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중세 조지아 왕국의 역사와 독특한 건축 양식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나 문화 유적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10세기에 지어진 정교회 수도원의 일부로, 현재는 교회 건물만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교회 외벽에 남아있는 고대 조지아 문자인 아솜타브룰리 비문과 희미하게 남은 프레스코 조각들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과거 모스크로 사용되었던 시기의 아랍어 또는 페르시아어 문자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 등 다양한 역사적 층위를 경험할 수 있다.
다만, 유적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고 관리가 미흡하여 일부 구역이 창고처럼 사용되거나 쓰레기가 방치된 모습이 있다는 지적이 있으며, 복원 및 도로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아트빈-아르다한 도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 교회가 위치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구간은 비포장 도로이거나 길이 좁을 수 있으므로 운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 교회 근처까지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언급이 있다.
주요 특징
돌리샤네 교회는 10세기 중반에 지어진 조지아 정교회 수도원의 일부로, 당시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인 석조 건물이다. 비록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남아있는 구조를 통해 중세 클라르제티 지역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교회 외벽에는 고대 조지아 문자인 아솜타브룰리 문자로 새겨진 비문들이 남아있다. 이 비문 중에는 이베리아의 숨바트 1세를 언급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내부에는 희미하게나마 프레스코화의 흔적과 함께, 모스크로 사용되었던 시기의 아랍어 또는 페르시아어 문자도 발견된다.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정면 및 측면 외관
10세기 건축 양식이 드러나는 교회의 전체적인 모습과 석조 구조물을 담을 수 있다. 특히 비문이 있는 부분을 함께 촬영하는 것이 의미 있다.
교회 주변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
교회가 위치한 높은 지대에서 주변 계곡과 마을의 전경을 함께 담을 수 있다. 교회의 역사적인 분위기와 자연 경관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방문 소요 시간은 약 15분에서 30분 정도를 예상하는 것이 좋다.
교회까지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하나, 마지막 진입로는 비포장이거나 좁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교회 인근에는 별도의 편의시설이 부족하므로 방문 전 필요한 물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현지 마을 주민들이 직접 구운 빵이나 갓 수확한 과일을 나눠주는 친절을 경험했다는 얘기가 있다.
교회 부지 내에서는 캠핑이나 숙박이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문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역사적 배경
돌리스카나 지역 언급
숨바트의 아들 다비트에 따르면, 아샷 쿠라팔라트의 군대가 돌리스카나 영토에 주둔하던 중 적에게 살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수도원 건설 이전부터 이곳이 정착지였음을 시사한다.
수도원 완공
이베리아의 왕 숨바트 1세(Sumbat I)의 통치 기간 중 건축가 가브리엘에 의해 돌리샤네 수도원 교회가 완공되었다. 외벽의 비문이 이를 뒷받침한다.
수도원 활동기
이 기간 동안 조지아 정교회 수도원으로서 활발히 운영되었다.
모스크로 전환
오스만 제국 시기, 교회의 일부 또는 전체가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되었다. 이때 프레스코화 일부가 회반죽으로 덮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도원 부속 건물 파괴
이 시기에는 이미 수도원 단지 내 교회 본당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다.
부분적 수리
교회 건물에 대한 부분적인 수리가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버려진 유적
현재 교회 건물만 남아 있으며, 모스크로서의 기능도 중단된 채 버려진 상태로 남아있다.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관리 부실 및 훼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담
돌리샤네라는 지명은 과거 마을 이름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교회 내부에는 한때 마을에서 사용하던 관들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목격담이 있다.
건축 당시 조지아의 역사적 지역인 클라르제티에 속했으며, 이 지역은 중세 조지아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일부 방문객들은 교회가 지닌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듯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한다.
교회 외벽에 새겨진 조지아 고대 문자 비문은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