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리지외의 카르멜 수도원은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와 영성에 깊은 감명을 받은 순례객이나 가톨릭 신자, 그리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성녀의 유물을 직접 보고 그 발자취를 따라 걷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성녀 테레사의 유물이 안치된 샤스를 참배하고, 성녀의 생애와 관련된 유품이 전시된 박물관을 둘러보며 그녀의 '작은 길' 영성을 되새길 수 있다. 또한, 잘 보존된 성당과 수도원 경내를 거닐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미사에 참여하여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파리에서 리지외(Lisieux)까지 기차로 이동할 수 있다.
- 리지외 기차역에서 수도원까지는 도보 또는 택시를 이용한다.
🚗 자가용 이용
- 수도원 주변에 주차 공간이 있으나 협소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수도원 내 성당에는 **성녀 소화 데레사의 유물함(샤스)**이 안치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참배하고 기도할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영적인 위안과 감동을 얻는다.
성녀 테레사의 생애와 카르멜 수도원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유품과 자료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성녀의 '작은 길' 영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성녀 테레사 관련 서적, 성물,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서점 겸 기념품점이 운영된다. 수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도 구입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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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소화 데레사 유물함(샤스) 앞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녀의 유물함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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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성당 내부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스테인드글라스, 제단 등을 배경으로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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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외부 정원 또는 건물
잘 가꾸어진 정원이나 수도원 건물의 고즈넉한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미사에 참여하면 카르멜 수녀들의 성가와 함께 더욱 깊은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기념품점에서는 성녀 테레사와 관련된 다양한 서적과 성물, 수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구매할 수 있다.
성녀의 생애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박물관(Mémorial)을 꼼꼼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피에르 소바주(Pierre Sauvage) 신부에 의해 리지외에 카르멜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르부셰 부인의 집에서 시작하여 리바로 거리에 새 건물을 마련했다.
성녀 소화 데레사 입회 및 수도 생활
1888년, 15세의 테레즈 마르탱(Thérèse Martin, 후일 성녀 소화 데레사)이 두 언니(폴린, 마리)에 이어 수도원에 입회했다. 1894년에는 넷째 언니 셀린까지 합류하여 마르탱 가문의 네 자매가 한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테레사는 1897년 결핵으로 선종할 때까지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
'영혼의 이야기' 출판
성녀 테레사의 자서전 '영혼의 이야기(Histoire d'une âme)'가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초기 2,000부 발행 이후 수많은 재판을 거듭했다.
성녀 테레사 시복 및 시성
1910년 교황 비오 10세의 요청으로 시복 절차가 시작되었고, 1923년 시복,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이후 수도원 성당은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피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리지외가 전선에 놓이자, 수녀들은 리지외 대성당 지하로 피난하여 약 80일간 머물렀다. 수도원은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수도원 쇄신 및 국제 공동체 형성
수녀 수 감소와 고령화 문제로 쇄신을 모색하며 전 세계 카르멜 수도원에서 새로운 수녀들이 합류하여 국제적인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노후된 시설 개선 작업도 진행되었다.
여담
성녀 소화 데레사의 언니 폴린(예수의 아녜스 수녀)은 리지외 카르멜 수도원의 원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으며,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종신 원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녀는 테레사 성녀의 영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지외 카르멜 수도원은 성녀 테레사 사후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수백 통의 편지를 받았으며, 이는 수도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수도원의 수녀들은 현재도 수공예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으며, 이는 수도원의 오랜 전통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903년 프랑스 정부의 종교 단체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리지외 카르멜 수녀들은 수도원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고 한다.
성녀 테레사의 유품 중 상당수는 리지외의 카르멜 수도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녀의 생전 모습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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