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최초의 고딕 양식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곳은 그 역사적 의미와 건축미를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건축 애호가 및 역사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과 정교한 조각에 매료되는 이들이 많다.
방문객들은 웅장한 내부 공간을 거닐며 초기 고딕부터 플랑부아양 양식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 요소를 관찰할 수 있고,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인접한 박물관에 보관된 대성당 보물실의 귀중한 유물들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를 접할 수도 있다.
일부 구역이 보수 공사 중일 수 있으며, 도심에 위치하여 주차 공간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또한, 내부 조명이 다소 어둡고 비둘기로 인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간혹 보인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상스 역(Gare de Sens) 하차 후 도보 또는 현지 교통수단 이용.
파리에서 기차로 약 1시간 소요.
🚗 자가용 이용
- 상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나, 주차 공간이 제한적일 수 있음.
주변 공영 주차장 정보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12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토마스 베켓 창문', '선한 사마리아인 창문' 등 초기 고딕 양식의 걸작은 빛을 통해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서쪽 파사드의 세 개의 포털과 남북 트랑셉트의 포털은 초기 고딕부터 화려한 플랑부아양 양식에 이르는 조각 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성인들의 생애, 성서 이야기, 중세 시대의 생활상 등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마치 돌에 새겨진 역사책을 읽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대성당과 인접한 옛 대주교 궁전(Palais des Archevêques)에 위치한 상스 박물관에는 대성당의 보물실이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토마스 베켓의 제의를 비롯한 귀중한 종교 유물과 샤를마뉴 대제의 성유물함(Sainte Chasse)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소장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운영시간: 박물관 운영 시간 별도 확인
추천 포토 스팟
서쪽 파사드 정면
세 개의 웅장한 포털과 함께 초기 고딕 양식의 대성당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특히 중앙 '성 스테파노 포털'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남쪽 트랑셉트 '모세의 문'과 장미창
화려한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정교한 조각과 거대한 장미창을 함께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빛이 좋은 날에는 더욱 아름답다.
스테인드글라스와 내부 기둥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빛과 그림자가 내부 기둥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토마스 베켓 창문' 주변이 유명하다.
축제 및 이벤트
빛과 소리 쇼 (Lumières de Sens)
여름 시즌 (주로 8-9월) 금요일 및 토요일 저녁
대성당의 파사드를 스크린 삼아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멀티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대성당의 역사와 건축미를 색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방문 팁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상스 박물관(옛 대주교 궁)에는 대성당의 귀중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함께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프랑스 최초의 고딕 성당인 이곳의 역사와 건축적 특징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여름철 특정 요일 저녁에는 대성당 파사드에서 '빛과 소리 쇼(Lumières de Sens)'가 열리기도 하니, 방문 시기를 맞춘다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대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햇빛이 잘 드는 시간에 방문하면 더욱 아름다운 빛깔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건축 시작
앙리 상글리에 대주교의 주도로 기존 성당을 대체할 새로운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초기 고딕 양식이 적용된 최초의 대성당 중 하나이다.
신랑 봉헌 및 교황 방문
신랑 부분이 완공되어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봉헌되었다. 교황은 이후 3년간 상스에 머물렀다.
토마스 베켓 망명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이 영국 국왕 헨리 2세와의 갈등으로 상스에 망명하여 머물렀다. 그의 유품 일부가 현재 대성당 보물실에 남아있다.
왕실 결혼식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와 프로방스의 마르그리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남쪽 탑 붕괴
남쪽 탑이 붕괴되어 인명 피해와 함께 대주교 궁 일부가 파손되었다. 탑 재건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트랑셉트 건설
마르탱 샹비주 등 유명 건축가에 의해 화려한 플랑부아양 양식의 남북 트랑셉트가 건설되었다.
남쪽 탑 완공
붕괴되었던 남쪽 탑(석조 탑)이 르네상스 양식의 종탑과 함께 최종 완공되어 현재의 78.25m 높이에 이르렀다.
프랑스 혁명기 수난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중앙 포털의 조각상 대부분이 파괴되고, 종들이 징발되어 대포 제작에 사용되었다. '이성의 축제'가 열리고 '최고 존재의 신전'으로 개칭되기도 했다.
복원 작업
빅토르 위고의 격려와 외젠 비올레르뒤크 등의 건축가들에 의해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일부 복원 방식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봉헌 850주년 기념
대성당 봉헌 8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여담
상스 대성당은 영국의 유명한 캔터베리 대성당의 고딕 양식 재건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건축을 맡았던 상스의 기욤(William of Sens)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파괴의 위기에서 중앙 포털의 성 스테파노 조각상은 한 재치 있는 성직자가 혁명 모자를 씌워 파괴를 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성당의 두 개의 거대한 종(부르동) 중 '사비니엔(Savinienne)'은 무게가 15.6톤에 달하며, 1560년에 제작되었다. 종에는 제작 당시의 교황, 황제, 왕, 그리고 상스 대주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세기 복원 과정에서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저자인 빅토르 위고가 1839년 상스 대성당을 방문하여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군 포탄 5발이 대성당에 떨어져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며, 프랑스 전쟁 포로들이 한때 성당 내부에 수용되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훗날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되는 작가 앙드레 말로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중매체에서
상스 대성당 내부 (Intérieur de la cathédrale de Sens)
프랑스의 유명 화가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가 19세기 복원 중인 상스 대성당의 내부 모습을 그린 유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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