스칼레테 (Via delle Scalette)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이 길에서는 체세나 시내와 주변 시골 풍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매년 8월 15일
체세나 지역의 중요한 종교 행사로, 수많은 신자와 방문객이 참여하여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리는 특별 미사가 열린다. 수도원 전체가 경건하면서도 축제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방문 팁
평일 오전에 방문하면 비교적 한적하게 수도원의 평온함을 느끼며 관람할 수 있다.
수도원 내 상점에서는 베네딕토회 전통 방식으로 만든 허브 제품, 리큐어, 꿀 등을 구입할 수 있다.
Signora Anna의 가이드 투어는 상세한 설명과 열정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참여를 원할 경우 사전 문의가 필요하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길이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방문 전 수도원 공식 웹사이트에서 개방 시간 및 특별 행사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체세나의 주교였던 성 마우로의 유해를 안치한 작은 교회와 관련하여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설립되었다. 성 마우로는 이 언덕에 올라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수도원 완공
수도원 건물이 완공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2세의 승인
교황 니콜라오 2세의 교서에 의해 수도원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황제 방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방문하여 수도원에 자신의 보호를 약속하고 넓은 토지를 하사했다.
약탈 및 파괴
포를리의 통치자 프란체스코 2세 오르델라피가 수도원을 점령하고 병영으로 사용하면서 수도사들은 피신했고, 돌아왔을 때는 수도원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후 1세기 이상 재건 작업이 지속되었다.
교회 재건
도메니코 그라비니가 브라만테의 원안을 바탕으로 현재 모습의 교회로 재건했다. 이 시기 프란체스코 마시니 등이 돔 장식에 참여했다.
바르나바 키아라몬티 서원
훗날 교황 비오 7세가 된 바르나바 키아라몬티가 수련자로 서원했다.
지진으로 돔 파괴 및 재건
지진으로 바실리카의 돔이 파괴되었고, 피에트로 카를로 보르보니에 의해 재건되고 주세페 밀라니가 1773년에서 1774년 사이에 다시 장식했다.
나폴레옹 군대에 의한 폐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수도원이 폐쇄되고 수도사들은 추방되었으며, 수도원의 재산은 매각되었다.
수도원 재설립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수도원이 재설립되어 산타 주스티나 수도회 소속이 되었다.
수도원 다시 폐쇄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다시 폐쇄되었다.
수도사 복귀
수도사들이 수도원으로 돌아와 수도 생활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피난처 및 폭격 피해
수도원은 피난민들로 붐볐으며, 폭격으로 인해 교회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여담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1177년 이곳에 머물면서 수도원에 광대한 토지를 하사하고 특별한 보호를 약속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317년, 앙주의 로베르토 왕이 수도원 경내에 있던 두 개의 기둥을 나폴리에 건립 중이던 산타 키아라 수도원으로 가져갔는데, 이 기둥들은 바르바로사 황제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훗날 교황 비오 7세로 즉위한 바르나바 키아라몬티는 1758년 이곳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수도원에서 수련자로 서원한 바 있다.
198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전통에 따라 자신의 봉헌물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다.
수도원 내에는 오래된 책을 복원하는 전문 작업실이 있어 현재까지도 그 기술을 이어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수많은 피난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으며, 인근 말라테스티아나 도서관의 귀중한 장서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도 했다는 언급이 있다.
일부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소원을 빌며 수도원 내부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전통적인 관습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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