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기원전 6세기부터 2세기까지 이어진 이베리아인들의 생활상을 탐구하고 싶은 역사 학습자 및 고고학에 관심 있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실험 고고학으로 재건된 요새를 통해 고대 건축과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하려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재건된 가옥 내부에 들어가 당시 생활 도구와 무기 복제품을 만져볼 수 있으며, 성벽과 망루에 올라 고대 요새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가이드 투어를 통해 이베리아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차장 시설 관리가 미흡하거나, 대중교통 및 도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제공되는 안내 자료와 현장 표시물 간의 불일치로 관람에 혼선을 겪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C-31 도로 km 141 지점에 위치한다.
-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일부 방문객들은 시설 상태가 좋지 않다고 언급한다.
🚶 도보 또는 대중교통 이용
- 칼라펠 기차역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는 안내가 있으나, 일부 방문객들은 해변가에서 유적지까지 도보로 이동 시 매우 혼잡한 도로 옆 좁은 길을 이용해야 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 보행자 접근 경로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이베리아 성채는 실험 고고학 기법을 통해 기원전 3세기경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방문객들은 실제 크기로 복원된 가옥에 직접 들어가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건축 방식과 공간 활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단순 관람을 넘어 고대 이베리아인들의 갑옷, 방패, 창 등 무기 복제품을 직접 착용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아이들은 특히 로마 공성탑과 마을 성벽을 오르내리며 당시 생활을 상상하는 체험을 즐긴다.
추가 요금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이드 투어는 이베리아인들의 건축, 음식, 직물 제작, 복식 등 다양한 생활상에 대한 심도 깊은 해설을 제공한다. 방문객들은 이를 통해 유적지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운영시간: 특정 시간 운영 (예: 오전 11시, 저녁 7시)
추천 포토 스팟
고대 무기/갑옷 착용 지점
재현된 고대 이베리아인의 갑옷, 방패, 창 등을 착용하고 전사처럼 변신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공성탑 정상
마을 앞에 세워진 거대한 목조 공성탑에 올라 성채 전체를 배경으로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인상적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성벽 위 산책로
재건된 성벽 위를 거닐며 마을 내부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주변 풍경을 함께 담아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저녁 시간대 방문이 권장된다. 일부 요일에는 오후 7시 가이드 투어도 운영된다.
입장 시 영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안내 책자를 제공받을 수 있으나, 일부 언어 버전은 현장 안내판 번호와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다면,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 교육적이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이드 투어는 약 2유로의 추가 요금으로 이용 가능하며,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으므로 참여를 고려해볼 만하다.
주차장은 넓은 편이나, 시설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있으므로 참고하는 것이 좋다.
해변에서 도보로 접근할 경우, 매우 혼잡한 도로 옆 작은 길을 이용해야 하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최초 건립
이베리아 코세타니(Cossetanos) 부족에 의해 해안가에 요새화된 정착지로 건립되었다. 초기 가옥들은 방사형으로 배치되고 후면이 성벽 역할을 하는 벽에 붙어 있었다.
1차 대규모 개편
정착지 면적이 축소되고(방어 목적 추정), 북쪽에 새로운 성벽과 탑이 건설되었다. 이 시기 도시 계획은 비교적 규칙적이었으며, 빗물 배수 시설을 갖춘 직선형 도로가 나타났다.
전성기
성채의 전성기로, 북쪽에 복도를 통해 접근하는 대규모 가옥들이 건설되었다. 이 시기 귀족 가옥은 면적이 280~370㎡에 달했다.
쇠퇴 및 유기
제2차 포에니 전쟁과 로마에 대항한 이베리아 부족들의 봉기 실패 등 시대적 혼란 속에서 점차 버려지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 활용
이베리아 정착지가 완전히 버려진 후, 남동쪽에 로마 귀족 가문의 대저택(도무스, domus)이 건설되었다.
고고학 발굴 시작
고고학자 호안 산타카나(Joan Santacana)와 호안 산마르티(Joan Sanmartí)에 의해 알로르다 파크(Alorda Park) 유적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실험 고고학 기반 재건
호안 산타카나의 설계 및 실행으로, 발굴된 유적 위에 실험 고고학 기법을 적용하여 기원전 3세기 이베리아 성채의 모습을 재건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는 이베리아 반도 최초의 시도였다.
여담
이베리아 반도에서 최초로 실험 고고학 기법을 적용하여 유적지 위에 직접 건축물을 재건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성채 재건 프로젝트는 스웨덴 올란드 섬의 에케토르프 철기 시대 유적지 복원 모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곳은 유럽 고고학 연구 및 커뮤니케이션 교류 네트워크(EXARC)와 카탈루냐 고고학 박물관이 추진하는 '이베리아 루트(Ruta dels Ibers)'의 일부이기도 하다.
과거 성채에는 약 65명의 주민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가구당 평균 5명으로 계산한 수치라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제의적 목적으로 양, 염소, 개, 심지어 닭과 같은 동물을 희생시켜 집 바닥 아래에 묻었으며, 드물게 태아나 아기를 묻은 경우도 '족장의 집'이라 불리는 곳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성채 내부에는 깊이 10m, 직경 1.6m의 우물이 있었고, 섭씨 35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공동체용 빵 화덕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입구에 재현된 거대한 목조 공성탑은 당시 공성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 이 성채는 포위 공격으로 함락된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 의해 버려진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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