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페트르진 언덕을 따라 이어진 중세 성벽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거나, 프라하 시내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도보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잘 정비된 공원길을 따라 성벽의 잔해를 살펴볼 수 있고, 곳곳의 전망 지점에서 프라하 성과 구시가지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거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또한 푸니쿨라를 이용하여 페트르진 언덕 정상에 쉽게 올라 주변 명소와 함께 둘러볼 수도 있다.
일부 구간에는 그래피티가 있거나 쓰레기가 방치된 모습이 관찰되어 관리가 다소 아쉽다는 의견이 있으며,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은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 거동이 불편한 방문객이나 유모차를 동반한 경우 이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접근 방법
🚠 푸니쿨라 이용
- 페트르진 언덕으로 향하는 푸니쿨라를 이용하면 보다 쉽게 성벽이 위치한 언덕 중턱이나 정상 부근에 접근할 수 있다.
푸니쿨라 탑승장은 Újezd 트램 정류장 근처에 있다.
🚶 도보 이용
-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지역이나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비 방면에서 페트르진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기아의 벽을 만날 수 있다.
일부 구간은 경사가 있고 계단이 포함될 수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 대중교통 후 도보
- 트램 9, 12, 15, 20, 22, 23번을 이용하여 Újezd 정류장에 하차 후 푸니쿨라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주요 특징
페트르진 언덕의 아름다운 공원을 따라 산책하며, 중간중간 마주치는 성벽과 함께 프라하 시내 및 프라하 성의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맑은 날에는 탁 트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카를 4세 시대에 건설된 성벽의 유래와 '기아의 벽'이라는 이름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와 전설을 되새기며 중세 프라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주변 안내판이나 관련 정보를 통해 더 깊이 있는 탐방이 가능하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페트르진 타워, 슈테파니크 천문대, 장미 정원,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비 등 페트르진 언덕 위의 다양한 명소들과 함께 코스를 계획하여 둘러볼 수 있다. 푸니쿨라를 이용하면 언덕 정상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운영시간: 각 명소별 운영 시간 상이
추천 포토 스팟
성벽 통로 너머 프라하 성 뷰
벽의 아치형 통로나 잘 보존된 구간을 프레임 삼아 멀리 보이는 프라하 성을 촬영하는 구도이다.
페트르진 언덕 위 도시 파노라마 뷰포인트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프라하 구시가지와 블타바 강을 포함한 도시 전체의 탁 트인 전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계절감을 담은 성벽길
봄에는 꽃, 가을에는 단풍 등 계절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성벽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산책로 구간이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비에서 시작하여 기아의 벽을 따라 페트르진 타워, 천문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하이킹 코스를 이용하면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페트르진 언덕을 오르내릴 때 푸니쿨라를 이용하면 체력 소모를 줄이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경사가 있고 계단이 많은 구간이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은 필수이며, 유모차나 휠체어 이용 시 일부 구간의 접근성을 미리 고려하는 것이 좋다.
공원 내에 간단한 다과나 음료를 판매하는 곳이 있으나,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 있으므로 필요시 개인적으로 간식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역사적 배경
건설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 왕이었던 카를 4세의 명으로 프라하 성과 말라 스트라나 지역의 방어 강화를 위해 건설되었다. 페트르진 언덕에서 채취한 이암(marl)이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기아의 벽' 별칭 유래
대기근이 발생한 후, 성벽 건설 작업이 프라하의 가난한 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이야기에서 '흘라도바 제트(Hladová zeď)', 즉 '기아의 벽' 또는 '굶주림의 벽'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1차 수리
성벽이 처음으로 수리되었다.
강화 작업
방어력 증강을 위해 성벽이 추가적으로 강화되었다.
근대적 수리
근대에 들어 첫 번째 대대적인 수리 및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추가 수리
성벽이 다시 한번 수리 및 정비되었다.
여담
기아의 벽은 원래 '흘라도바(굶주린)'라는 이름 대신 '주바타(Zubatá, 톱니 모양의)' 또는 '흘레보바(Chlebová, 빵을 위해 지어진)'로 불렸다는 얘기가 있다.
카를 4세가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살피기 위해 매일 몇 시간씩 성벽 건설 현장에 나와 일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성벽 건설의 본래 목적은 군사적 방어였으나, 기근 시기에 빈민 구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신화가 더 유명하게 남아있다.
과거 성벽의 일부였던 보루 중 하나는 현재 페트르진 언덕에 있는 슈테파니크 천문대 돔의 기초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플라스카 거리 8번지(Plaská Street No.8)에 있는 19세기 주택의 안뜰에서도 잘 보존된 성벽의 일부를 찾아볼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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