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요새의 웅장함과 역사적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건축학도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잔 다르크와 영국 왕실에 얽힌 이야기에 관심 있는 방문객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복원된 왕실 거처를 둘러보고, 다양한 탑과 성벽을 오르며 과거의 생활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인터랙티브 태블릿 가이드(히스토패드)를 이용하여 요새의 역사와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시농 마을과 비엔 강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요새 내부에 계단이 많아 거동이 불편한 방문객에게는 일부 구간 탐방이 어려울 수 있으며, 내부에 상시 운영되는 카페가 없어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요새 근처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도보 및 대중교통
- 시농 구시가지에서 요새 언덕까지 무료 공공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가파른 길을 쉽게 오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 정보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주요 특징
입장 시 제공되는 태블릿 가이드인 히스토패드를 통해 증강 현실(AR)로 과거 요새의 모습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각 지점에서 스캔하면 관련 정보,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등을 볼 수 있으며, 보물찾기 미니게임도 포함되어 있어 어린이 동반 가족에게도 인기가 높다.
요새 내 다양한 탑(시계탑, 쿠드레 탑 등)과 성벽을 직접 오르내리며 중세 요새의 구조를 탐험하고, 시농 마을과 비엔 강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각 탑마다 독특한 역사와 특징을 가지고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200여 년간 지붕 없이 방치되었던 왕실 거처가 15세기 모습으로 복원되어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잔 다르크가 샤를 7세를 알현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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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탑 정상 (특히 시계탑)
시농 마을 전체와 유유히 흐르는 비엔 강, 그리고 주변 포도밭 풍경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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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요새 전경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시농 왕립 요새의 모습은 언덕 위에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는 요새의 전체적인 웅장함을 담기에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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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드레 탑 (Tour du Coudray) 주변
잔 다르크가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쿠드레 탑과 그 주변은 요새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을 수 있는 장소이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에 포함된 히스토패드(HistoPad) 태블릿 가이드를 적극 활용하면 관람의 재미와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다면 보물찾기 게임 등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요새 규모가 크고 둘러볼 곳이 많으므로, 최소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의 충분한 관람 시간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시농 시내 관광 안내소(Office de Tourisme)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면 1유로 할인받을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요새 근처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자가용 이용 시 편리하다.
시농 구시가지에서 요새 언덕까지 무료 공공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반려견 동반 입장이 가능하지만, 건물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참고해야 한다.
탑과 성벽 등 오르내리는 구간이 많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역사적 배경
최초 요새 건립
블루아 백작 테오발트 1세가 시농 언덕에 최초의 요새를 건설했다.
앙주 백작 가문 소유
요새는 앙주 백작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헨리 2세의 점령 및 확장
잉글랜드의 헨리 2세(앙주 가문)가 동생 제프리로부터 요새를 빼앗아 주요 거주지로 삼고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현재 남아있는 구조물의 상당 부분이 이 시기에 건축되었다.
헨리 2세 사망
헨리 2세가 시농 성에서 사망했다.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점령
수개월간의 공성전 끝에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요새를 점령하였고, 이후 프랑스 왕실의 통제하에 놓였다. 필리프 2세는 원통형의 쿠드레 탑(Tour du Coudray)을 건설했다.
성전 기사단 투옥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이단 혐의로 성전 기사단을 탄압할 때, 기사단의 주요 인물들이 쿠드레 탑에 투옥되었다.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만남
백년전쟁 중, 잔 다르크가 시농 성에 머물던 샤를 7세를 찾아와 신의 계시를 전하고 프랑스 군대를 이끌도록 요청하여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계기를 마련했다.
샤를 7세의 거주지
샤를 7세가 주요 거주지로 사용했다.
쇠퇴기
요새는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점차 방치되어 쇠락의 길을 걸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하사되었으나 관리가 소홀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문화부에 의해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지정되었다.
대규모 복원 사업
1,450만 유로를 투입하여 대대적인 발굴 및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여담
입장료에 포함된 히스토패드(HistoPad)라는 태블릿 가이드는 증강 현실을 통해 과거 요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관람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평이 있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 국왕이 이곳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인근 퐁트브로 수도원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고 전해진다.
14세기 초, 성전 기사단의 주요 인물들이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에 의해 체포된 후 이곳 쿠드레 탑(Tour du Coudray)에 감금되었으며, 이때 기사들이 벽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남아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에는 약 1,450만 유로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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