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노르망디 초기 고딕 건축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는 건축 애호가나,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적인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는 신자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역사적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개인 여행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방문지가 된다.
방문객들은 웅장한 내부 공간을 거닐며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와 시대별 건축 양식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소화 데레사 성녀가 어린 시절 미사를 드리고 첫 고해성사를 보았던 장소를 직접 찾아보며 그녀의 생애를 느껴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건물의 보존 상태가 다소 아쉽고, 특히 겨울철에는 내부가 매우 춥다는 점을 언급한다. 또한, 간혹 보수 공사로 인해 관람이 제한되거나 특정 시간에는 문이 닫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파리-쉘부르(Paris-Cherbourg) 노선 또는 파리-트루빌/도빌(Paris-Trouville/Deauville) 노선을 이용하여 리지외(Lisieux) 역에 하차한다.
- 리지외 역에서 대성당까지는 도보 또는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 자동차 이용
- 대성당 주변으로 주차 공간이 있으나, 광장 앞은 협소할 수 있다.
- 일부 방문객들은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주차하는 것을 추천한다.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는 정보도 있다.
주요 특징
노르망디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 중 하나로, 웅장한 네이브와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일 드 프랑스 고딕 양식과 노르만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첫 고해성사를 보았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성녀와 관련된 예배당과 장소들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
잔 다르크 재판에 참여했던 피에르 코숑 주교가 1432년 리지외 주교로 임명되어 이곳에 묻혀있다. 또한 노르망디 건축의 특징인 **높은 채광탑(랜턴 타워)**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제단을 밝히는 모습도 장관이다.
추천 포토 스팟

대성당 북서쪽 외관
두 개의 탑을 포함한 대성당의 전체적인 고딕 양식 외관을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내부 제단과 스테인드글라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조명이 비추는 제단, 천사상 등을 배경으로 신성한 분위기를 촬영할 수 있다.

대성당 앞 광장
넓은 광장에서 대성당의 정면 전체 모습을 촬영하거나, 주변 건물과 어우러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대성당 동쪽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성당 뒤편에 위치한 주교관 정원(Jardin de l'Évêché)도 방문할 만하다.
내부에 비치된 평면도를 통해 건물의 각 부분이 언제 지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대성당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영어로도 제공되므로 활용하면 좋다.
휠체어 이용자는 대성당 우측에 마련된 전용 입구와 통로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인근에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성당 존재 추정
이 시기부터 리지외에 주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초기 형태의 성당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화재
앙주의 조프루아에 의해 기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불탔다.
고딕 양식 재건축 시작
아르눌프 주교의 주도로 현재의 고딕 양식 성당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이는 노르망디 최초의 고딕 건축물 중 하나이다.
화재 및 복구
화재로 성당이 손상되었고, 기욤 뒤 퐁-드-라르슈 주교가 복구하며 세 개의 익랑 예배당을 추가했다.
피에르 코숑 주교 임명
잔 다르크의 재판에 깊이 관여했던 피에르 코숑이 리지외 주교로 임명되었고, 사후 이곳에 안장되었다.
남서쪽 탑 건설
이전 탑이 무너진 후, 고딕 이전 양식으로 새로운 남서쪽 탑이 건설되었다.
건축 완성
슈베(후진), 랜턴 타워, 서쪽 파사드 등이 노르만 양식으로 건설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폭격으로 리지외 시가지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대성당은 기적적으로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여담
앙리 플랜태저넷(훗날 잉글랜드 헨리 2세)과 엘레오노르 아키텐이 1152년 이곳에서 결혼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푸아티에 대성당에서 결혼했다는 얘기가 있다.
20세기 초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의 운전사와 함께 해가 진 후 방문하여,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대성당의 파사드와 문을 비춰 감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대성당의 서쪽 두 개의 종탑은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서로 다른 짝짝이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리지외 시가지가 연합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거의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성당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잔 다르크를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게 한 재판을 주관했던 피에르 코숑 주교가 말년에 리지외 주교로 부임했으며, 그가 이 대성당에 묻혀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여겨지기도 한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아버지인 성 루이 마르탱이 대성당의 중앙 제단을 봉헌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는 그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대중매체에서
르 피가로 기고문 '자동차 여행의 인상 (Impressions de route en automobile)'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1907년 신문 '르 피가로'에 기고한 글에서 리지외 대성당을 방문하여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비춰 보았던 경험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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