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선사 시대의 성벽 유적과 고고학적 발굴 과정에 관심이 깊은 역사 애호가나 독일 초기 역사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숲길을 따라 고대 유적을 탐방하며 조용한 사색을 즐기고 싶은 개인 여행객에게 적합하다.
청동기 시대부터 슬라브 시대에 이르는 성벽의 잔해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으며, 과거 정착지의 흔적을 더듬어 보거나 주변 숲길을 따라 산책하며 당시 생활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인접한 레니츠 호수와 쾨니히스발트 자연보호구역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포츠담 시내에서 자크로(Sacrow) 방향으로 이동.
- 정확한 주차 정보는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 입구까지 차량 접근이 제한될 수 있으니 인근 주차 후 도보 이동을 고려해야 한다.
🚌 대중교통 이용 시
- 포츠담 중앙역 또는 시내에서 자크로(Sacrow) 방면 버스 노선을 확인한다.
- 버스 하차 후 유적지까지 일정 거리 도보 이동이 필요할 수 있다.
숲길을 걸어야 할 수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주요 특징
하펠란트 지역의 주요 슬라브족 성채 중 하나였던 이곳은 청동기 시대부터 이어진 잘 보존된 토성벽이 인상적이다. 성벽 위를 따라 조성된 순환로는 탐방객에게 과거로의 시간 여행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1881년부터 수차례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진 곳으로, 청동기 시대의 집터와 화덕자리 등이 발견되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독일 초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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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상단 순환로
고대 성벽의 모습을 따라 걸으며 주변 숲과 레니츠 호수의 풍경을 함께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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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츠 호수 조망 지점
성벽에서 레니츠 호수 쪽으로 트인 공간에서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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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과 어우러진 성벽
오랜 세월을 간직한 거대한 나무들과 고대 성벽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이곳은 서둘러 방문하기보다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성벽 둘레길과 주변 자연 경관을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이 좋다.
성벽 상단에는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순환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모험적인 탐험을 즐길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최초 정착 및 라우지츠 문화기
언덕 무덤 청동기 시대에 처음 정착이 시작되어 할슈타트 시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유적은 라우지츠 문화(Lausitzer Kultur)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파괴 또는 화재 재앙
정착지 말기에 발견된 강력한 화재층은 당시 파괴 또는 큰 화재 재앙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슬라브족 재정착 및 성곽 건설
잊혀졌던 이곳에 슬라브인들이 다시 정착하여 성곽을 건설했다.
슬라브족 성곽 포기
빌첸(Wilzen)족의 다른 고지대 성곽들과 마찬가지로 슬라브족 성곽이 포기되었다.
슬라브족 외곽 정착지 최종 포기
성곽 바깥의 슬라브족 정착지(Vorburgsiedlung)가 최종적으로 포기되었다.
최초 고고학 조사 실시
고고학자 칼 슈하르트(Carl Schuchhardt)와 게르하르트 베르수(Gerhard Bersu)에 의해 처음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중요 발굴 조사 및 연구
이 시기의 발굴 조사는 초기 독일 선사 및 초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청동기 시대의 기둥집과 화덕 자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문화재 지정 (Denkmalschutz)
뢰머샨체가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게 되었다.
여담
이름과 달리 '뢰머샨체'(로마인의 보루)는 실제 로마인이 건설하거나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는 당시 유적의 연대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시기에 붙여진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쾨니히스발'(왕의 성벽) 또는 '로이버샨체'(도적의 보루)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는 언급이 있다. 이러한 명칭들은 역사적 근거보다는 민간에서 구전된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고고학 조사는 아직 초기 단계였던 독일 선사 및 초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기둥 구멍(Pfostenlöcher)을 이용한 건물 구조 복원 방법이 초기 형태로 적용된 사례로도 언급된다.
독일의 유명 문학가 테오도르 폰타네는 그의 저서 '브란덴부르크 변경주 기행 (Wanderungen durch die Mark Brandenburg)'에서 '쾨니히스발'에 대해 언급하며, 이곳을 고대 벤드족(슬라브계 부족)의 야영지 또는 방어 진지였을 것으로 추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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