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성곽의 역사적 흔적을 탐방하고 알렌테주 평야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풍경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고성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잘 보존된 성벽을 따라 걸으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경험할 수 있고, 성 내부에 마련된 고고학 박물관에서 선사 시대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는 지역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성벽 위에서는 세르파 시내와 주변 평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휠체어 사용이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성벽 접근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으며, 일부 계단에는 난간이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언급도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성 근처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마을 내부는 길이 좁을 수 있으므로 운전에 유의한다.
주요 특징
잘 보존된 중세 성벽을 따라 걸으며 세르파 시내와 광활한 알렌테주 평야의 아름다운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조용한 시간에 방문하면 더욱 평화로운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성 내부에 위치한 2층 규모의 고고학 박물관은 무료로 입장 가능하며, 선사시대부터 로마 시대, 금속기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지역 출토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설명은 주로 포르투갈어로 되어 있으나, 입구에서 영어 안내서를 받을 수 있다.
과거 화약고 폭발로 파괴된 탑의 일부가 독특한 아치 형태의 입구를 이루고 있어 인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특이한 모습은 세르파 성의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로 여겨지며, 많은 방문객이 사진을 남기는 장소이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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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 전망 지점
성벽을 따라 걸으며 세르파 시내와 주변 알렌테주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다양한 지점에서 멋진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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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탑이 있는 성 입구
화약고 폭발로 형성된 독특한 아치형 입구는 세르파 성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인상적인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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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박물관 내부 또는 외부
박물관 건물 자체나 전시된 유물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성 입장은 무료이며, 성벽과 내부 고고학 박물관 모두 추가 비용 없이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 내부는 전부 포르투갈어로 설명되어 있으나, 입구에서 영어 안내 책자를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
성벽으로 올라가는 일부 계단에는 난간이 없으므로, 특히 어린이 동반 시 주의가 필요하다.
성 안뜰에 깨끗한 공용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으나, 간혹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언급이 있다.
세르파 지역은 양젖 치즈가 유명하므로, 성 방문 후 시내에서 현지 치즈를 맛보거나 구매하는 것도 좋다.
역사적 배경
초기 정착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선사 시대부터 인간이 이 지역에 거주했다.
로마 점령
이후 로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이 지역도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
무어인 통과
무어인들이 이 지역을 거쳐갔으며, 초기 요새가 이때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포르투갈 왕국의 정복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재정복 운동(헤콩키스타) 중, 포르투갈의 초대 왕 아폰수 1세의 군대가 세르파와 성을 정복했다.
무슬림 재탈환
알모하드 왕조의 아부 유수프 야쿱 알만수르의 대규모 공세로 세르파는 다시 무슬림의 수중에 떨어져 셰베림으로 개명되었다.
포르투갈 재탈환
산슈 2세 국왕의 군대가 이 지역을 되찾아 세르파는 다시 포르투갈 영토가 되었고, 국왕의 동생 페르난두에게 관리권이 넘어갔다.
카스티야 왕국으로의 영유권 이전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 정복을 완료하자,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가 이 지역의 관할권을 두고 분쟁을 벌였고, 세르파는 과디아나 강 너머의 땅과 함께 스페인 군주에게 넘어갔다.
포르투갈로의 영유권 반환
분쟁 끝에 디니스 왕의 어머니인 베아트리스 여왕에게 이 지역이 이전되었다.
포랄 차터 수여 및 성 재건 시작
디니스 왕의 통치 하에 국경이 확정되면서 마을은 포랄 차터(도시 자치권 헌장)를 받았고, 주민들은 기존 무슬림 요새의 일부 진흙 벽을 활용하여 재건을 시작했다.
아비스 기사단의 기부
아비스 기사단은 모라와 세르파 교회의 수입 3분의 1을 성의 알카세르(성채) 재건과 보급품 마련을 위해 기부했다.
포르투갈 왕위 계승 위기
이 위기 동안 세르파 마을과 성은 아비스 기사단을 지지했으며, 스페인 영토로 여러 차례 침입하는 포르투갈 군대의 기지로 사용되었다.
스페인에 의한 함락
1580년 왕위 계승 위기 당시, 수비가 약했던 세르파와 성은 산초 다빌라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에 함락되었다.
포르투갈 독립 회복 전쟁
포르투갈 독립 회복 당시, 세르파는 포르투갈 깃발을 가장 먼저 게양한 마을 중 하나였다. 주앙 4세는 이 지역과 성을 페드루 왕자에게 하사했다. 복원 전쟁 중 국경 지역의 다른 장소들처럼 현대화 작업이 계획되었으나 완전히 완료되지는 못했다.
화약고 폭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점령되었던 성은, 오수나 공작이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철수하면서 화약고가 폭발하여 탑 하나가 파괴되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성벽 및 탑 붕괴
시간이 흐르면서 방치되어 성벽과 탑의 석조 구조물에 큰 규모의 붕괴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국립 기념물 지정
포르투갈 정부는 1월 30일 공포된 법령에 따라 세르파 성벽을 국립 기념물로 지정했다.
복원 및 보수 작업
정부는 베자 문이 있는 수로 구간의 보강 공사를 시작으로, 성벽의 여러 부분을 철거하고 재건하는 등 지속적인 복원 및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2000년에는 폭풍으로 인해 성벽 일부가 손상되기도 했다.
여담
성벽 서쪽 부분은 아치형 수로를 통해 피칼류 백작 궁전과 연결되며, 이 물은 17세기에 궁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물탱크로 이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산타 마리아 교회(과거 이슬람 사원) 옆에 서 있는 시계탑은 1440년에 시계탑으로 개조되었으며, 포르투갈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시계탑으로 알려져 있다.
1707년 스페인 군대가 철수할 때 화약고가 폭발하여 성의 탑 중 하나가 파괴되었는데, 이 잔해가 현재 성의 독특한 입구를 형성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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