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잘 보존된 로마 시대의 건축물과 독특한 메두사 모자이크를 직접 보고 고대 도시의 역사적 숨결을 느끼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고고학 탐구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광대한 규모의 스타디온과 극장, 섬세한 오데온은 고대 건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방문객들은 웅장한 고대 건축물 사이를 거닐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 희귀한 메두사 모자이크를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복원된 고대 분수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넓게 펼쳐진 유적지 곳곳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다만, 겨울철(대략 10월 말부터 4월까지)에는 핵심 볼거리인 메두사 모자이크가 보호를 위해 덮여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며, 유적지 내부에 그늘이 적고 편의시설(식수대, 매점 등)이 부족하여 한여름 방문 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일부 구간의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언급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부르두르(Burdur) 시내에서 약 110km, 괼히사르(Gölhisar) 읍내에서는 매우 가깝다.
- 유적지 내부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요 유적군 근처에 제1주차장(스타디온 근처)과 제2주차장(오데온, 아고라 근처)이 있다.
- 제2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 관람 동선을 줄일 수 있다.
괼히사르에서 키비라로 향하는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으나, 유적지 내부 일부 도로는 비포장일 수 있다.
🚕 택시 이용
- 괼히사르 읍내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다.
🚌 대중교통 이용
- 대중교통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인근 대도시에서 괼히사르까지 버스를 이용한 후, 괼히사르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주요 특징
음악당 및 의회 건물로 사용된 오데온 바닥 중앙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오푸스 섹틸레(opus sectile)' 기법의 메두사 모자이크가 있다. 대리석 조각을 맞춰 제작된 이 모자이크는 키비라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 중 하나로, 방문객들은 섬세하고 정교한 고대 예술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단, 동절기에는 보호를 위해 덮여 있을 수 있다.)
약 10,000명에서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거대한 규모의 스타디온으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경기장 중 하나이다. 검투사 경기와 각종 스포츠 경기가 열렸던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열기를 상상하며 웅장한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최근 복원되어 약 2000년 만에 다시 물이 흐르게 된 원형 분수는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아고라 위쪽에 위치하며, 고대 도시의 정교한 수로 시스템과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고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오데온 내부 메두사 모자이크
독특하고 정교한 메두사 모자이크를 배경으로 고대 예술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 (관람 가능 시기 확인 필수)
극장 상단 관람석
웅장한 극장 전체와 멀리 펼쳐지는 괼히사르 평야의 탁 트인 전망을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다.
복원된 고대 원형 분수
물이 흐르는 고대 분수와 주변 유적을 배경으로 생동감 있는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가장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인 오데온의 메두사 모자이크는 동절기(일반적으로 10월 말~4월)에는 보호를 위해 모래로 덮여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니, 방문 계획 시 참고해야 한다.
유적지가 매우 넓고 대부분 야외이므로, 여름철에는 물과 모자를 반드시 챙기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좋다.
경사가 있고 울퉁불퉁한 길이 많으므로 편안하고 튼튼한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착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적지 내부에 매점이나 식수대가 없으므로, 필요한 간식이나 음료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화장실은 매표소 근처에만 있다.
효율적인 관람을 위해 차량을 이용하여 제2주차장(Otopark 2)에 먼저 주차한 후 오데온, 아고라, 분수 등을 둘러보고, 이후 제1주차장(Otopark 1)으로 이동하여 스타디온을 관람하는 동선이 추천된다.
입장료는 약 60 TRY이며, 튀르키예 뮤지엄 패스(MüzeKart) 소지 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최소 2시간, 여유롭게 둘러보려면 3시간 이상 소요될 수 있으니 시간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도시 설립 추정
리디아인들이 이주하여 도시를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초기에는 '카발리스(Kabalis)' 지역의 일부였다. '키비라'라는 이름은 고대 아나톨리아의 루비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테트라폴리스 결성
부본, 발부라, 오이노안다와 함께 4개 도시 연합체인 테트라폴리스를 결성하였으며, 키비라는 이 중 가장 강력한 도시로 2표의 투표권을 가졌다. 당시 3만 명의 보병과 2천 명의 기병을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을 자랑했다.
로마의 영향력 확대
로마 장군 무레나(Murena)에 의해 테트라폴리스가 해체되고, 키비라는 아시아 속주에 편입되었다.
대지진과 재건
대규모 지진으로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원조로 재건되었다. 이에 감사하는 의미로 도시 이름을 '카이사레아 키비라(Caesarea Kibyra)'로 변경하기도 했다.
번영기
로마 시대에 키비라는 상업, 농업, 특히 철공예, 도자기, 피혁 산업이 발달한 주요 도시로 성장했다. 또한, 25개 도시를 관할하는 사법 중심지(Conventus) 역할을 수행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스트라본은 당시 키비라에서 4개의 다른 언어가 사용되었다고 기록했다.
쇠퇴
비잔틴 시대를 거치며 점차 쇠퇴한 것으로 보이며, 7세기 이후의 기록은 매우 부족하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9세기 말까지는 미약하게나마 도시 기능이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발굴 시작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 조사가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며, 많은 중요한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 등재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다.
여담
키비라라는 도시 이름은 그리스어가 아닌, 아나톨리아의 고대 언어 중 하나인 루비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대 지리학자 스트라본의 기록에 따르면, 키비라 사람들은 리디아어, 피시디아어, 솔림어, 그리스어 등 네 가지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이 지역의 다문화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키비라는 강력한 군사력으로도 유명했는데, 특히 '빠른 발을 가진 말들의 도시'로 불릴 만큼 말 사육과 기병 육성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철기 제작 기술이 매우 발달하여 단순한 공예를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있으며, 이곳에서 제작된 무기와 도구들은 주변 지역으로도 수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복원되어 2000년 만에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한 고대 원형 분수는 방문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며, 고대 도시의 뛰어난 수로 기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일부 방문객들은 키비라의 규모와 보존 상태, 그리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잠재력을 고려할 때, 터키의 유명한 고대 도시인 에페소스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곳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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