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고대 로마의 달마티아 속주 수도였던 살로나의 유적을 직접 탐험하고, 로마 시대의 생활상과 건축 양식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고고학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광대한 유적지 내에 흩어져 있는 원형 경기장, 공중목욕탕, 바실리카, 성벽, 수로 등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고대 도시의 규모와 구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유적지에 대한 안내 설명이 부족하고 일부 산책로의 관리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다. 또한 여름철 한낮에는 그늘이 거의 없어 방문 시 더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스플리트(Split)에서 솔린(Solin)행 시내버스(Promet Split 운영)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 솔린을 경유하거나 종점으로 하는 다수의 버스 노선(#1, #2, #5, #10, #13, #16, #22, #32 등)이 있으며, 스플리트 시내에서 약 15-20분 정도 소요된다.
- 하차 후 유적지 입구까지는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 자가용 이용
- 스플리트에서 북동쪽으로 약 5km 떨어져 있으며, 차량으로 쉽게 접근 가능하다.
- 유적지 북쪽 정문 입구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요 특징
달마티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 원형극장 유적 중 하나로, 한때 약 17,000명까지 수용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잘 보존된 구조물 사이를 거닐며 고대 검투사 경기와 다양한 행사가 열렸던 장엄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살로나는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였으며, 유적지 내에는 여러 바실리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주교좌 성당을 포함한 이들 바실리카 유적은 당시의 종교 생활과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일부 남아있는 모자이크 바닥도 인상적이다.
광대한 부지에 걸쳐 로마 시대의 성벽, 도시 문, 공중목욕탕, 주거지 터, 수로 등 다양한 도시 기반 시설의 유적이 흩어져 있다. 방문객들은 이 유적들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고대 로마인들의 삶의 터전을 직접 체험하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원형 경기장 내부 및 외관
웅장한 로마 원형 경기장의 규모와 구조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아치형 구조물이나 관람석 터 등이 좋은 피사체가 된다.
바실리카 유적 기둥 사이
남아있는 고대 바실리카의 석조 기둥과 벽체를 활용하여 역사적 깊이가 느껴지는 분위기 있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고대 성벽과 올리브 나무
오래된 성벽 유적과 그 주변에 자라는 올리브 나무를 함께 프레임에 담으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여름철에는 햇볕이 강하고 그늘이 부족하므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방문하고 충분한 물과 모자, 선크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 규모가 넓고 일부 산책로는 정비가 미흡할 수 있으니, 걷기 편한 신발 착용은 필수이다.
유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방문 전 관련 정보를 찾아보거나 가이드 투어 이용을 고려할 수 있다.
입장권은 성인 8유로, 학생 및 어린이는 4유로이며, 매표소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주차는 북쪽 정문 입구에 마련된 무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일리리아인 정착
델마타에(Dalmatae) 부족 등 일리리아인들이 처음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영향력 확대
로마 공화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기 시작하며, 점차 중요한 항구 도시로 발전한다.
로마 식민 도시 및 달마티아 속주 수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또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기에 로마의 식민 도시(Colonia Martia Iulia Salona)가 되었으며, 달마티아 속주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 즉 수도로서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출생
훗날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살로나 또는 그 근교에서 태어났다.
초기 기독교 중심지
살로나에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고 주교가 파견되는 등, 달마티아 지역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로 부상한다. 성 도미니우스(St. Domnius) 등 순교자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속적인 발전과 대주교좌 승격
도시가 계속 발전하여 인구가 최대 6만 명에 이르렀으며, 5세기경에는 주교좌가 대주교좌로 승격되어 서부 일리리쿰 지역 교회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의 침입 및 파괴
아바르족과 슬라브족 연합 세력의 대대적인 침입으로 살로나는 약탈당하고 파괴된다. 많은 주민들은 인근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현재의 스플리트) 등으로 피난하여 새로운 정착지를 형성했다.
크로아티아 왕국의 중심지
파괴 이후에도 살로나 지역은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9세기 트르피미르 1세 공작이 인근에 수도원을 세웠고, 10세기에는 헬레나 여왕이 교회를 건설하여 크로아티아 왕들의 매장지가 되기도 했다. 11세기에는 즈보니미르 왕의 대관식이 거행된 성 베드로와 모세 교회가 인근에 세워졌다.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
돈 프라네 불리치(Don Frane Bulić)와 같은 고고학자들의 주도로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어 고대 도시 살로나의 모습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크로아티아의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이자 관광 명소로 관리되고 있다.
여담
살로나는 한때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성기 살로나에는 약 6만 명의 주민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도시였음을 시사한다.
사도 바울의 제자인 사도 티투스가 달마티아로 여행했다는 성경 기록(디모데후서 4:10)으로 인해, 그가 살로나에서 잠시 활동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유적지 전체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것은 아니어서, 현지인들이 서쪽 원형극장 인근으로 와서 반려견과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후 6시 이후에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는 언급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