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리디아 왕국의 수도이자 페르시아, 로마 시대를 거치며 번성했던 사르디스의 역사적 유적을 직접 탐방하고 성경에 언급된 초기 기독교 유산을 확인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성지 순례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웅장하게 복원된 김나지움과 고대 회당의 정교한 모자이크를 감상할 수 있으며,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구를 통해 과거 도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일부 안내 시설이 부족하고 특정 구역의 유적 관리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앙카라, 코냐 등 주요 도시에서 이즈미르행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여 살리흘리(Salihli)에서 하차 후, 사르트(Sart)행 돌무쉬나 택시로 환승한다.
- 일부 장거리 버스는 사르트 마을 입구 D300 고속도로 교차로에서 정차하기도 한다.
🚗 자가용 이용
- 이즈미르-앙카라를 잇는 D300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유적지 입구에 주차 공간이 협소하여 도로변에 주차하는 경우가 많다.
🚆 기차 이용
- 이즈미르 바스마네(Basmane) 역에서 출발하는 코냐 마비 트레니(Konya Mavi Treni) 등을 이용하여 살리흘리(Salihli) 역에서 하차한 후, 돌무쉬나 택시로 이동한다.
- 지역 열차 운행 여부는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2023년 기준 일부 노선 운행 중단 정보 있음).
주요 특징
로마 시대에 지어진 대규모 공공시설로, 운동 공간과 목욕탕, 사교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웅장한 파사드와 정교한 석조 장식이 인상적이며, 일부 기둥과 벽체는 붉은색을 띠고 있어 당시의 화려함을 짐작게 한다.
운영시간: 유적지 운영 시간 내
기원후 3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유대교 회당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의 회당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이다.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다채롭고 정교한 모자이크와 대리석 장식이 특히 아름답다.
운영시간: 유적지 운영 시간 내
헬레니즘 시대에 건설되기 시작한 이오니아 양식의 거대한 신전이다. 완공되지는 못했지만, 남아있는 거대한 기둥들과 건축 부재들을 통해 당시 신전의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신전 뒤편으로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보인다.
운영시간: 유적지 운영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김나지움 정면
웅장하게 복원된 김나지움의 파사드를 배경으로 고대 로마 건축의 위용을 담을 수 있다.

회당 내부 모자이크 바닥
다채롭고 정교한 고대 모자이크를 가까이에서 촬영하며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있다. (단, 모자이크 보호 규정 준수 필요)

아르테미스 신전과 아크로폴리스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들과 그 뒤로 보이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함께 프레임에 담아 역사적인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권 한 장으로 김나지움/회당이 있는 중심 구역과 약 2km 떨어진 아르테미스 신전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의 뮤지엄 카드(Müzekart)를 소지하고 있다면 무료 입장이 가능할 수 있으나, 카드 종류 및 유효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일부 에게 해 지역 전용 카드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김나지움/회당 구역과 아르테미스 신전 구역을 모두 여유롭게 둘러보려면 최소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의 시간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 입구의 공식 주차 공간이 매우 협소하므로, 대부분 방문객은 인근 도로변에 차량을 주차한다.
회당 내부의 귀중한 모자이크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관람 경로를 따라 이동하고, 직원의 안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적지 내부에 매점이나 식수 시설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특히 더운 날씨에는 방문 전 물을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초기 정착
사르디스 지역에 초기 정착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 청동기 및 초기 철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리디아 왕국의 수도
사르디스는 강력한 리디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특히 크로이소스 왕(재위 기원전 560-546년경) 치세에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누렸다. 세계 최초로 금화와 은화를 주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제국 점령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제에게 정복되어 페르시아 제국의 중요한 사트라피(속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시작되는 '왕의 길'의 서쪽 종점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대왕 점령
알렉산더 대왕에게 평화적으로 항복하였고, 이후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셀레우코스 왕조, 아탈로스 왕조 등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 공화정 편입
로마 공화국의 아시아 속주에 편입되어 로마 시대에도 중요한 도시로 번영을 이어갔다.
대지진과 복구
대규모 지진으로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지원으로 신속하게 복구되었다.
초기 기독교 중심지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가 위치했던 초기 기독교의 중요 거점이었다.
리디아 주교구 설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행정 개혁으로 리디아 주의 주교좌가 사르디스에 설치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 침공
비잔티움-사산조 전쟁 중 사산조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도시가 약탈당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
티무르 제국에 의한 파괴
티무르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점령되고 파괴된 후 도시로서의 중요성을 상실하고 점차 쇠퇴하였다.
고고학 발굴 및 연구
20세기 초부터 프린스턴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유적이 복원 및 공개되고 있다.
여담
사르디스는 세계 최초로 금화를 주조한 곳이라는 얘기가 있다.
도시 근처를 흐르는 팍톨루스 강에서 사금이 채취되어 리디아 왕국의 막대한 부의 원천이 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서 사르디스 교회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책망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사르디스의 아크로폴리스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졌으나, 페르시아 군에게 허를 찔려 함락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