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빌/비엔 구시가지의 역사적 상징물을 직접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거나,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어가려는 역사 애호가 및 도시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분수 중앙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을 자세히 관찰하며 그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고, 분수대에서 나오는 깨끗한 물을 마시며 잠시 목을 축일 수도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빌/비엔 구시가지 중심부인 부르크 광장(Burgplatz)에 위치하여, 구시가지를 둘러보며 쉽게 찾을 수 있다.
🚌 대중교통
- 빌/비엔 중앙역(Bahnhof Biel/Bienne)에서 구시가지 방면 버스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약 10-15분 거리에 있다.
구시가지 내 차량 진입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대중교통이나 도보 방문이 편리하다.
주요 특징
분수 중앙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고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도시의 사법권을 상징한다. 스위스 구시가지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역사적 분수 중 하나로, 그 정교함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분수에서는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여, 구시가지를 여행하는 중 갈증을 해소하거나 물병을 채울 수 있다.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시의 수자원 공급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수는 시청 맞은편 부르크 광장(Burgplatz)에 위치하여, 구시가지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주변으로 역사적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토요일에는 작은 시장이 열려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정의의 여신상과 분수 전체
정의의 여신상을 중심으로 분수 전체를 담는 구도. 특히 여신상의 칼과 저울, 섬세한 복장 표현을 함께 촬영할 수 있다.
시청을 배경으로 한 분수
분수 뒤편의 시청 건물을 배경으로 하여, 정의의 여신상이 시청을 바라보는 모습을 함께 담을 수 있다. 이는 분수의 상징성을 더욱 부각하는 구도이다.
광장과 함께 담는 분수
부르크 광장의 넓은 공간감과 함께 분수를 촬영하면 구시가지의 활기찬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특히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더욱 다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축제 및 이벤트
구시가지 토요 시장
매주 토요일 오전
분수 근처 부르크 광장을 포함한 구시가지 일대에서 작은 규모의 시장이 열린다. 신선한 농산물, 현지 특산품, 수공예품 등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으며, 활기찬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매월 첫째 금요일 저녁 행사
매월 첫째 금요일 저녁
구시가지 상인들이 주관하는 소규모 이벤트나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저녁 시간에 구시가지를 방문하면 특별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방문 팁
분수에서 나오는 물은 마실 수 있으니, 여행 중 물병이 있다면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토요일 오전에 방문하면 분수 근처에서 열리는 작은 시장을 구경하며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매월 첫째 금요일 저녁에는 구시가지 상점들이 주관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리기도 하니, 일정이 맞는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분수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잠시 쉬어가거나 식사를 즐기기에 편리하다.
역사적 배경
분수 건립
기존의 목조 수조를 대체하여 현재의 정의의 분수가 세워졌다. 시청 건립 직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둥 추가
조각가 니클라우스 니샹(Niklaus Nieschang)이 제작한 기둥이 분수에 추가되었다.
두 번째 정의의 여신상 제작
프랑스 출신 조각가 장 보이어(Jean Boyer)가 현재의 정의의 여신상을 제작하였다. 첫 번째 여신상은 베른 출신의 요하네스 헤슐러(Johannes Hesch(e)ler)가 만들었다.
수반 교체
요제프 멘트(Joseph Menth)에 의해 분수의 수반이 새롭게 교체되었다.
작은 수조 교체
분수 옆의 작은 수조가 교체되었다.
기초 보강 공사 시작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수가 불균형하게 기울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여,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분수 보수 완료
장기간에 걸친 보수 작업이 마무리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여담
이 분수는 현지에서 '유스티티아브루넨(Justitiabrunnen)'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분수 위의 정의의 여신상은 시청 건물을 향해 서 있는데, 이는 도시의 자체적인 사법권을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얘기가 있다.
1978년, 정의의 여신상이 들고 있던 저울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여신상 보수 작업용으로 설치된 비계를 통해 도둑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정의의 여신상을 1714년에 제작한 프랑스 출신 조각가 장 보이어는 임금 문제로 시 당국과 수년간 분쟁을 겪었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도 그의 세 딸이 소송을 이어갔으나 결국 보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