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타라고나 지역의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하며 중세 시대의 역사와 20세기 초반의 예술적 복원을 함께 경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건축물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남기려는 사진 애호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와 회랑 유적을 둘러보며 과거 수도원의 흔적을 탐험할 수 있고, 외교관 에두아르도 토다가 재건한 저택 내부의 고풍스러운 가구와 다양한 수집품, 그리고 그의 서재를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성곽 주변을 산책하거나 가장 높은 곳의 산타 바르바라 예배당까지 올라가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숨 막히는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내부 관람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투어가 주로 스페인어로 진행되어 외국인 방문객에게는 언어 장벽이 있을 수 있다는 점과, 정해진 투어 시간 외에는 내부를 볼 수 없어 방문 계획에 제약이 있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언급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가장 일반적인 접근 방법으로, 해안가에서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포장되어 있으나 일부 구간은 가파르고 구불구불하다.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 자전거 또는 🚶 하이킹
- 주변 지역에서 자전거 도로나 하이킹 코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 오르막길이 포함되어 있어 체력이 요구된다.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요 특징
해발 약 650m 높이에 위치하여 타라고나 주 일대와 멀리 지중해까지 아우르는 숨 막히는 전경을 자랑한다. 특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타 바르바라 예배당에서는 방해물 없는 360도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다.
20세기 초 외교관이자 학자였던 에두아르도 토다가 폐허가 된 수도원을 매입하여 복원한 개인 저택을 둘러볼 수 있다. 그의 취향이 반영된 고풍스러운 가구, 다양한 도자기와 판화 컬렉션, 그리고 방대한 장서가 있는 도서관은 당시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운영시간: 가이드 투어 시간에 따름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미겔 교회와 아름다운 아치가 남아있는 회랑 유적은 이 장소의 깊은 역사를 증명한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천 포토 스팟
회랑의 아치 너머 풍경
고풍스러운 회랑의 아치를 통해 바라보는 타라고나 평원과 지중해의 모습은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산타 바르바라 예배당에서의 360도 전경
단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타 바르바라 예배당에서는 사방으로 탁 트인 파노라마 경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에두아르도 토다 저택의 창가
앤티크 가구와 장식으로 꾸며진 저택 내부에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담아보는 것도 좋다.
축제 및 이벤트
아플렉 데 산 미겔 (Aplec de Sant Miquel)
매년 6월
전통적으로 리우데카녜스 주민들이 성 조지의 날(4월 23일)에 이곳에 올랐던 것에서 유래한 행사로, 현재는 매년 6월에 지역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일종의 순례 축제 또는 모임이 열린다.
방문 팁
내부 건물(에두아르도 토다 저택 등) 관람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이드 투어는 주로 스페인어 또는 카탈루냐어로 진행되지만, 영어 구사가 가능한 가이드가 배정될 경우 부분적인 영어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성곽 내에는 카페가 없고 음료 및 스낵 자판기만 있으므로, 식수나 간식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목줄을 착용한 반려견의 동반이 가능하다.
주차장에 전기 자동차 충전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운영 시간, 가이드 투어 시간, 입장료 등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특히 성수기나 주말에는 온라인으로 미리 티켓을 예매하면 편리하다.
주변에 '수도사의 길(Passeig dels Frares)' 등 짧은 산책로나 하이킹 코스가 있으니 편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로마 요새 건설
현재 성곽이 위치한 자리에 로마 시대의 요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라센 점령 및 '잘로키아' 명명
무어인들이 점령하여 '잘로키아(Guaita, 망루)'라는 이름의 요새로 사용했다.
아라곤 왕국의 정복
아라곤의 알폰소 1세가 아르베르트 데 카스테벨을 통해 이 지역을 정복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설립
알폰소 1세가 요새 자리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의 산 미겔 데 에스코르날보우 수도원 창건을 명했다. 이로써 에스코르날보우 남작령이 형성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 봉헌
수도원 내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페레 데 알발라트 주교에 의해 봉헌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쇠퇴 및 프란체스코 수도회 이전 제안
수도회가 쇠퇴하여 수도사가 1명만 남게 되자, 타라고나 대주교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이관할 것을 제안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입주
프란체스코회 수사들이 수도원을 인수하여 1686년까지 머물렀다.
프란체스코 옵서번트 수도회 및 미주 선교 신학교 설립
프란체스코 옵서번트 수도회가 이곳에 미주 지역 선교를 위한 신학교를 설립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나폴레옹 전쟁 중 약탈
프랑스 군대에 의해 수도원이 약탈당했다.
멘디사발의 교회 재산 몰수 조치로 폐쇄
스페인 정부의 교회 재산 몰수 조치(데사모르티사시온)로 인해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강제로 떠나면서 수도원은 완전히 폐쇄되고 이후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에두아르도 토다의 매입 및 재건
외교관이자 학자였던 에두아르도 토다 이 구엘이 폐허가 된 성곽 수도원을 매입하여 1924년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대대적인 복원 및 개조 작업을 진행하여 개인 저택으로 만들었다.
공공 소유화
여러 소유주를 거쳐 카탈루냐 자치정부와 타라고나 지방의회가 공동으로 매입하여 현재에 이른다.
대규모 리모델링
시설 개선 및 보존을 위한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었다.
재개장
리모델링을 마치고 대중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여담
에스코르날보우(Escornalbou)라는 지명은 그 어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산의 뾰족한 모양이 '황소의 뿔(Cornu Bovis)'을 닮았다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또한, 이 지역의 사암이 숫돌(esmolar)이나 동물의 뿔을 다듬는 데(escornar)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며, 심지어 뿔이 부러지거나 없는 소(bou escornat)와 관련된 민간 어원설도 전해진다. 실제로 이 지역의 역사적인 문장에는 뿔이 부러진 소의 머리가 그려져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성곽 입구에는 로마자 'T'를 닮은 부조가 있는데, 이는 타라고나 대주교의 상징(산타 테클라 또는 테오스)으로, 이곳을 복원한 에두아르도 토다(Eduard Toda)의 이니셜 'T'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토다가 주문하여 설치한 것이 맞다고 한다.
에두아르도 토다는 성곽을 재건하면서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얼굴 모양의 조각들을 요새의 전략적인 위치에 설치했는데, 이는 일종의 '보호자' 역할을 하도록 의도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 얼굴 조각들은 지금도 저택 입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 이곳이 황폐했을 당시 레우스의 사업가였던 마시아 빌라(Macià Vila)가 이곳에서 위조 은화를 대량으로 주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로 인해 성 주변에 숨겨진 보물이 있다는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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