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7세기 네덜란드 양식으로 지어진 성의 건축미를 감상하고 소비에스키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을 둘러보려는 역사 애호가나 건축에 관심 있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대궁전과 독특한 중국 궁전 내부를 탐험하며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성벽을 따라 걸으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거나, NKVD 희생자 추모 예배당에서 역사의 아픔을 되새길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직원의 태도나 비싼 카메라 촬영 요금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공지된 것과 다른 운영 시간으로 인해 불편을 겪거나 반려동물 동반이 불가능한 점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일부 시설은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리비우에서 동쪽으로 약 60km 거리에 있으며, H02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접근할 수 있다.
성 아래 '베르니사주(Вернісаж)' 기념품점 근처에 주차가 가능하다는 언급이 있다.
🚆 기차 이용
- 크라스네-테르노필(Krasne-Ternopil) 철도 노선이 졸로치우를 지나지만, 역에서 성까지의 구체적인 접근 방법 및 소요 시간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주요 특징
과거 소비에스키 가문의 생활 공간이었던 대궁전 내부를 둘러보며 당시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가구, 그림, 무기 등 다양한 역사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유럽의 여러 가문 문장, 공룡 뼈로 만들어졌다는 샹들리에, 13세기 왕관 복제품 등이 주요 전시물로 언급된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왕비를 위해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 자주색 원형 건물인 중국 궁전은 독특한 건축 양식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아시아, 이집트, 터키 등 세계 각국의 문화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
견고한 네덜란드 양식의 성벽과 각 모서리의 오각형 탑 등 요새로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성벽 위에서는 졸로치우 시내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도시 반대편 성벽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들판의 경치가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대궁전과 중국 궁전을 배경으로 한 안뜰
두 주요 건물을 한눈에 담을 수 있으며, 잘 가꾸어진 정원과 분수가 아름다운 배경을 제공한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졸로치우 시내 전경
높은 성벽에 올라가면 탁 트인 시야로 졸로치우 시와 주변 풍경을 넓게 담을 수 있다.
중국 궁전의 독특한 건축물과 주변
자주색 원형 건물과 측면 건물들의 이국적인 모습은 특별한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방문 팁
가족 단위 방문 시 성인 2명과 어린이 동반 구성에 따라 가족권(약 150 UAH) 구매가 유리할 수 있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성은 주말에만 개방될 수 있으며, 매표소는 16:00, 성 관람은 17:00에 마감된다.
입장권 구매 시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언급이 있다.
성 중앙 입구 근처에 유료 화장실(약 5 UAH)이 있다.
성 근처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으나, 화기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요새 건설
두 개의 작은 강이 합류하는 언덕에 목조 요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요새는 14세기 크림 타타르의 침공으로 불탔다.
야쿠프 소비에스키의 성 건축
야쿠프 소비에스키가 크림 타타르 포로들을 동원하여 당시 유행하던 네덜란드 양식의 직사각형 요새를 건설했다. 견고한 성벽, 각 모서리의 오각형 탑, 그리고 '대궁전'이 이때 만들어졌다.
중국 궁전 증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프랑스 출신 왕비 마리 카지미르에게 선물하기 위해 자주색 원형 건물과 단층 부속 건물로 이루어진 중국 궁전을 추가로 지었다.
오스만 제국에 의한 점령
카푸단 파샤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에 의해 6일간의 포위 공격 끝에 함락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재공격 방어
오스만 군대의 새로운 포위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소유주 변경
야쿠프 루드빅 소비에스키 사후 라지비우 가문으로 넘어갔고, 1801년에는 사스 가문의 루카시 코마르니츠키-파블리코비치 백작에게, 1834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매각되었다.
용도 변경 (병원 및 막사)
오스트리아 제국 하에서 병원이자 군 막사로 사용되었다.
감옥으로 전환
감옥으로 개조되어 9월 전역(폴란드 침공)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성 부지에는 NKVD 희생자들을 기리는 예배당이 있다.
비극의 장소
소련의 1차 점령기(1939-1941) 동안 NKVD 감옥으로 사용되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과 사제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나치 점령기에는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장소가 되었다.
복원 및 박물관화
리비우 미술관의 감독 하에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최근 방문객들에게 그 문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여담
성은 크림 타타르 포로들의 노동력으로 건설되었다고 전해진다.
중국 궁전은 얀 3세가 프랑스 출신 왕비 마리 카지미르를 위해 지은 선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 왕가의 저택에서 병원, 군 막사, 심지어 NKVD의 정치범 수용소 및 고문 장소로 사용되는 등 극적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성 부지 내에는 NKVD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작은 예배당이 세워져 있다.
전시물 중에는 13세기 갈리치아의 다니엘 왕의 왕관과 유사할 수 있는 왕관 복제품과 공룡 뼈로 만들어졌다는 샹들리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성 지하에는 아직 해독되지 않은 14-15세기경의 암호화된 글이 새겨진 돌들이 발견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일부는 템플 기사단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