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방어형 유대교 회당의 건축미와 유대교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건축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과거 도시 방어 시스템의 일부였던 견고한 외관과 현재는 비록 훼손되었지만 내부의 남아있는 일부 장식들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으며, 인근의 잘치아 란드만 기념비와 함께 둘러보며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다만, 건물이 현재 매우 심하게 훼손되어 사실상 폐허와 가까운 상태이며, 내부 관람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 방문 시 가장 큰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르비우 출발)
- 르비우 버스 터미널 No. 2 (вул. Хмельницького, 275)에서 151번 마르슈루트카(미니버스) 탑승.
- 조우크바 버스 터미널 (도미니칸 수도원 뒤편, вул. Богдана Хмельницького와 Коновальця 교차로)에서 하차.
약 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소요 시간은 약 40분이다 (2018년 기준 요금 18 UAH).
🚗 자동차 이용 (르비우 출발)
- M-09 도로 (르비우 - 라바-루스카 방면)를 이용한다.
- 르비우 시내에서 Б. Хмельницького 거리를 따라 Галицьке Перехрестя (도시 북쪽 진입로의 대형 교차로)를 지나 라바-루스카 방면으로 계속 주행한다.
- 조우크바 방면 표지판을 따라 Львівську 거리로 좌회전하여 시내 중심부로 진입하면 된다.
르비우로부터 약 25km 떨어져 있으며, 도로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 조우크바 시내 이동
- 조우크바 시내의 주요 관광 명소들은 대부분 도보 1km 이내에 밀집해 있어 걸어서 이동하기에 용이하다.
- 시나고그는 вул. Запорiзька, 8에 위치한다.
주요 특징
과거 도시 방어 체계의 일부였던 독특한 요새형 유대교 회당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외관을 감상할 수 있다. 두꺼운 벽과 총안 등 방어 시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때 번성했던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지였으나 홀로코스트로 인해 파괴된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한 장소이다. 현재는 심하게 훼손된 상태지만, 남아있는 내부 장식의 일부와 인근에 새로 설치된 잘치아 란드만 기념비를 통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시나고그 정면 외관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특히 방어 시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잘치아 란드만 기념비와 함께 보는 시나고그
새로 설치된 기념비와 함께 시나고그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역사적 의미를 더할 수 있다.
방문 팁
건물이 매우 노후화되어 내부 관람이 제한적이거나 불가능할 수 있으므로, 방문 계획 시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시나고그의 복원 작업은 현재 매우 더디게 진행되거나 중단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사전에 현지 가이드와 협의할 경우 제한적으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는 언급이 있으나, 이는 방문 시점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조우크바 유대인 정착 시작
당시 영주였던 스타니스와프 주키에프스키가 유대인들에게 회당 건축을 허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나고그 건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부분적인 후원과 왕실 건축가 피오트르 베베르의 설계로 건설되었다.
증축
건물의 서쪽 부분과 구조적 안정성을 위한 부축벽(counterforts)이 증축되었다.
화재 및 복구
대형 화재로 인해 시나고그가 부분적으로 손상되었으나 이후 복구 작업이 이루어졌다.
나치 독일 점령 및 파괴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 의해 폭파되어 천장과 내부가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부분 복원 시도
전쟁 후 부분적으로 복원되었으나, 1990년대 초까지 창고로 사용되는 등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복원 노력 및 현재 상태
뉴욕 세계 기념물 기금(WMF)의 '위험에 처한 100대 기념물' 목록에 포함되면서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자금 문제 등으로 인해 중단되거나 매우 더디게 진행되어 현재까지도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남아있다.
여담
건설 당시 시나고그의 외관이 매우 아름다워, 가톨릭 성직자들이 도시 내 다른 교회들의 빛을 바래게 할 것을 우려하여 흰색으로 칠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시나고그 중 하나였으며, 도시 방어벽과 유대인 문(Жидівська брама)에 인접하여 실제 방어 요새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붕에는 대포를 설치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1935년 홀로코스트 이전에는 수천 명의 하시디즘 유대인이 거주했던 마을의 중심지였으나, 나치 침공 다음 날 기도자들과 함께 불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조우크바는 과거 유대인 인구가 도시 전체의 50%를 넘었던 시기도 있었으며, 동유럽 최초의 유대인 인쇄소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유제포비치라는 인물은 도시 건설 당시 주키에프스키의 대리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