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3세기에 지어진 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그 역사적 가치와 독특한 건축 양식, 그리고 내부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및 예술 애호가들, 또는 도시 중심부에서 잠시 평화를 찾고 싶은 일반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중세 시대의 세례반, 제단, 십자가상 등 귀중한 유물을 관람할 수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적으로 재건된 내부 공간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종종 열리는 오르간 연주회나 다양한 주제의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본 정보
건축 양식 및 역사
본래 고딕 양식의 홀 교회로 지어졌으나, 19세기에 신고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크게 파괴된 후, 현대적인 콘크리트 기둥과 천장을 사용하여 재건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옛것과 새것의 조화로운 결합을 시도했다. 킬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주요 소장품
교회 내에는 여러 중요한 예술 작품과 역사적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 청동 세례반 (1344년): 한스 아펜게터 작품으로, 교회의 가장 오래된 예술품이자 북독일 중세 청동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 족장들의 제단 (Erzväteraltar, 1460년): 원래 릴 수도원 교회를 위해 제작되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이곳으로 옮겨졌다.
- 승리의 십자가 (Triumphkreuz, 1490년): 제단 위에 걸려 있는 대형 십자가상이다.
- 바로크 양식 설교단 (1705년): 테오도르 알러스의 목조각 작품으로, 헤닝 폰 베더콥이 기증했다.
-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영혼의 투사' (Geistkämpfer, 1928년): 교회 외부에 설치된 청동 조각상으로, 칼을 든 천사가 늑대 형상의 생명체를 제압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나치 시대에 '퇴폐 미술'로 분류되어 철거되었다가 전쟁 후 복원되었다.
- 코번트리 십자가 (Nagelkreuz von Coventry, 1947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코번트리 대성당의 '화해의 십자가'로 알려져 있다.
오르간
1965년 데틀레프 클로이커가 제작한 주 오르간이 있으며, 3단 건반과 페달보드, 45개 스톱, 3,288개의 파이프를 갖추고 있다. 1998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쳤다. 성가대석에는 바벨 오르간 제작소의 작은 포지티브 오르간도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킬 중앙역(Kiel Hauptbahnhof)에서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홀슈텐슈트라세(Holstenstraße) 보행자 구역을 따라 걷다 보면 알트마르크트(Alter Markt)에 도착하며, 교회는 광장 근처에 위치한다.
🚌 대중교통 (버스)
- 킬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알트마르크트 또는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자세한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 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 교회 자체 주차장은 없으나, 알트마르크트 주변이나 인근 쇼핑몰 주차장 등 유료 주차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도심 지역이므로 주차 공간이 제한적일 수 있다.
주요 특징
14세기에 제작된 청동 세례반과 15세기의 '족장들의 제단' 및 '승리의 십자가상', 18세기의 정교한 바로크 양식 설교단 등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는 귀중한 종교 예술품들을 직접 볼 수 있다. 각 작품은 킬의 역사와 종교 예술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운영시간: 교회 개방 시간 내
교회 외벽에 설치된 표현주의 조각가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대표작 **'영혼의 투사(Geistkämpfer)'**를 감상할 수 있다. 영적인 힘이 악을 이기는 모습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나치 정권에 의해 '퇴폐 미술'로 낙인찍혀 철거되었다가 전쟁 후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설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운영시간: 상시 관람 가능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심하게 파괴된 후 현대적인 건축 양식으로 재건된 교회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내부 공간과 성서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난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운영시간: 교회 개방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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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외부 '영혼의 투사(Geistkämpfer)' 조각상 앞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유명한 청동 조각상과 교회의 외관을 함께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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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부 제단 및 '승리의 십자가상' 전경
웅장한 제단과 그 위에 매달린 십자가상을 배경으로 교회의 장엄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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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아래
빛이 투과되어 아름다운 색채를 자아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특히 햇빛이 좋은 날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축제 및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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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콘서트 (Candlelight Concert)
비정기적 (주로 저녁 시간대)
수많은 촛불로 장식된 교회 내부에서 열리는 분위기 있는 음악회이다. 클래식부터 팝,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현악 사중주 등의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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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오르간 음악 (Mittwochsmusik)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약 30분간 무료로 오르간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오르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방문 팁
교회 내부는 특히 겨울철이나 저녁 시간에 쌀쌀할 수 있으므로, 촛불 콘서트 등 저녁 행사 참여 시에는 주최측에서 담요를 제공하기도 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5시에는 약 30분간 무료 오르간 연주가 열린다.
교회가 알트마르크트(Alter Markt)와 쇼핑가에 인접해 있어, 방문 전후로 주변의 다양한 상점, 레스토랑, 카페를 함께 이용하기 편리하다.
특별 전시나 콘서트 등으로 인해 일반 관람이 제한되거나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교회 웹사이트나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유용하다.
교회 내부에 소정의 금액(예: 1유로)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념품이 마련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교회 건축 시작
도시 설립자 아돌프 4세 폰 샤우엔부르크 운트 홀슈타인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다. 항해사와 상인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우스에게 헌정되었다.
최초 기록 언급
문서에 교회가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구조 변경
최초의 고딕 양식 홀 교회가 뤼베크의 성 베드로 교회를 모델로 하여 긴 성가대석이 추가되고 3개의 신랑(nave)을 갖춘 구조로 변경되었다.
종교개혁 도입
마르크바르트 슐도르프에 의해 종교개혁이 도입되어 개신교 교회가 되었다.
신고딕 양식으로 개조
새로운 파사드와 더 평평한 지붕을 포함하여 신고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17세기의 장례 예배당들이 철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
연합군의 폭격으로 교회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주요 내부 유물들은 사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재건 시작
게르하르트 랑마크의 설계에 따라 현대적인 형태와 구조(콘크리트 기둥과 천장 등)로 재건이 시작되었다.
내부 재건 완료
페터 칼케에 의해 랑마크의 개념에 충실한 소박한 스타일로 내부 재건이 완료되었다.
여담
현재 교회의 내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후 재건된 것으로, 과거의 고딕 양식 대신 콘크리트 기둥과 천장 같은 현대적인 건축 요소가 사용되었다. 이는 전쟁의 상흔과 재건의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교회 외부에 있는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청동 조각상 '영혼의 투사(Geistkämpfer)'는 원래 시의 의뢰로 제작되어 다른 장소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그 표현 양식에 대한 반대로 인해 현재의 성 니콜라이 교회로 오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조각상은 나치 시대에 '퇴폐 미술'로 간주되어 철거되었다가 전쟁 후 시민들에 의해 다시 찾아져 복원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 니콜라이 교회는 1947년에 제작된 코번트리 대성당의 '화해의 십자가(Nagelkreuz von Coventry)'를 독일에서 가장 먼저 받은 교회 중 하나로 알려져, 전쟁의 아픔을 넘어선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과거 19세기 신고딕 양식으로 개조될 당시, 내부의 레트너(성가대석과 신자석을 구분하는 칸막이), 발코니, 좌석 등이 철거되었는데, 이에 대한 당시 평가는 엇갈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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