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펠라요 왕 동상은 스페인 역사, 특히 레콩키스타의 시작점인 코바동가 전투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건국에 깊은 관심이 있는 역사 애호가나 코바동가 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코바동가 대성당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서 있는 돈 펠라요의 청동상을 관람하고, 그가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 승리의 십자가와 동상 받침대에 새겨진 역사적 문구를 통해 그의 업적과 시대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또한, 인근의 신성한 동굴, 펠라요 왕의 무덤 등 코바동가 성지의 주요 유적들을 함께 탐방하며 역사 속으로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공중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방문객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코바동가 성지 내에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 주차 공간은 한정적이므로, 특히 성수기나 주말, 부활절과 같은 연휴 기간에는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 주차장이 만차될 경우, 원거리 주차 후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할 수도 있다.
내비게이션에 'Estatua de Pelayo, Covadonga' 또는 제공된 주소로 검색하여 찾아갈 수 있다.
🚌 대중교통 이용
- 칸가스 데 오니스(Cangas de Onís) 등 아스투리아스 내 주요 도시에서 코바동가로 향하는 버스가 운행된다.
- 버스 노선 및 운행 시간은 계절이나 요일에 따라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현지 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요 특징
코바동가 대성당 앞 광장에 위치한 청동상으로,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시조이자 레콩키스타의 영웅인 펠라요를 형상화했다. 웅장한 대성당과 주변 산세를 배경으로 서 있어 역사적 의미와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동상 받침대에는 알폰소 3세 연대기에 기록된 "Nuestra esperanza está en Cristo + este pequeño monte será la salvación de España" (우리의 희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작은 산은 스페인의 구원이 될 것입니다)라는 역사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어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동상은 코바동가 대성당, 성모 마리아를 모신 신성한 동굴(산타 쿠에바), 펠라요 왕의 무덤 등 주요 성지와 인접해 있어 함께 둘러보며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깊이 체험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대성당 정면과 펠라요 왕 동상
웅장한 코바동가 대성당을 배경으로 펠라요 왕 동상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구도이다.
신성한 동굴에서 바라본 대성당과 동상
신성한 동굴(산타 쿠에바) 입구나 주변에서 대성당과 펠라요 왕 동상을 함께 조망하며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펠라요 왕 동상과 피코스 데 에우로파 산맥
동상 뒤편으로 펼쳐지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 산맥의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담아 인상적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비교적 한적하게 동상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으며, 주차 공간 확보도 용이하다는 얘기가 있다.
부활절 연휴 등 특정 시기에는 방문객이 매우 많아 주차 및 관람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동상 인근의 코바동가 대성당, 신성한 동굴(산타 쿠에바), 박물관(입장료 1유로) 등을 함께 방문하면 더욱 풍부한 역사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주변에 레스토랑과 키오스크, 호텔 바 등이 있어 식사나 간식을 해결할 수 있다.
공중 화장실이 없으므로 방문 전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펠라요 출생 (추정)
서고트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추정되는 돈 펠라요가 태어났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부족하다.
아스투리아스 왕국 건국 및 코바동가 전투 준비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 반도 침공 이후, 펠라요는 아스투리아스 산악 지대로 피신하여 저항 세력을 규합하고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웠다. 이곳 코바동가에서 이슬람 군대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코바동가 전투 승리
펠라요가 이끄는 소수의 아스투리아스 군대가 코바동가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이슬람 군대를 격파했다. 이 전투는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펠라요 사망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재위하던 펠라요가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코바동가의 신성한 동굴(산타 쿠에바)에 안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펠라요 왕 동상 건립
조각가 헤라르도 사라고사(Gerardo Zaragoza)에 의해 청동으로 제작된 펠라요 왕 동상이 코바동가 대성당 앞 광장에 세워졌다. 이 동상은 펠라요 왕의 업적을 기리고 코바동가의 역사적 중요성을 상징한다.
여담
펠라요 왕 동상은 조각가 헤라르도 사라고사(Gerardo Zaragoza)가 1965년에 청동으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동상 제작에 사용된 청동은 19세기 중반 모로코와의 전쟁 당시 스페인군이 노획한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펠라요 왕의 실제 무덤은 동상에서 멀지 않은 코바동가 신성한 동굴(Santa Cueva) 내부에 그의 아내 가우디오사와 함께 안치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동상이 위치한 코바동가(Covadonga)라는 지명은 라틴어 'Cova Dominica', 즉 '성모의 동굴'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펠라요 왕이 이끈 코바동가 전투는 이베리아 반도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의 시발점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레콩키스타'라는 용어 자체의 역사적 의미와 사용에 대해서는 현대 역사학계에서 다양한 해석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언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