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 달마티아 속주의 수도였던 살로나의 광대한 유적을 탐험하며 역사적 숨결을 느끼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고고학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폼페이 등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 혼잡함을 피해 여유롭게 고대 유적 사이를 거닐며 사색을 즐기고자 하는 개인 여행객에게도 적합하다.
방문객들은 원형 경기장의 웅장함을 직접 경험하고, 도시 성벽, 공중목욕탕,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등 다양한 유적의 기초와 일부 구조물을 따라 걸으며 과거 로마 도시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제약 없이 유적 사이를 자유롭게 탐방하며 고대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일부 유적은 보존 상태가 최상이 아니며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거나 훼손된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여름철에는 그늘이 거의 없어 매우 덥고, 입장료 정책이나 출입구 안내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 스플리트에서 솔린(Salona) 방면 버스(예: 1번 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 버스 하차 후 유적지 입구까지 다소 도보 이동이 필요할 수 있다.
버스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에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이용
- 스플리트에서 차량으로 약 15-20분 거리에 위치한다.
- 유적지 입구 근처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나, 일부 진입로는 비포장일 수 있다.
내비게이션 이용 시 'Salona Archaeological Park' 또는 'Tusculum Salona' 등으로 검색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살로나 서쪽 끝에 위치한 웅장한 원형 경기장으로, 한때 검투사들의 격투와 기독교인 처형이 이루어졌던 역사적 장소이다. 관람석 일부와 경기장 하부 구조를 통해 당시의 규모와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도시 성벽 외곽에 위치한 초기 기독교 유적지로, 순교자 도미니우스 주교가 묻혔던 곳이다. 5세기에 건설된 삼랑식 바실리카의 유구와 다수의 석관을 통해 당시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과 매장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로마 시대 살로나를 둘러싸고 있던 견고한 성벽과 성문 유적이다. 특히 포르타 카이사레아(Porta Caesarea)는 2개의 팔각형 탑과 3개의 통로를 갖춘 잘 보존된 성문으로, 당시 도시 방어 체계와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추천 포토 스팟
원형 경기장 (Amphitheatre)
웅장한 원형 경기장의 전체 모습이나 아치형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포르타 카이사레아 (Porta Caesarea)
잘 보존된 로마 시대의 성문과 주변 성벽을 배경으로 고풍스러운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마나스티리네 바실리카 유적 (Manastirine Basilica Ruins)
바실리카의 기둥과 벽체 유적, 그리고 주변에 놓인 고대 석관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여름철 방문 시에는 매우 더우므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시간대를 이용하고, 충분한 물과 모자, 자외선 차단제를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유적지 규모가 매우 크고 대부분 평탄하지 않은 흙길이나 잔디밭이므로 편안한 운동화 착용은 필수이다.
스플리트에서 대중교통(1번 버스 등)으로 접근 가능하나, 하차 후 유적지 입구까지 다소 걸어야 할 수 있다.
저녁 시간대나 풀이 우거진 곳을 방문할 경우 모기 기피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약 8유로이며, 투스쿨룸(Tusculum) 건물 근처에 매표소가 있으나, 다른 경로로도 출입이 가능하여 혼선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유적지 안내판이 부족하거나 훼손되어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거나 가이드 투어를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다.
역사적 배경
살로나 건립
일리리아인과 그리스인에 의해 처음 정착지가 형성되었다.
로마 속주 수도
로마의 달마티아 속주 수도가 되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지지하여 발전을 시작했다.
번영기
도시 성벽, 포룸, 극장, 원형 경기장, 공중목욕탕, 수도교 등 주요 시설이 건설되며 크게 번영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중심지
주교좌 성당을 비롯한 다수의 교회가 건설되며 기독교 중심지로 발전했다.
서로마 제국 말기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가 거주하며 사실상 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파괴 및 유기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의 침입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고 주민들은 인근 스팔라툼(현재 스플리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등으로 피난하며 유기되었다.
여담
살로나는 한때 로마 제국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절반 크기에 달하는 대도시였다고 전해진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거주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원래 살로나에서 약 6km 떨어진 교외 별장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법에 따라 도시 성벽 내부에는 매장을 금지했기 때문에, 살로나의 공동묘지들은 도시로 이어지는 길가에 조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살로나는 자체 주화 주조소를 운영했으며, 디나르 알프스 산맥의 금은 광산과도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무덤도 살로나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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