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세고르베와 알토 팔란시아 지역의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고고학적 유물과 사라져가는 전통 공예품 및 민속 자료를 살펴보고자 하는 역사 및 문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고고학에 관심 있는 학습 목적의 방문객이나 지역의 옛 생활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방문객들은 1층 고고학 섹션에서 청동기, 이베리아, 로마 시대의 주요 유물을 비롯해 중세 및 근대 유물까지 시대별로 정리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2층 민족학 섹션에서는 도자기, 지팡이, 가죽 제품, 농기구 등 과거 장인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다양한 공예품과 생활 도구를 통해 지역의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직원이 운영 시간보다 일찍 박물관 문을 셔터로 닫아 내부에 갇히는 경험을 하거나, 직원 부재로 입장이 어려웠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직원의 응대가 불쾌했다는 지적도 있어 방문 시 운영 상황을 미리 확인하거나 마감 시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주요 특징
1층에 마련된 4개의 전시실에서 선사시대부터 청동기, 이베리아,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 및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고고학적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각 문화 시기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유물과 함께 명확하고 간결한 설명 패널, 실험 고고학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운영시간: 박물관 운영 시간 내
2층에서는 도자기, 지팡이, 가죽 제품, 농기구, 목공예품, 바구니 등 사라져가는 지역 전통 공예품과 생활 도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과거 장인들의 기술과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운영시간: 박물관 운영 시간 내
박물관이 들어선 건물은 1792년에 세워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로, 과거 카를로스 4세 군대의 병영, 공화국 교육 센터, 감옥, 법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건물 자체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주변의 중세 수도교, 탑들과 어우러진 경관도 인상적이다.
운영시간: 박물관 운영 시간 내
추천 포토 스팟
박물관 정면 외관
1792년에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전체를 담을 수 있다. 특히 외벽의 비문과 함께 촬영하면 역사적 의미를 더할 수 있다.
플라사 데 로스 메소네스 (Plaza de los Mesones)
박물관이 위치한 광장으로, 박물관 건물과 함께 중세 수도교, 보치 탑, 감옥 탑 등 세고르베의 주요 역사 유적들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세고르베의 여러 박물관을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면 관광 안내소에서 "세고르베의 열쇠(La Llave de Segorbe)" 통합권을 9.5유로에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박물관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으로만 이동해야 하므로, 거동이 불편한 방문객은 이 점을 미리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일부 후기에 따르면 직원이 운영 시간보다 일찍 문을 닫거나 부재중인 경우가 있으므로, 방문 전 운영 여부를 재확인하거나 마감 시간에 임박해서 방문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건물 완공
카를로스 4세 통치 5년째 되던 해, 군대의 병영(Casa Cuartel)으로 사용하기 위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건축 자재 중 일부는 인근 소페냐 언덕의 버려진 옛 성채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용도 활용
병영 외에도 공화국 교육 센터, 감옥, 시 법원 등 다양한 공공시설로 활용되었다. 건물 내부에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도 있다.
박물관 개관
세고르베 및 알토 팔란시아 지역의 고고학적, 민족학적 유산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위키피디아 카테고리에 'Museos de España inaugurados en 1979' 포함되어 있음)
여담
박물관 건물 외벽에는 "Año 1792, 5° del reinado de nuestro Cat° Monarca el Sr. D. Carlos (IV)"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어 건립 연도와 당시 국왕을 명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건축 당시, 오랫동안 버려져 채석장처럼 사용되던 인근 소페냐 언덕의 옛 성채에서 건축 자재를 일부 가져와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기 전, 이 건물은 군인들의 숙소였던 병영을 시작으로 공화국 시절에는 교육 시설로, 이후에는 감옥과 법원 건물로도 사용된 다채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