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그 안에 담긴 종교 예술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및 예술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또한, 언덕 위에 위치하여 히베이라 그란데 지역의 탁 트인 전망을 즐기려는 일반 방문객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푸른색과 흰색의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된 교회의 독특한 파사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으며, 내부로 들어서면 화려한 금박 제단과 천장화, 그리고 성가대석 위의 독특한 '아르카노' 공예품 등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성구실에 마련된 신성 예술 박물관에서 다양한 종교 유물을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접근 방법
주요 특징
교회 정면은 고전적인 포르투갈 양식의 파란색과 흰색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되어 있으며, 바로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언덕 위에 위치하여 더욱 돋보이는 외관은 방문객들의 주요 사진 촬영 대상이다.
교회 내부는 **화려한 금박 제단(탈랴 두라다)**과 성화, 프레스코 천장화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 바로크 예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성찬 예배당의 금박 장식과 성가대석이 주목할 만하다.
성가대 위층에는 쌀가루, 아라비아 고무, 명반 등으로 만든 수백 개의 작은 인형들로 구성된 '아르카노'라는 독특한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19세기 클라라회 수녀 마르가리다 두 아포칼립스가 제작한 것으로, 구약과 신약의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정면 파사드
포르투갈 전통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된 아름다운 교회 정면을 촬영할 수 있다.
교회 입구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언덕 위에 위치한 교회 입구에서 히베이라 그란데 마을과 주변 경관을 함께 담을 수 있다.
교회 내부 제단 및 '아르카노'
화려한 금박 제단, 바로크 양식의 내부 장식, 그리고 독특한 '아르카노' 공예품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주님 기적의 성상(Imagem do Senhor Santo Cristo dos Milagres) 숭배 행사
주로 5월 중순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 기적의 성상'을 숭배하기 위해 방문하는 시기이다.
방문 팁
교회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교회 자체뿐만 아니라 히베이라 그란데 시내와 해안까지 아우르는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성구실에는 신성 예술 박물관이 있으며, 이곳에서 은제 제기 유물과 16세기 플랑드르 삼면화 등을 볼 수 있다.
최근 복원 작업을 마쳐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기도처 존재
훗날 교회가 세워질 자리에 '노사 세뇨라 다 푸리피카상(Nossa Senhora da Purificação)'을 기리는 작은 기도처가 있었다.
본당 교회 건축 시작
6월 4일, 빌라 프랑카 두 캄푸의 상 미겔 아르칸주 교회를 모델로 하여 본당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다. 건축은 비스카야 출신 건축가 후안 데 라 페냐(Juan de la Peña)가 맡았다.
완공 및 봉헌
교회가 완공되어 '별의 성모(Nossa Senhora da Estrela)'께 봉헌되었으며, 탕헤르의 주교 D. 두아르테(D. Duarte)에 의해 축성되었다. 이때 제단에 성유물 상자가 안치되었다.
장식 작업 및 성유물 추가
가치 있는 제단화, 성물 등의 장식 작업이 계속되었다. 1581년에는 앙그라의 주교 D. 페드루 데 카스틸류(D. Pedro de Castilho)에 의해 새 제단화가 축성되고 새로운 성유물이 추가되었다.
지진 피해
수차례의 지진(1563, 1564, 1571, 1588, 1591년)으로 교회가 손상되었다.
종탑 붕괴
종탑이 무너지면서 본당의 일부가 파괴되고 나머지 부분도 크게 손상되었다.
현재 건물 재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현재의 교회를 짓는 대대적인 재건축 공사가 진행되었다. 초기 설계는 히베이라 세카의 교구 사제 소자 프레이르(Sousa Freire)가 맡았고, 그의 사후 마누엘 데 바스콘셀루스(Manuel de Vascocelos)가 작업을 이어받아 1736년에 완공했다. 공사 비용은 주민들의 헌금으로 충당되었다.
천장 붕괴 및 재건
9월 5일, 교회 천장이 무너져 교구 위원회의 비용으로 재건되었다.
대대적인 복원
당시 주임 신부였던 자신투 두 아마랄(Jacinto do Amaral)의 지휘 아래 교회 전체의 조각 장식이 복원되었고, 새로운 성물, 성상, 예술적인 은제품들이 주문 제작되었다.
가스파르 프루투오주 신부 봉직
아소르스 제도의 역사가이자 작가인 가스파르 프루투오주(Gaspar Frutuoso) 박사가 이곳에서 교구 사제로 봉직하며 그의 불후의 연대기 '사우다드스 다 테라(Saudades da Terra)'를 집필했다.
여담
이 교회가 세워지기 전, 15세기 말에는 같은 자리에 '성모 마리아의 정결(Nossa Senhora da Purificação)'을 기리는 작은 기도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최초 교회 건축 당시, 인근 빌라 프랑카 두 캄푸에 있는 상 미겔 아르칸주 교회를 모델로 삼았으며, 건축 비용은 14만 헤알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교회 제단에는 축성 당시 탕헤르 주교가 봉헌한 성유물 상자가 안치되었으며, 1581년에는 로레토 성모의 집에서 가져온 작은 나무 조각과 흙, 11,000명의 동정녀 유골,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작은 뼈 등 새로운 성유물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아소르스 제도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작가인 가스파르 프루투오주(Gaspar Frutuoso) 신부가 1565년부터 1591년까지 이곳에서 교구 사제로 봉직하며 그의 대표작 '사우다드스 다 테라(Saudades da Terra)'를 집필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해는 수 세기 동안 이 교회에 안치되었다가 후일 마을 공동묘지로 이장되었다.
교회 내부 성가대 위층에는 19세기 클라라회 수녀였던 마르가리다 두 아포칼립스(Margarida do Apocalipse)가 쌀가루, 아라비아 고무, 명반 등 매우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여 구약과 신약의 장면들을 묘사한 수백 개의 작은 인형으로 구성된 **'아르카노(Arcano)'**라는 독특한 예술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이는 매우 희귀하고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