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지어진 고딕 플랑부아양 양식의 건축미와 내부의 종교 예술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및 예술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또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기도하거나 사색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방문객들에게도 적합한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푸른색으로 칠해진 독특한 목조 천장과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 15세기와 16세기의 다양한 목조각상, 그리고 아름다운 16세기 세례반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접근
- 모를레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명소에서 도보로 접근이 용이하다.
- 교회 정면에 계단이 있으나, 교회 옆길을 이용하면 계단을 피해서 올라갈 수 있다.
주요 특징
생 멜렌 교회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선명한 푸른색으로 칠해진 목조 배럴 볼트 천장이다. 이와 함께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 15-16세기의 정교한 목조각상들, 그리고 아름다운 세례반 등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1489년부터 1574년에 걸쳐 건축된 생 멜렌 교회는 후기 고딕 양식인 플랑부아양(Flamboyant) 스타일의 대표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며, 특히 남쪽 현관의 조각과 탑의 건축미가 뛰어나다.
생 멜렌 교회는 1914년에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내부에는 15세기 성 안나와 성모 마리아 조각상, 16세기 막달라 마리아 조각상, 17세기 피에타 등 다양한 시대의 종교 예술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추천 포토 스팟
푸른 천장 아래 본당
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푸른색 목조 천장과 함께 넓은 본당 전체를 담을 수 있는 구도이다. 천장의 독특한 색감과 구조가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어낸다.
15-16세기 목조각상 및 세례반 근처
정교하게 조각된 역사적인 목조각상들이나 아름다운 16세기 세례반을 배경으로 또는 클로즈업하여 촬영하면 좋다. 작품의 섬세함과 고풍스러움을 담을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앞
다채로운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활용하여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빛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교회 정면에 계단이 있지만, 교회 옆길을 이용하면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접근할 수 있다.
내부는 비교적 방문객이 적고 조용하여 평화롭게 기도하거나 내부를 둘러보기에 좋다.
내부의 아름다운 푸른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다양한 목조각 등 사진 촬영할 만한 요소가 많다.
교회 내부에는 기도할 수 있는 공간과 초를 밝힐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생트마리 예배당 기증
모를레의 생트마리 예배당이 레옹의 자작 기요마르크 3세에 의해 렌의 생 멜렌 수도원에 기증되었다.
생 멜렌 수도원 분원 설립
기증받은 예배당을 중심으로 생 멜렌 수도원의 분원이 설립되었다.
현재 건물 건축 시작
기존 교회가 너무 작고 낡아 교구민들이 새로운 건물 건축을 결정하고 석공들이 작업을 시작했다. 남쪽 현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 건설 (필립 보마누아르)
건축가 필립 보마누아르가 교회의 탑 건설을 지휘했다.
탑 완공
교회의 탑이 최종적으로 완공되었으며, 당시 르네상스 양식의 납으로 된 돔과 랜턴으로 덮여 있었다.
탑 돔 변경
르네상스 양식의 돔이 철거되고 아연으로 덮인 목조 첨탑으로 교체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생 멜렌 교회가 프랑스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공식 지정되었다.
2차 세계대전 폭격 피해
영국군의 폭격으로 인해 사제관 정원에 폭탄이 떨어져 북쪽 측면 통로 등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후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담
생 멜렌 교회가 세워지기 전, 이곳에는 원래 생트마리(Sainte-Marie) 예배당이 있었으며, 이 예배당은 플루장(Ploujean) 교구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자금은 모든 교구민에게 부과된 '교회세(taille d'église)'와 부유한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교회 건축에는 보마누아르(Beaumanoir) 가문의 석공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490년 기록에는 '늙은 보마누아르', '에티엔 보마누아르', '젊은 보마누아르' 등 세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생 멜렌 교구는 폐지되었고, 교회 건물은 한때 식량 창고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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