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노르드레 강변의 탁 트인 전망과 함께 13세기 요새의 역사적 흔적을 탐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평화로운 휴식을 찾는 당일치기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바이킹 시대 직후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잘 보존된 성벽 유적 사이를 거닐며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언덕 정상에서는 강과 주변 농경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준비해 온 음식을 먹으며 피크닉을 즐기거나, 조용히 산책하며 다양한 조류를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유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판이 부족하고, 유적지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이 계단으로 되어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 이용객의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언급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주차장에서 유적지까지 약 300~700m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나(약 15대 수용 가능), 협소할 수 있다.
🚌 대중교통 이용
- 인근에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배차 간격이 길 수 있으므로 사전에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90분 간격이라는 언급이 있음).
주요 특징
잘 보존된 13세기 요새의 유적을 직접 만져보고 그 구조를 탐험할 수 있다. 주벽, 탑의 기초, 안뜰의 흔적 등을 통해 과거 요새의 규모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유적지가 위치한 언덕 위에서는 노르드레 강(Nordre älv)과 주변의 평화로운 농경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해 질 녘 노을과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으며, 사진 촬영 명소로도 인기가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한때 노르웨이 왕국의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던 이곳의 역사적 배경을 되새기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피크닉을 하거나,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장소이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유적지 정상에서 바라보는 노르드레 강 전경
오래된 성벽과 함께 넓게 펼쳐진 강, 그리고 주변의 푸른 들판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일몰 시간의 유적지와 강 풍경
해 질 녘 붉게 물드는 하늘과 강, 그리고 고즈넉한 유적의 실루엣이 어우러져 감성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성벽과 아치형 구조물
남아있는 성벽의 질감이나 아치형 구조물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분위기의 인물 사진을 촬영하기 좋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주변에 식당이나 매점이 없으므로 방문 시간이 길어질 경우 음식이나 간식, 음료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 계단이 있고 일부 좁은 구간이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 사용자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여름철에는 유적지 주변 풀이 높게 자랄 수 있으므로 긴 바지 착용을 고려할 수 있다.
어린 자녀와 함께 방문할 경우, 유적지 주변에 설치된 전기 울타리에 주의해야 한다.
인근 쿤개우(Kungälv)에 위치한 보후스 요새(Bohus fästning)와 함께 둘러보는 역사 테마 여행 코스를 계획할 수 있다. 라그닐스홀멘은 보후스 요새보다 오래되었지만, 보후스 요새가 더 크고 잘 보존되어 있다.
방문객이 거의 없어 한적하게 유적을 탐험하고 13세기 요새의 장인정신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장점이다.
역사적 배경
성곽 건설
노르웨이 국왕 호콘 호콘손(Håkon Håkonsson)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중세 도시 쿵가헬라(Kungahälla) 인근에 위치했다.
스웨덴 국왕 방문
스웨덴 국왕 발데마르 비르예르손(Valdemar Birgersson)과 왕비가 이곳에 머물렀다.
에리크 왕자 영지 편입
망누스 라둘로스(Magnus Ladulås)의 아들인 에리크 왕자(Hertig Erik)가 노르웨이 국왕 호콘 5세(Håkon V)로부터 쿵가헬라와 함께 이곳을 영지로 하사받았다.
노르웨이 국왕의 공격 실패
에리크 왕자와 호콘 5세의 관계가 악화되자, 호콘 5세가 성을 무력으로 되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호콘 5세는 이 성의 중요성을 낮추기 위해 강 상류에 보후스 요새(Bohus fästning)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소유권 변동
1309년 호콘 5세에게 넘어갔으나, 1310년 에리크 왕자가 다시 탈환했다. 오슬로 평화조약 조건에 따라 몇 년 후 (아마도 1312년경, 늦어도 1315년 이전) 노르웨이에 반환되었다.
쇠퇴 및 폐허
성은 약 100년 미만으로 사용된 후 화재로 소실되거나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석재는 보후스 요새 건설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고학 발굴
고고학자 빌헬름 베리(Wilhelm Berg)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다수의 동전, 무기, 생활용품, 도구 등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발굴 이후 잘 보존된 부분의 석재가 인근 가축 검역소 건설을 위해 반출되어 훼손되었다.
여담
라그닐스홀멘이라는 이름은 노르웨이 귀족 스쿨레 보르손(Skule Bårdsson)의 아내이자 노르웨이 국왕 호콘 호콘손의 장모였던 **라그닐드 욘스도테르(Ragnhild Jonsdotter)**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초 연대기 사본에는 이 성이 '뉘클라보리(Nyklaborg)'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거대한 성'을 의미하는 '미클라보리(Miklaborg)'의 와전된 표기로 여겨진다.
이 성은 100년도 채 사용되지 않고 버려졌으며, 화재로 소실된 후 그 석재가 인근에 새로 건설된 보후스 요새의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1881년부터 1882년까지 고고학자 빌헬름 베리에 의해 개인의 후원으로 발굴 작업이 진행되어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안타깝게도 발굴 이후 보존 상태가 좋았던 부분의 석재들이 인근 가축 검역소 건설을 위해 사용되면서 일부 유적이 훼손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라그닐스홀멘은 역사 유적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류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특히 나이팅게일, 메뚜기 휘파람새, 헨 해리어(유럽개구리매) 등이 관찰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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