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경험하고 한적한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자연 애호가 및 무료 캠핑객들이 주로 찾는다. 수정처럼 맑은 청록색 바다와 조용한 해변이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해변에서 수영이나 일광욕을 즐길 수 있고, 해안가를 따라 하이킹을 하며 숨겨진 명소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지정된 장소에서 캠핑을 하며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는 특별한 야영 경험도 가능하다.
상점이나 전기 시설이 전혀 없어 문명과는 단절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유일한 식당인 타베르나 외에는 식수를 포함한 모든 물품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
접근 방법
🛥️ 보트 이용
- 파노 쿠포니시(Pano Koufonisi) 항구에서 카토 쿠포니시로 가는 셔틀 보트나 낚시 보트를 이용할 수 있다.
- 보트는 보통 타베르나 근처 선착장과 네로(Nero) 해변 등 주요 지점에 정차한다.
- 운행 간격과 요금은 계절 및 운영 업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왕복 또는 편도 티켓 구매가 가능하다.
여름 성수기에는 보트 운행 빈도가 높지만, 그 외 계절에는 운행 횟수가 줄어들 수 있다.
주요 특징
수정처럼 맑은 청록색 물과 고운 모래를 자랑하는 여러 해변들을 도보나 보트를 이용해 방문하여 수영, 스노클링,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네로(Nero) 해변과 라키(Lakki) 해변은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정된 구역, 특히 네로 해변 근처와 타베르나 인근에서 무료로 캠핑하며 자연과 하나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밤에는 빛 공해가 없어 쏟아지는 듯한 별을 감상할 수 있다.
섬의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인 하얀색의 작은 파나기아(Panagia, 성모 마리아) 교회를 방문하여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주변의 평화로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매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는 이곳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추천 포토 스팟
네로(Nero) 해변
넓고 긴 모래 해변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해 질 녘 풍경이 인상적이다.
파나기아 교회와 주변 부두
하얀 교회 건물과 푸른 바다, 정박된 작은 보트들이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교회 언덕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훌륭하다.
하와이(Hawaii) 해변 근처 절벽
독특한 암석 지형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곳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담을 수 있다. 일부 리뷰에서는 '파라글리오니(Faraglioni)'로도 언급된다.
축제 및 이벤트
파나기아(성모 마리아) 축일
매년 8월 15일
카토 쿠포니시의 작은 파나기아 교회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예배가 열린다. 예배 후에는 참석자들에게 음식이 제공되며, 이후 낚시 보트들이 파노 쿠포니시로 돌아가는 경주를 펼치고 그곳에서 축제가 계속된다.
방문 팁
카토 쿠포니시에는 상점이나 ATM이 없으므로, 필요한 모든 물품(충분한 물, 음식, 간식, 현금, 자외선 차단제 등)은 파노 쿠포니시에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섬 내 유일한 식당인 '베네차노스 타베르나(Venetsanos Tavern)'는 라키(Lakki) 해변 근처에 있으며,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휴대폰 충전도 가능하다.
파노 쿠포니시와 카토 쿠포니시를 오가는 보트의 마지막 운행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름철에는 밤늦게까지 운행하기도 하지만, 계절에 따라 다르다.
무료 캠핑 시에는 지정된 장소를 이용하고, 자연을 보호하며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야 한다. 라키 해변에는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섬 전체를 도보로 탐험하려면 하루 종일 걸릴 수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과 충분한 체력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초기 정착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키클라데스 문명 초기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이 밝혀졌다. 에파노 밀리(Epano Mili) 지역에서 출토된 프라이팬 모양의 그릇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헬레니즘과 로마의 영향
섬의 동쪽 해안가에서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어 이 시기에도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베네치아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
다른 키클라데스 제도와 마찬가지로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7세기에는 에게 해의 패권을 둘러싼 다툼의 영향을 받았으며, 때로는 해적들의 은신처로도 이용되었다.
그리스 독립
다른 키클라데스 제도와 함께 그리스 왕국에 편입되었다.
주민 이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약 1000명의 주민이 있었으나, 일자리를 찾아 아테네 등지로 이주하면서 인구가 감소했다. 1960년대 말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떠나 거의 무인도가 되었다.
여담
카토 쿠포니시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쿠포니시아와 글라로니시 사이의 만을 지칭하던 고대 명칭 '쿠포스 리민(Koufos Limin)', 즉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항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섬에 많은 동굴과 퇴적 지형 때문에 '움푹 파인 곳'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전해진다.
과거에는 파노 쿠포니시를 '파쿠사(Fakousa)', 카토 쿠포니시를 '피노(Pino)'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현재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지만, 여름철에는 자연을 즐기려는 많은 방문객과 캠핑족들이 찾아와 잠시 활기를 띤다. 일부 과거 주민의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관리하기 위해 드물게 방문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