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수천 년 전 신석기 시대 인류가 남긴 거대한 석조 구조물을 직접 보고 그 규모와 기술에 감탄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고대 문명에 관심 있는 탐험가들이 주로 찾습니다. 특히 인적이 드문 시골 지역에서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개인 여행객들에게도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방문객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큰 고인돌 중 하나인 이 유적의 웅장한 돌기둥과 내부 구조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으며, 일부는 직접 만져보며 고대의 숨결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주변의 평화로운 농경지와 코르크 참나무 숲을 거닐며 한적한 시골 풍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적지로 향하는 비포장도로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차량 접근이 어렵고, 안내 표지판이나 현장 설명이 부족하며, 유적 자체의 유지 보수 상태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접근 방법
🚗 자가용/렌터카 이용
- 에보라 시내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유적지로 이어지는 마지막 몇 킬로미터는 비포장도로이며, 노면 상태가 매우 좋지 않고 움푹 파인 곳이 많아 일반 승용차나 렌터카로 운전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 일부 방문객은 차량 손상을 우려하여 유적지에서 떨어진 농장 건물 근처나 도로변에 주차 후 10~15분 정도 걸어서 접근하기도 합니다.
내비게이션 이용 시에도 도로 상태를 미리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 도보 접근
- 차량 주차 후 유적지까지 짧은 도보 이동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주변은 농경지와 자연으로 이루어져 있어 걷는 동안 목가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주요 특징
높이 8미터에 달하는 7개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으로 이루어진 다각형의 현실(방)과 12미터 길이의 복도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어떻게 이 거대한 돌들을 옮기고 세웠는지 상상하며 고대 인류의 기술력에 감탄할 수 있으며, 일부 방문객들은 돌을 직접 만져보며 고대의 기운을 느끼기도 합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이 고인돌은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석기 시대의 장례 문화와 사회 조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유산입니다. 발굴 과정에서 슬레이트 판, 목걸이, 구리 유물,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유적지는 넓게 펼쳐진 농경지와 코르크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도시의喧囂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연을 느끼며 산책하거나, 고대 유적과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고인돌 입구 및 복도
거대한 돌기둥 사이로 이어지는 복도 입구에서 고인돌의 규모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고인돌 후면 언덕 위
고인돌의 전체적인 구조와 함께 주변의 넓은 평야와 자연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특히 석양이 질 때 아름다운 실루엣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고인돌 주변 코르크 참나무 숲길
고인돌로 향하거나 주변을 산책하며 만나는 코르크 참나무 숲길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고즈넉한 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유적지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므로, 차량 하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서행하고 주의 깊게 운전해야 합니다. 렌터카의 경우 보험 조건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부 방문객은 유적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약 10~15분 정도 걸어서 접근하는데, 이 길이 주변 농경지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경치 좋은 산책로가 되기도 합니다.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유적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인근 기관에서 운영하는 가이드 투어 가능 여부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유적지 내부는 안전 문제로 접근이 제한될 수 있으며, 현재는 외부 관람 위주로 이루어집니다.
현장에는 유적에 대한 설명 자료가 부족하거나 낡았을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접근 통로 주변에 공격적인 말벌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잠부제이루의 커다란 고인돌은 무료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방문객은 접근로와 유적지 내부 지형으로 인해 관람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건립 시기 추정
신석기 시대 에보라 지역의 거석 문화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정착민들의 조직적, 기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최초 발굴 조사
고고학자 엔히크 레오노르 피나(Henrique Leonor Pina)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슬레이트 판, 목걸이, 구리 유물, 토기 등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어 에보라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다만, 당시 발굴 기법에 대한 논란이 일부 있었습니다.
국립 기념물 지정
포르투갈 정부에 의해 국립 기념물(Decreto-Lei No.516/71)로 지정되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보호 구조물 설치
고고학 유적의 훼손을 우려하여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금속 구조물이 설치되었습니다.
추가 발굴 조사
카를루스 타바르스 다 실바(Carlos Tavares da Silva)와 조아키나 소아르스(Joaquina Soares)의 지휘 하에 2차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그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담
일부 방문객들은 유적지 근처에서 "관광객 사냥 구역(tourist hunting zone)"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이 실제 경고인지 아니면 농담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고인돌의 입구는 원래 **조각된 멘히르(선돌)**로 표시되어 있었으나, 현재 이 멘히르는 땅에 누워있는 상태로 발견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1965년 발굴 당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중에는 슬레이트 판, 목걸이, 주교의 지팡이를 닮은 목장(crosiers), 구리 물건, 세련된 용골 모양 그릇(carinated bowls)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은 뉴에이지 신봉자, 네오페이건, 네오샤먼 등 영적인 탐구를 하는 이들이 자연 영성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찾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고인돌의 중앙 방에서 작은 돌 제단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금속 덮개에 대해서는 그 미관이나 효과에 대해 방문객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으며, 일부는 값싼 보호소 같다고 표현하거나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초기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의 미숙한 발굴 작업으로 인해 유적의 일부가 손상되었을 수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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