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2세기 중반에 지어진 유서 깊은 석조 건축물과 헨릭 입센의 시에 등장하는 테리에 비겐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 및 문학 순례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느끼고 싶은 개인 여행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잘 보존된 교회 내부의 제단, 강단, 12세기 세례대 등을 둘러볼 수 있으며, 교회 묘지에 있는 테리에 비겐 추모 오벨리스크를 찾아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아름다운 프레스코발도 바로크 오르간 연주를 감상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전통적인 교회 의자가 다소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으며, 특정 시기에는 내부가 다소 춥게 느껴질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교회 인근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차량으로 방문하기 편리하다.
주요 특징
헨릭 입센의 시 "테리에 비겐"의 실제 배경이 된 장소로, 주인공 테리에 비겐과 1807-1809년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방문객들은 시의 감동을 되새기며 평화로운 묘지를 산책하고 역사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
약 1150년에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교회 내부를 둘러보며 오래된 제단, 독특한 강단, 12세기에 제작된 세례대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으며,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의 일부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교회 내부에 설치된 프레스코발도 바로크 양식의 오르간은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현재도 예배나 특별 연주회 시 사용되며, 방문 시점에 따라 아름답고 웅장한 오르간 소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서쪽 탑과 정면
교회의 상징적인 목조 탑과 고풍스러운 석조 외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구도이다.
테리에 비겐 추모 오벨리스크와 교회
묘지 중앙에 위치한 오벨리스크와 교회 건물을 함께 프레임에 넣어 역사적 의미와 문학적 감성을 더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교회 내부 제단과 세례대
고풍스러운 제단과 12세기에 제작된 유서 깊은 세례대는 교회의 오랜 역사성을 잘 보여주는 촬영 대상이다. 내부의 독특한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교회 마당은 과거 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평화롭고 잘 관리된 묘지가 조성되어 있어 고인을 추모하거나 조용히 사색하기에 좋다.
교회는 여전히 예배와 콘서트 등 다양한 종교 및 문화 행사가 열리는 활동적인 공간이므로, 방문 전 행사 일정을 확인하면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역사적 배경
목조 교회 존재 추정
최초의 피에레 교회는 석조 제단을 가진 목조 교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오래된 석조 제단은 이후 석조 교회를 건축할 때 그대로 보존되었다.
현재의 석조 교회 건축
오늘날 볼 수 있는 석조 교회가 기존 목조 교회의 제단을 중심으로 건축되었다. 당시 교회는 직사각형 본당(네이브)과 동쪽 끝에 직사각형 성가대(콰이어), 그리고 성가대 동쪽 끝에 반원형 앱스(후진)를 갖춘 구조였다. 교회 아래에는 지하 묘실(크립트)도 만들어졌다.
최초 역사 기록 등장
교회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이 등장하지만, 이때 교회는 이미 새로운 건축물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구조 변경 및 확장 시작
지붕 구조가 변경되고 평평한 천장과 새로운 다락 바닥이 설치되었다. 이후 좌석 수를 늘리기 위해 교회 내부에 발코니(갤러리) 좌석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앱스 재건 및 성구실 추가
앱스 부분에 침하로 인한 손상이 발생하여 지붕을 철거하고 재건축했으며, 앱스 동쪽으로 나무로 된 성구실(새크리스티)이 추가되었다.
북쪽 갤러리 확장
교회 북쪽 벽을 따라 있던 갤러리가 성가대까지 확장되어 더 많은 좌석을 확보했다.
서쪽 목조 탑 건설
건물 서쪽 끝, 즉 주 출입구 위쪽으로 오늘날 볼 수 있는 대형 목조 탑이 건설되었다.
오르간 설치 위한 서쪽 갤러리 확장
새로운 파이프 오르간을 수용하기 위해 서쪽 갤러리가 확장되었다.
대대적인 복원 작업
1930년대에 시작된 교회의 복원 및 보수 계획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완료되었다. 이 과정에서 벽에서 프레스코화가 발견되었고, 동쪽에 있던 오래된 성구실은 철거되고 본당 북쪽에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성구실이 건축되었다. 또한 건물의 기초를 보강하여 기울어지고 내려앉은 벽들을 바로잡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지하 묘소 일반인 출입 제한
17세기의 지역 주요 인사 26구의 유해가 안치된 지하 묘소(크립트)가 망자에 대한 존중을 표하기 위해 일반 방문객에게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훼손 사건 발생 및 복구
교회에 괴한이 침입하여 내부 시설, 12세기에 제작된 세례대, 17세기 지하 묘소의 일부, 그리고 교회 오르간 등이 훼손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훼손된 부분에 대한 복구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여담
교회 지하에는 17세기의 지역 주요 인물 26명의 유해가 안치된 지하 묘소가 있으며, 망자에 대한 존중을 위해 1997년부터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는 얘기가 있다.
노르웨이의 대문호 헨릭 입센이 1861년에 쓴 시 '테리에 비겐(Terje Vigen)'의 주인공 테리에 비겐이 이 교회 묘지에 묻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를 기리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일부에서는 이 교회가 약 700-800년대 바이킹 시대의 종교적 장소(hov) 위에 세워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교회 내에는 프레스코발도(Frescobaldi) 바로크 양식으로 새로 지어진 오르간이 있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감상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교회 인근에는 노르웨이의 수호성인인 올라프 2세(Olav den hellige)를 기념하는 '올라프의 샘(Olavs kilde)'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21년 10월, 교회에 괴한이 침입하여 12세기 세례대와 오르간 등 내부 시설이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으나, 이후 복구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테리에 비겐 (Terje Vigen)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이 쓴 서사시로, 주인공 테리에 비겐이 노르웨이 독립을 위해 싸우다 사망한 후 피에레 교회 묘지에 묻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시로 인해 피에레 교회는 문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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