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성곽 유적을 탐방하며 장미 전쟁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고지대에서 주변 경관을 조망하려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성터에 남은 모트와 바비칸 유적을 둘러보고, 나무 산책로로 모트 정상에 올라 웨이크필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인근 방문자 센터에서 역사 정보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웨이크필드(Wakefield) 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96번 또는 97번 버스를 타고 '샌들(Sandal)' 방면으로 이동한다.
- 성곽 입구와 가까운 정류장에 하차 후 안내 표지판을 따라 도보로 접근할 수 있다.
버스 배차 간격 및 정확한 정류장 위치는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이용
- 웨이크필드 시내에서 Manygates Lane을 따라 이동하면 성곽에 도착할 수 있다.
- 성곽 입구 근처에 소규모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 공간이 협소할 수 있으므로 방문객이 많은 시간에는 유의한다.
주요 특징
성의 중심 방어 시설이었던 높은 인공 언덕(모트)과 주 출입구를 방어하던 바비칸의 유적이 잘 남아있다. 나무 계단을 통해 모트 정상에 오르면 주변 지역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1460년 장미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인 웨이크필드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 전투에서 요크 공작 리처드가 전사했으며, 성 곳곳에서 그 흔적과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다.
과거 연회장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레이트 홀(Great Hall)의 터를 비롯하여 다양한 건물들의 기초와 벽 일부가 남아있다. 이를 통해 중세 시대 성의 규모와 구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2Fphotospot_0_1747654567407.jpg&w=3840&q=75)
모트 정상
성곽 유적 전체와 함께 웨이크필드 주변 지역의 넓은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조망점이다.
%2Fphotospot_1_1747654592036.jpg&w=3840&q=75)
남아있는 성벽과 바비칸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석조 성벽과 입구 방어시설인 바비칸을 배경으로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2Fphotospot_2_1747654608343.jpg&w=3840&q=75)
성곽 입구 및 방문자 센터 주변
성 전체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거나, 안내판과 함께 방문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적절하다.
방문 팁
성곽 유적은 무료로 개방되며, 입구에 소규모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자가용 방문이 편리하다.
모트 정상까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산책로와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으며, 정상에서의 전망이 뛰어나다.
방문자 센터에는 성의 역사와 발굴 과정에 대한 전시물이 있으며,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운영 시간 별도 확인).
유적지 대부분이 야외이므로 날씨에 맞는 복장과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최초의 성 건설
윌리엄 드 워렌, 제2대 서리 백작이 목조 모트 앤 베일리 성을 처음으로 건설했다.
석조 요새화
워렌 가문에 의해 목조 성곽이 석조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킵(주탑), 커튼 월(성벽) 등이 건설되었다.
왕가 소유로 이전
워렌 가문의 대가 끊기면서 에드워드 3세에게 성이 귀속되었고, 이후 그의 아들인 초대 요크 공작 에드먼드에게 하사되었다.
웨이크필드 전투
장미 전쟁 중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에 벌어진 중요한 전투로, 이 성 근처에서 요크 공작 리처드가 패배하고 전사했다.
리처드 3세의 거점
훗날 리처드 3세가 된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북부 지역의 주요 거점으로 삼고 상당한 투자를 명령했으나, 보즈워스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계획은 중단되었다.
잉글랜드 내전과 파괴
잉글랜드 내전 당시 왕당파의 거점이었으나, 의회파 군대에 의해 수차례 포위 공격을 받은 끝에 항복했다. 이후 의회의 명령으로 성은 파괴되어 현재의 유적 상태가 되었다.
대규모 발굴 조사
웨이크필드 공사, 웨이크필드 역사 학회, 리즈 대학교의 협력으로 대규모 고고학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성의 구조와 역사에 대한 많은 정보가 밝혀졌다.
여담
영국의 유명한 동요 '요크의 대공 (The Grand Old Duke of York)'이 샌들 성과 리처드 3세(또는 다른 요크 공작)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터 발굴 과정에서 약 기원전 5000년경 중석기 시대 야영지의 흔적으로 보이는 부싯돌 도구가 발견되어, 이곳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시사한다는 기록이 있다.
잉글랜드 내전 이후 성이 파괴되면서 나온 석재들은 인근 지역의 건물들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헨리 6세, 3부 (Henry VI, Part 3)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1막 2장의 배경이 샌들 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리처드 플랜태저넷(요크 공작)과 그의 아들들이 왕위 계승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때때로 성터에서 이 연극의 일부가 공연되기도 한다.
%2Fbanner_1747482174814.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